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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남극 올림픽’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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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05 00:00 수정 : 2008-11-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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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대표하는 연구원들이 벌이는 꿈의 제전… 올해 대회서 한국 세종기지가 16년 만에 첫 우승

남극의 겨울은 연구기지를 덮어버릴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린다. 시시때때로 건물들을 집어삼킬 듯이 불어대는 사나운 ‘블리저드’(눈폭풍)는 이곳이 남극임을 실감케 한다. 그러다가 10월이 되면 해가 길어지고 해안가의 눈이 녹고, 새들과 펭귄이 찾아와 생명의 계절을 선물한다. 해가 길어져 밤이 없어지는 백야 기간에는 시계가 없으면 정확한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상주 연구기지들은 주로 백야 기간을 이용해 각종 연구조사를 한다. 반면 겨울이 시작되는 3월부터는 해가 점점 짧아져 낮 시간이 4, 5시간도 채 되지 않는 ‘밤의 제국’이 된다. 이 기간에 대부분의 상주 기지 대원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한다. 오랜 밤을 보낸 남극의 킹조지섬에서 얼마 전 각국의 대원들이 아주 특별한 ‘남극 올림픽’을 열었다.

사진/ 남극의 설원을 그라운드 삼아 축구를 하고 있다.

오랜 겨울을 보낸 기쁨의 축제

남극 올림픽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어둡고 길었던 남극의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살아남은 것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의미를 지녔다. 킹조지섬의 8개 국가 9개 기지 중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러시아·아르헨티나·칠레·우루과이 등 모두 6개 국가, 7개 기지(폴란드와 브라질은 지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어 참여하지 못함)가 칠레 프레이 기지 체육관 등지에서 동·하계 올림픽 종목을 아우른 ‘꿈의 제전’을 열었다. 남극 올림픽은 해마다 4일가량 치러진다. 올해에는 배구·농구·탁구·축구·스키(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열렸다. 그리고 경기 마지막 날에는 성대한 뒤풀이가 열려 각 기지에서 준비한 전통 음식을 모든 대원들이 나눠먹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진/ 남극 킹조지섬에 자리잡은 세종기지. 지상에서 1m 이상 떨어진 건축물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종기지는 올림픽 경기를 대비해 설원 위에 작은 골대를 세워두고 공을 차며 달리는 ‘히딩크식 체력훈련’으로 몸을 만들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맹연습으로 전력을 강화했다. 예선전은 9월20일 세종기지와 아르헨티나 주바니 기지와의 탁구 단·복식 시합으로 시작됐다. 이날 경기는 너무나 싱겁게 세종기지의 승리로 끝났다. 두 번째 예선으로 세종기지와 중국 장성 기지의 농구 준결승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중국팀은 기술과 스피드 면에서 한국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세종기지와 우루과이 아르티가스 기지, 러시아 벨링샤우젠 기지 연합팀간의 배구 경기에서도 한국의 날카로운 공격에 두 연합팀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남극 올림픽에서도 월드컵 못지않은 뜨거운 축구 대결이 펼쳐졌다. 세종기지 대원들에게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다. 10월5일 설상 그라운드에서 세종기지와 맞붙은 상대는 아르헨티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위에 오른 아르헨티나는 이름만으로도 버거운 상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 대표 선수들은 이날만큼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한 각오를 보였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남극 올림픽 우승으로 이어가겠다는 일념이었다. 아르헨티나 대원들도 “축구만은 우리가 최고”라는 각오로 나왔다. 하지만 경기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경기 시작 뒤 연속 3골이 아르헨티나 골문을 가르고 종료 1분 전 아까운 한 골을 허용해 3 대 1로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아무리 아르헨티나의 기술이 뛰어나도 한국의 스피드와 체력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후반전에서도 경기 주도권을 잡은 한국은 2골을 더 추가해 5 대 1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사진/ 고무 보트를 타고 유빙을 헤치고 있다(왼쪽). 막간을 이용해 각국 대원들이 힘자랑을 하고 있다(오른쪽).
하계 올림픽의 꽃이 마라톤이라면 남극 올림픽의 꽃은 단연 스키 크로스컨트리다. 경기 전부터 러시아가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등 그럴듯한 풍문이 돌았다. 탁구 경기에서 한국에 단·복식 모두 우승을 내준 중국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특히 중국 기지 주방장은 우승을 노리며 매일 3시간씩 체력단련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우리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는 우루과이 기지에서 출발해 약 1km 떨어진 돔 근처의 반환점을 돌아오는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강철 체력 김선정 총무와 중국 주방장, 양동운 주방장과 전용문 연구원 등이 선두 그룹을 형성했다. 선두를 달리던 김선정 총무는 중국 주방장의 추격을 끝까지 뿌리치고 1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중국 주방장이 2위를, 결승점 1m를 남겨두고 양동운 대원을 추월한 전용문 대원이 3위를 차지했다.

사진/ 한국 세종기지는 배구에서 이기면서 남극 올림픽의 우승을 확정지었다(왼쪽). 남극 올림픽의 꽃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이 경기에서 세종기지 대표들이 선두권을 휩쓸었다(오른쪽).
10월14일 마지막 날에 배구·농구 경기 결승전이 열렸다. 칠레는 기지 인원 70~80명 중에 선발된 정예 선수단으로 해마다 1위 자리를 독차지했다. 이날 경기 참가를 위해, 칠레 기지 대장이 손수 경비행기를 몰고 빙원에 착륙해 우리 선수들을 칠레 체육관까지 태우고 갔다. 우리 대원들은 경비행기를 처음 탔는데 곡예비행으로 거의 기절 직전에 몰리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 대원들의 경기력을 떨어뜨리려는 ‘전술’(?)이었을까. 첫 경기로 벌어진 칠레와의 농구 경기에서는 실력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작은 신장으로 칠레의 지역 방어전술과 강한 체력을 끝내 돌파할 수 없었다. 중국·우루과이·러시아 대원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은 3점을 앞선 채 전반전을 끝냈다. 하지만 한국은 체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칠레에 35 대 22로 분패하고 말았다.

사진/ 남극의 봄은 10월 무렵부터 시작돼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진다. 한 대원이 유빙에서 잠수 시범을 보이고 있다(왼쪽). 한국팀의 우승이 확정된 뒤 세종기지에서 각국 대원들이 뒤풀이를 하고 있다(오른쪽).

숨막히는 접전 연출 “대한민국 만세”

남극 올림픽의 우승 향방은 마지막 배구 경기 결승전에 달려 있었다. 이번엔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세종기지의 파이팅 소리는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1세트 경기는 일방적으로 한국이 앞섰다. 하지만 2세트를 따내 우승에 쐐기를 박으려는 한국과 결코 우승기를 넘겨줄 수 없다는 칠레가 듀스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결국 승리는 세종기지의 몫이었다. 배구 경기가 끝나는 순간 세종기지의 우승이 확정되었고, 우리들은 서로 끌어안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그렇게 16년 만에 남극 올림픽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을 겸한 파티가 세종기지에서 열렸다. 각국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모습은 남극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킹조지섬(남극)= 전용문 | 세종기지 지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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