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 유통 등 베일에 싸인 사설 정보지의 세계… 수십개 정보모임 활동, 역정보 피해도 유발
‘BH ○○○ ○○, 보고체계 어기면 파면’. 기자가 최근 한 취재원한테서 받은, 이른바 ‘정보지’의 첫 제목이다.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가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는 가운데, 국정 공백 등과 맞물려 공직사회의 기강 문제가 화두로 부각되고 있음. 이같은 문제가 부각되자 ○○○ BH ○○○○이 ‘보고체계를 어길 경우 파면조치하겠다’며 ○○○ 직원들의 군기를 강화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음.”
정치권·관계 동향에 촉각 곤두세워
정보지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내용은 역시 청와대(‘Blue House’의 약자 BH로 표시) 소식이다. 두 번째 소식도 ‘BH ○○○ ○○, XXXX에게 뒤통수 맞았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얘기였다. 그 뒤로 각 정당 내부 소식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관계의 움직임,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선자금 수사 등 검찰의 수사과정, 언론사 동향, 기업과 기업인들의 최근 상황 등을 아이템별로 정리하고 있다. 여자관계가 복잡한 한 국회의원의 소식도 들어 있다. 정보지에 따르면 이 국회의원은 “우연히 유치원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다가 유치원 교사에게 연정을 품고 ‘작업’에 들어가 성공했고 따로 아파트를 구해준 뒤 동거에 가까운 내연관계까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요동치면 정보지가 정치의 전면에 떠오르기도 한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 정보지의 내용이 그대로 쏟아져나오는 것이다. 폭로 정국의 주역인 셈이다. 최근에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축하금이 500억~600억원”(이원창 한나라당 의원, 10월17일)이라거나 “북한이 2004년 6월15일을 남북 합방일로 정하고 이를 위해 해외의 친북좌익 세력들을 서울에 집합하도록 지령을 내렸다”는 등의 내용이 여과 없이 공개되기도 했다.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발언 사례가 잇따르자, 열린우리당의 이해찬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10월17일 정보지의 폐해를 지적했고 박관용 국회의장까지 나서 즉각 단속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같은 흐름 때문에 요즘 정보지가 생산되는 서울 여의도 분위기는 냉랭하다. 기업에서 언론계쪽으로 흘러들던 정보지 흐름이 일시 중단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보지는 ‘제호 없는 신문’이다. 독자가 한정돼 있고 구독을 위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기존 언론에서는 ‘증권가 찌라시’라는 말로 깎아내리지만, 허섭스레기 같은 정보만 모아놓는 것은 아니다. 몇년 동안 정보지를 구독했다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50% 이상은 맞는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당장은 소문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도 시간이 지난 뒤에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정보지에도 이른바 ‘특종’이 있다. SK 비자금 사건이 그렇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거나 수사할 계획이라는 얘기가 정보지에 등장한 적은 없지만, SK쪽에서 한나라당에 100억원을 건넸다는 사실은 대선 직후 정보지에 등장한 내용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황당한 내용이라며 ‘독자’들이 외면했지만, 최근에 와서야 특종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의 국정농단 사실도 정보지에 먼저 등장했다. 한보철강 등 주요기업의 부도사실 역시 실제 부도가 나기 훨씬 전부터 정보지에 오르내렸다.
SK 비자금 특종… 수십종, 내용은 유사
정보지는 한줄짜리 제목과 몇개의 문단이 하나의 ‘기사’를 이룬다. 기사는 역피라미드형 문장구조를 갖춘다. 두괄식으로 핵심내용이 앞에 나오고 설명은 뒤에 붙는다. 이런 기사들은 대략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순으로 이어진다. 보통 한 정보지가 다루는 정보의 양은 하루에 A4용지 10~20쪽 정도에 이른다. 하루에 한번 발간되는 경우와 일주일 또는 열흘에 한번씩 나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 정보지의 종류는 수십 가지다. 신문을 요약한 수준은 무료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름의 ‘공정과정’을 거친 A급 정보지들은 내용이 많이 중복된다. 대략 60~80%의 내용은 겹친다. 이런 결과는 정보지가 만들어지는 구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보지가 나름대로 ‘고급성’과 ‘상품성’을 유지하는 것은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정보계통에서는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정보지에 실리는 ‘기사’의 출처는 여의도에서 이뤄지는 수십개의 정보모임들이다. 모임별 인원은 5~10명이 대부분이다. 분야별로 한명씩을 두는 식이다.
정보모임에는 먼저 국가기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이들이 참여한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파트 요원들, 검찰(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산하 정보요원들)·경찰의 정보 담당자(경찰청 정보국 산하 정보분실 요원 등)들이 참여한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의 보좌관 및 비서관들이 참여하고, 정부산하기관의 정보업무 담당자들, 민간부문에서는 기업이 참여한다. 특히 대기업 정보팀 관계자들과 증권사 관계자들은 필수적이다. 여기에 언론사 기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한 정보팀에 참여하고 있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 정도 여의도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연다. 낮에 여의도역 근처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의 방을 빌려서 커피를 시키면 비용도 적게 들고 보안도 지켜질 수 있다. 분야별로 각자가 가져온 정보를 하나씩 공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정보지 형태로 문서를 만든다. 노트북 컴퓨터로 정리하는 서기를 한명 두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벌 정보지’는 다른 팀이 만들어놓은 초벌과 합쳐진다. 이렇게 재벌, 3벌로 공유된 정보는 최종적으로 고급 정보지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임에 가입하려면 희망자는 3~4개월 동안 정보만 주고 테스트를 받는다. 모임에서는 희망자가 건네는 정보의 등급을 매긴 뒤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 요즘에는 보안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최종 정보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종의 ‘플랫폼’ 구실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사설정보업체’ 사람들이다. 이들은 거친 정보지들을 모은 뒤 일부 검증을 거쳐 상품으로 팔 수 있는 정보를 추려 정보지를 만든다. 국정원 국내정보 파트에 있던 인물들이 운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상품화된 정보지는 대기업 정보팀, 정치권 등에 팔린다. 보통 읽을 만한 정보지라면 일주일에 한번씩 받아보는 조건으로 한달에 30만~50만원 정도를 줘야 한다.
한달 구독료 수십만원… 금감원 정보 각광
정보지를 수사하게 된다면 그 ‘주체’가 될 법한 검찰조직에서도 이 정보지를 유료로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흔히 ‘범정’이라고 줄여서 부름)쪽에서 한달에 50만원 안팎의 비용을 지불하고 정보지를 구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맨들 사이에는 철칙이 있다. 정보 교환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첫 번째다. 이전에는 정보를 교환하더라도 문서로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다른 사람의 컴퓨터로 가서 자신의 디스켓에 들어 있는 문서를 옮겨주고 옮겨오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지금은 프린트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보안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메일로 전송하기도 한다. 이들은 또 문서를 받았더라도 받은 포맷대로 유지하지 않고 글꼴이나 모양새, 토씨나 말투를 수시로 바꾼다. 새로 타이핑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경제쪽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것은 금융감독원쪽 정보지라고 알려져 있다. 경제 관료의 발언이 하나 소개되면 발언의 배경 및 취지, 동기 등이 다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기업 정보팀이 관여한 정보지 가운데는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삼성그룹 정보팀이 주도하는 정보지인데 잘 유출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보모임 참석자들이 정보지와 정보모임에 매달리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보보고 업무 때문이다. 국정원·검찰·경찰 정보 담당자들은 대개 하루에 한번 상부에 올리는 정보보고서를 써야 한다. 정보모임은 업무의 원천인 셈이다. 특히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 정보담당자들은 이들 모임에서 나오는 정보 가운데 범죄 혐의에 치중한다.
기자들이 정보지 생산자로 참여하기도
대기업 정보팀 역시 최고경영진(CEO)에 올리는 정보보고서(매일 또는 주 단위로 나뉘어 있음)를 써야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달 동안 야근하는 것보다 몇달에 한번이라도 기업의 명운과 관련된 중요 정보보고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그런 보고가 (인사)고과에도 더 비중 있게 반영된다”고 귀띔했다. 요즘에는 중견기업이나 정부 산하기관들에서도 조직의 최고 책임자에게 정보보고를 하는 업무가 무척 중요해졌다. 고급정보를 얼마나 먼저 아느냐가 조직의 미래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는 믿음이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우 특히 검찰의 수사정보에 관심이 높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와중에서 “총수 소환은 없을 것”이라는 정보팀의 잘못된 보고로 곤욕을 치렀던 그룹들은 그 뒤 이 분야의 정보역량을 높이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검찰 출입자를 두고 베테랑 수사관들까지 로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다시는 우리 회장님이 (검찰)청사로 소환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기자들의 경우 기사로 쓰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정보보고 내용을 정보모임과 공유하기도 한다. 기자들이 가진 핵심 취재원에 대한 정보 가운데는 탐낼 만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일부 기자들은 정보를 주고 돈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사설정보업체 관계자는 “단속한다거나 형사처벌 엄포를 준다고 정보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면서 “대신 보는 이들이 줄어들고 가격은 더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보지를 보게 되면 일종의 중독 현상이 나타난다는 이들도 있다. 고급정보로부터 소외된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정보팀 관계자는 “최고경영자들은 정보지에 나오는 얘기를 알아야 골프장 모임에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한다”면서 “남들이 모르는 얘기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일종의 권력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품으로 팔리는 정보지가 아무리 가공 또는 재가공 공정을 거친 결과물이라고 해도 정보지 ‘기사’ 가운데는 정보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소문이나 단순 첩보 등이 뒤섞여 있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많다. 악의적 목적으로 유포하는 유언비어나 비방이 실명으로 실릴 경우 명예훼손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 피해까지 입게 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 회사 이름은 정보지에 잘 등장하지 않다가 2, 3년 전부터 심심찮게 정보지에 올라왔다. 알고 보니 한 대기업이 우리와 경쟁하는 사업 부문이 생긴 뒤 역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정보지에 대한 여론주도층의 열독률이 꽤나 높은 우리 현실에서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언제까지 정보지에서 진실을 찾아야 하나
정보지 형태로 정보를 판매하는 일을 언론사가 사업으로 벌이는 곳도 있다. <내일신문>은 기자들의 취재내용 가운데 고급정보를 추려내 ‘CEO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고, <머니투데이> 역시 증권가 소식을 수집해 유료정보를 제공한다.
사회주의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언론은 중앙일간지가 아니라 이른바 ‘황색언론’과 생활정보지였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폭로성 기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황색언론이 기존 언론보다 인기를 얻은 것은 언론사 자신의 이익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짙게 깔려 있는 기존 언론에 대한 러시아 대중의 불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한국 상황을 기계적으로 대비하기에는 무리가 많겠지만, 정보지의 인기가 꺼질 줄 모르고 정보지에서 얻는 진실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대한민국이 비밀이 많은 사회이며 깜짝 놀랄 일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방증인지 모른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정치권 폭로의 근원지이자 생산·유통·소비 등이 베일에 싸인 사설 정보지. 수십만원대의 월 구독료를 내면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보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설 정보지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본다. |
‘BH ○○○ ○○, 보고체계 어기면 파면’. 기자가 최근 한 취재원한테서 받은, 이른바 ‘정보지’의 첫 제목이다.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가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는 가운데, 국정 공백 등과 맞물려 공직사회의 기강 문제가 화두로 부각되고 있음. 이같은 문제가 부각되자 ○○○ BH ○○○○이 ‘보고체계를 어길 경우 파면조치하겠다’며 ○○○ 직원들의 군기를 강화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음.”

사진/ 정보모임은 주로 대낮 여의도 중심가 고급술집 방을 빌려 열린다.(류우종 기자)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발언 사례가 잇따르자, 열린우리당의 이해찬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10월17일 정보지의 폐해를 지적했고 박관용 국회의장까지 나서 즉각 단속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같은 흐름 때문에 요즘 정보지가 생산되는 서울 여의도 분위기는 냉랭하다. 기업에서 언론계쪽으로 흘러들던 정보지 흐름이 일시 중단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정보지는 ‘제호 없는 신문’으로 비싼 구독료를 지불해야 볼 수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두 종류의 실제 정보지.

사진/ 금감원 정보에 민감한 여의도 증권가.(류우종 기자)


사진/ 폭로정치는 상당 부분 정보지를 근거로 한다. 폭로전의 대표격인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한겨레 김경호 기자)

사진/ 김현철씨의 국정농단 사태 역시 정보지가 사건이 터지기 전 이미 경고한 내용이었다.(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