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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동생의 악몽/ 안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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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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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나는 아직도 내 군대 동기가 맞아 죽는 꿈을 꿔.”

20년 전, 빡빡머리 신병인 막내 동생과 함께 막 자대 배치를 끝낸 동기 중 한명이 기합 도중 가슴을 얻어맞고 바로 옆에서 숨진 사건이 있었다. 목격자라는 이유로 동생은 헌병대에 불려가 3~4일간 가혹행위를 당하며 조서작성을 해야 했는데, 보고 당한 바를 그대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인은 대대장 의도대로 ‘작업 중 사고사’로 처리되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기

며칠 뒤 비보를 듣고 달려온 동기 부모가 동생을 붙잡고 ‘진실’을 말해줄 것을 간곡히 요구했으나, “부대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막내. 양심을 저버린 그때 행동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는 막내.


동생은 사건 직후 외출하는 부대원 편에 ‘사제편지’를 보내왔다.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다. 학력도 집안도 별 볼일 없지만, 용접공 특기 지원병으로 들어온 친구에게 어떻게 군대가 이럴 수 있느냐. 사람을 때려 죽이는 이런 집단에선 하루도 더 살 수 없다. 당장 여기서 나가겠다.”

물론 동생은 감히(?) 탈영을 하지 못했다. 눈물로 만류하던 부모님의 지극정성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내 동생은 아직도 이해 못한다고 했다. 장례비로 7천원이 지급되었던 그 동기의 죽음을….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군대 내 폭력 및 사망, 성폭력 등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대 내 비민주적 폭력행위의 뿌리는 한국군의 창군기에 있다. 한국군 창군시 미군정은 민족적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기술적 면만 강조한 결과, 일본군 출신의 군사기술자들이 한국군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일본군의 부정적 운영방식인 구타, 기합 등이 그대로 한국군에 옮겨졌다. 그리고 군 출신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계속 집권함으로써 권위주의적인 군사문화가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그 결과 군대 내의 구타, 가혹행위 등 군인 개개인의 인권과 존엄성 침해는 심각한 수준이고, 더 심각한 사실은 이로 인한 자살과 의문사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2000년 국정감사 국방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연간 1500명이 탈영하고 300명이 사망하며, 자살자가 100명에 이른다. 이는 평균적으로 매일 3명이 탈영하고 1명이 사망하며, 사흘에 한명꼴로 자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국방부의 특별조사단 설치는 구호에 그치고 있으며, 일본식 병영문화가 아직 잔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군 지휘관의 보신주의- 승진·보직시 악영향을 우려해 자체 해결에 나서면서 은폐·조작·축소·왜곡을 일삼는 행태- 가 활개치는 분위기에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식’의 문제해결은 이제 그만 중지시킬 일이다. 최근에 발표한 국방부의 ‘군 기강확립 종합대책’도, 7월14일부터 31일까지 불과 2주일에 걸친 단기간의 조사기간으로, 그것도 육군만을 대상으로 한 한시적이고 미봉적인 졸속작품이었다.

군옴부즈맨제도 도입하라

세계적인 인권대통령을 배출한 국가, 인권국가 실현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가 이처럼 군대를 인권 사각지대로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군인의 인권보호는 군 조직의 생리와 특수성 논리가 절대 우선시될 수 없는 국가 본연의 임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인은 ‘제복을 입은 시민’(citizens in uniform)으로서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기본권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군사법제도의 개선과 함께 군대의 인권상황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는 외부통제기관으로, 또 조기경보 시스템으로서 군옴부즈맨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군옴부즈맨(대리인)을 두자. 군옴부즈맨은 민간인이어야 하며, 군대 내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감독·지휘할 법적 권한을 갖는다. 부당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판단될 경우, 군인 개개인은 누구라도 군대 내 공식채널을 거치지 않고 군옴부즈맨에게 직접 청원할 권리를 갖는다. 군옴부즈맨제도는 현재 유명무실화된 소원수리제도나 내부공익신고센터 등을 대체하고, 우리 군대의 기본 속성인 폐쇄주의·비밀주의·성역화 경향을 극복하는 데도 일조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막내의 악몽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이기적인 바람과 함께….

안정애 | 평화여성회 국방과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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