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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대중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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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05 00:00 수정 : 2008-11-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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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에 국정자료 전시… 역사 증언하는 기록문화 확산에 일대전기 마련

11월3일 오후 퇴임 뒤 좀체 대문 밖을 나서지 않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집을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의 행선지는 동교동 집 바로 옆인 김대중 도서관(www.kdjlibrary.org)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문을 연 김대중 도서관에서 개관 ‘축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도서 열람 · 전시하며 평화 · 통일 연구

김대중 도서관에는 엘리베이터가 2대 있다. 하나는 1층에서 3층까지 가고 다른 하나는 5층까지 운행한다. 5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는 경호 때문에 일반인 이용이 통제된다. 김 전 대통령의 전용 연구실이 5층에 있고 4·5층에서는 김 전 대통령 집이 휜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앞으로 도서관 연구실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쓸 계획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김 전 대통령이 집 바로 옆이긴 하지만 자주 도서관으로 ‘출근’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우리에게도 후손에게 보여줄 국정자료가 있다. 김대중 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집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딴 도서관에 전용 연구실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DJ가 정치적 행보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쪽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연세대 관계자도 “김 전 대통령쪽이 ‘개관 전 언론에 도서관 관련 기사가 나오면 곤란한다’며 입단속을 요청해올 만큼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도서관 1층에 들어서면 정면에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김 전 대통령쪽은 연세대에 △도서관 이름을 김대중 도서관으로 해줄 것 △도서관에 노벨평화상 수상 사진을 걸어줄 것 등을 간곡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서관 1층 열람실에는 김 전 대통령이 소장해온 단행본들이 가득했다. 그의 관심사를 반영한 듯 핵문제, 미국의 세계전략, 국제정세, 북한 관련 책이 서고 한쪽을 메우고 있었다. 1층 열람실 한켠에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시계, 암살된 필리핀 아키노 상원의원으로부터 받은 수동타자기 등 세계 각국의 ‘민주화 동지’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이 놓여 있었다. 2층에는 비디오와 녹음테이프, 사진첩들이 주로 있는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때 김 전 대통령이 서명한 만년필도 전시돼 있다.

사진/ 대통령의 국정자료는 사유물이 아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남북공동선언문과 서명때 사용한 만년필.
김 전 대통령은 올 2월 말썽 많았던 아태평화재단 건물과 자신이 갖고 있던 자료 1만6천여점을 연세대에 기증했다. 연세대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을 설립했다.

김우식 연세대 총장은 “김대중 도서관은 도서 열람·전시 기능뿐만 아니라 평화와 통일 분야에 관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 프로그램과 이를 통해 축적된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연구 기능은 이 학교 통일연구원이 맡고, 교육 기능은 대학원 과정인 통일학 협동과정을 신설해 김대중 도서관을 종합적인 학술기관으로 키울 계획이다.

김경애 연세대 통일연구원 연구교수는 “미국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카터센터나 미 스탠퍼더 대학의 후버연구소 같은 곳을 김대중 도서관의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도서관 개관이 정치적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전직 대통령 기록문화 탄생이란 의미는 크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은 후임자에게 정치보복의 근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재임시 되도록 기록을 남기지 않고, 그나마 있는 기록은 퇴임할 때 없애거나 집으로 들고 가곤 했다.

사진/ 김대중 도서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모습 등 사진 자료들이 걸려 있다.

그동안 국정자료가 보관되지 않은 까닭

노태우 정권 시절 기독교방송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이정식씨는 <기사로 안쓴 대통령 이야기>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불행하게 청와대를 떠났기 때문에 재임시의 기록이 청와대에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사료는 박 대통령이 시해된 뒤 측근 비서관들이 청와대 내에서 부랴부랴 태워버렸고, 큰딸 근혜씨가 조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이승만 대통령 때의 기록은 당시 관계자들이 나누어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내 학자가 한국 정부의 베트남전 파병 결정 과정을 연구하려면 미국행 항공권부터 끊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미 텍사스대학 안에 있는 린드 B. 존슨 대통령 도서관, 미국 메릴랜드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1960년대 중·후반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관련 문서를 보기 위해서다. 국내에도 외교통상부나 외교안보연구원에 베트남전 관련 자료가 있지만, 체계적 연구를 하기에는 자료의 질과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자료의 빈곤’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한국 대통령들이 대부분 재임시 통치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임기를 마치고 제 발로 청와대를 걸어나간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도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기록은 열심히 했으나 남기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청와대에 ‘통치사료담당비서관’을 만들었다. 5공 때 통치사료 비서관은 대통령의 술자리 대화 내용까지 기록하는 등 거의 모든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대부분 기록을 서울 연희동 집으로 들고 가버렸다. 그 뒤 이 기록을 본 사람은 없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기록도 대충 하고 남기지도 않았다. 노태우 정권 퇴임 뒤 청와대에 들어간 김영삼 대통령 측근들은 “제대로 된 문건 하나 남은 게 없다”고 성토했다고 한다. 문민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역대 대통령들의 국정 관련 자료나 기록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도 전임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통치사료비서관은 공개된 공식 자료만 모았고 국무회의 발언 내용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을 남기면 국무위원들이 소신껏 발언을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진/ 도서관 1층 열람실에는 김 전 대통령이 소장해온 단행본들이 가득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1999년 통치 사료를 기록·보관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통치사료는 올 초 대전의 정부기록보존소로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통치사료비서관의 이름이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며 국정기록비서관으로 바꿨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뒤 대통령 도서관을 건립하는 게 전통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40년 루스벨트 대통령을 시작으로 10여명의 전직 대통령 도서관이 있지만 퇴임 대통령들이 사유물인 국정 자료를 자기 이름을 딴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도서관은 대개 출신 대학, 고향 등에 있다.

골방의 자료를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국정자료를 사유물이 아니라 국가의 재산으로 규정한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한 게 1978년이었다. 일부에서는 즐비한 미국의 대통령 도서관을 들어 우리의 기록문화 부재를 비판하지만, 관련 법안 제정으로 따지면 우리와 20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역사는 기억으로만 지속되지 않고 기록해야 후대에 남는다. 김대중 도서관이 기념과 미화를 넘어 새로운 대통령 기록문화 출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 참에 김대중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른 전임 대통령들도 설사 자신에게 불리한 국정자료라도 집에서 혼자만 볼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국가에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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