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빈민의 투쟁에 연대의 손 내미는 민중의료연합, 그 지난한 활동의 역사
“고맙다”고 하면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간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함께한다. 어느 친절한 서비스센터 이야기가 아니다. 98년 10월부터 농성장을 찾아다니며 의료지원을 해온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이하 민의련) 민중연대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노동자들이 ‘고맙다’고 하면 오히려 화가 나요. 저희는 봉사하러 가는 게 아니거든요. 투쟁하는 노동자, 탄압받는 빈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가는 겁니다. 그러니 저희한테 고마울 필요가 없죠. 당연한 저희들 소임인 걸요.” 민중연대팀 민혜경(28·약사)씨는 잘라 말했다.
모두가 제 밥그릇 지키겠다고 목청 높이는 세상이지만 민의련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 의약품 가방을 짊어진 채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맨 지 벌써 3년째. 다친 노동자가 있는 농성장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아픈 빈민이 몸져누운 철거촌이라면 어느 때라도 마다 않았다. 때로는 부상자가 속출하는 집회현장에도 출동했다. 의료인이라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특권일 수도 있는 지위를 던져버린 채.
“고맙다”는 말에 화가 나는 사람들
다들 안온한 저녁식탁이 기다리는 집으로 스며들 금요일 저녁 8시. 병원에서, 약국에서 피곤한 하루일과를 마친 ‘민의련 민중연대팀’ 사람들은 의약품 가방을 챙겨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7월21일은 농성중인 (주)새한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날. 서둘러 서울 영등포산업선교회 3층 농성장에 도착했다. 삭발을 한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이들을 맞았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 왔습니다. 민의련 민중연대팀장 박균배입니다.” “민의련 학생회원 조영민입니다. 많이 배우고 가겠습니다.” “고생 많으시죠? 민혜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데이”라며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답하는 (주)새한 노동자들. 구미에서 올라와 열흘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진료가 시작됐다. 아무래도 첫 만남이라 분위기가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쭈뼛거리던 노동자들이 아픈 곳을 내보이며 너도나도 의료진에게 다가선다. 다행히 조합원들이 젊은 층이라 다른 농성장에 비해 아픈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7월6일, 전기봉을 들고 농성장에 들이닥친 구사대에 밀리고 깔려 다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손목인대가 늘어난 사람, 어깨통증을 호소하는 사람, 허리를 다친 사람, 오랜 한데 생활로 감기에 걸린 사람…. 회사쪽과 첨예하게 맞서느라 다들 아파도 병원에 갈 여유가 없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농성장까지 찾아와 무료진료를 해주는 이들이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다. 진료를 받고 돌아서는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웃음기가 돈다. 진료에 여념이 없는 권태식(31·한의사)씨는 “그저 건강상담을 해주고 간단히 응급처치를 하는 정도”라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어느새 농성장 여기저기에서 침맞는 노동자들, 약을 타가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의사와 한의사가 진료를 하는 사이, 농성장 한쪽에서 미처 다 풀지 못한 약품 꾸러미를 풀어헤치는 박균배(29·약사)씨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농성장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노동자들에게 말을 붙이던 민혜경씨가 이따금 박씨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둘은 98년 10월부터 변함없이 ‘민의련 민중연대팀’을 이끌어 온 두축이다. 물론 힘들어 중간에 그만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용케 2년을 버텨온 두 사람. 매달 빠짐없이 서너군데씩 의료지원을 나가다보니 이제 웬만한 농성장은 다 둘러보았을 정도다. 건강권 보장은 '연대'를 통해
그 중에서도 특히 이곳 영등포산업선교회 3층 농성장은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장소다. 숱한 파업노동자들이 거쳐간 현장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들를 때마다 어김없이 현대중기 늙은 노동자들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젊을 때 ‘산업전사’로 추켜지다 구제금융 한파가 몰아치자 가장 먼저 정리해고 대상이 된 현대중기 50대 노동자들. 450여일이 넘는 원직복직투쟁 동안 하나둘씩 쓰러져 급기야는 한 조합원을 위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몸도 마음도 무너진 현대중기 노동자들은 바로 이곳에서 눈물로 얼룩진 해단식을 치렀다. 99년 한해를 꼬박 현대중기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민혜경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마 이름이 육경원씨였죠. 매일 먹지도 못하고 토하기에 병원에 가보라고 여러 번 권했어요. 그래도 안 가시더라고요. 자기 몸 챙기실 틈도 없었던 거죠. 어느 날 (농성장에) 갔더니 그분이 안 계시더라구요. 결국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하대요. 그리고 얼마 뒤 돌아가셨어요.”
지금도 그 노동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린다는 민씨. 파업현장 못지않게 건강권이 위협받는 현장은 철거촌이라고 덧붙인다. 열악한 생활환경에 잦은 싸움까지 겹쳐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 상암동, 의정부 최촌마을, 의왕시 오전동…. 그동안 이들이 찾아다닌 철거현장만 해도 10여군데. 보통 철거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년씩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지원활동은 지속적이다. 의료지원은 물론 유인물배포나 포스터부착도 마다하지 않는다. 박균배씨와 민혜경씨가 의기투합한 것도 98년 오전동 철거현장에서였다. 박씨는 철거민들에 인정받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되새긴다.
“철거민들이 나중에 털어놓는 얘긴데요. 처음에는 ‘한두번 오다 말겠지….’ 했대요. 의사나 약사라고 하니까 거리감도 있었고요. 몇달씩 계속 찾아가니까 그제야 진심으로 받아주시더라구요.”
이처럼 지난한 과정이지만 민의련 사람들은 연대활동을 고집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는 보건의료인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의료인과 노동자, 의료인과 빈민이 연대하고 힘을 합칠 때 비로소 건강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지원을 나갈 때마다 진료 못지않게 대화를 중요시한다. 농성장에 들를 때마다 빠짐없이 간담회를 가지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동지’로 인정받기까지
이날 역시 민혜경씨를 비롯한 민의련 사람들은 약 챙기느라, 노동자들을 붙잡고 얘기나누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민씨가 자꾸 말을 걸지만 노동자들은 아무래도 처음이라 서먹서먹한 듯했다. 하지만 서너번 방문이 이어지면 어느새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게 되고 민의련 사람들을 ‘동지’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민씨는 의료지원 그 자체가 방문의 목적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진료 그 자체는 연대를 위한 매개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알리는 게 저희들한테는 더 중요합니다”
하나둘씩 노동자들이 빠져나가고 진료가 마무리될 때쯤 박균배씨가 여러 종류의 약을 큰 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무좀약, 습진약, 타박상 치료제, 진통제…. 농성중에 요긴한 상비약이다. 약 봉지를 꼼꼼히 챙겨주고, 마지막으로 노조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어느새 시계바늘은 밤 1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만날 이렇게 늦게 끝납니꺼?”
“의료지원에 회의까지 하다보면 거의 매일 이렇죠 뭐.”
“근데…. 단체 이름이 정확히 뭐라 캤더라…”
“민중의료인연합회의? 맞는교?”
“아뇨.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입니다.”
저녁 나절을 꼬박 함께했지만 노조 간부들은 아직 이들의 이름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방문이 몇번 더 이어지면 이 노동자들도 ‘민중의료연합 민중연대팀’을 또렷이 기억하고, 손님이 아닌 동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연대한 노동자들과 철거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사진/민중의료연합의 민혜경(가운데)씨가 노동자들에게 나눠줄 약을 짓고 있다)
다들 안온한 저녁식탁이 기다리는 집으로 스며들 금요일 저녁 8시. 병원에서, 약국에서 피곤한 하루일과를 마친 ‘민의련 민중연대팀’ 사람들은 의약품 가방을 챙겨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7월21일은 농성중인 (주)새한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날. 서둘러 서울 영등포산업선교회 3층 농성장에 도착했다. 삭발을 한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이들을 맞았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 왔습니다. 민의련 민중연대팀장 박균배입니다.” “민의련 학생회원 조영민입니다. 많이 배우고 가겠습니다.” “고생 많으시죠? 민혜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데이”라며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답하는 (주)새한 노동자들. 구미에서 올라와 열흘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진료가 시작됐다. 아무래도 첫 만남이라 분위기가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쭈뼛거리던 노동자들이 아픈 곳을 내보이며 너도나도 의료진에게 다가선다. 다행히 조합원들이 젊은 층이라 다른 농성장에 비해 아픈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7월6일, 전기봉을 들고 농성장에 들이닥친 구사대에 밀리고 깔려 다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손목인대가 늘어난 사람, 어깨통증을 호소하는 사람, 허리를 다친 사람, 오랜 한데 생활로 감기에 걸린 사람…. 회사쪽과 첨예하게 맞서느라 다들 아파도 병원에 갈 여유가 없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농성장까지 찾아와 무료진료를 해주는 이들이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다. 진료를 받고 돌아서는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웃음기가 돈다. 진료에 여념이 없는 권태식(31·한의사)씨는 “그저 건강상담을 해주고 간단히 응급처치를 하는 정도”라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어느새 농성장 여기저기에서 침맞는 노동자들, 약을 타가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의사와 한의사가 진료를 하는 사이, 농성장 한쪽에서 미처 다 풀지 못한 약품 꾸러미를 풀어헤치는 박균배(29·약사)씨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농성장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노동자들에게 말을 붙이던 민혜경씨가 이따금 박씨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둘은 98년 10월부터 변함없이 ‘민의련 민중연대팀’을 이끌어 온 두축이다. 물론 힘들어 중간에 그만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용케 2년을 버텨온 두 사람. 매달 빠짐없이 서너군데씩 의료지원을 나가다보니 이제 웬만한 농성장은 다 둘러보았을 정도다. 건강권 보장은 '연대'를 통해

(사진/의료지원을 나온 김종석(오른쪽)씨가 (주)새한 노동자들에게 의료상담을 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