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사회고등학교/ 이영미

480
등록 : 2003-10-16 00:00 수정 :

크게 작게

청소년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사전적인 의미로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접어드는 미성년의 젊은이. 흔히, 10대 후반의 젊은이를 일컬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학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로 오는 문서에 적힌 각종 대회의 참가 자격이 ‘중·고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문구를 아무런 의식 없이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속에 너무나 큰 불평등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한 일이 있었다.

‘청소년=학생’이란 편견


우연하면서도 특별한 인연으로 사제지간이 된 아이가 있다.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고 나 또한 아끼는 제자로 생각하는 그 아이가 얼마 전 나의 권유로 한국청년연합회(KYC) 대구본부에서 주관한 ‘원폭피해자와 함께하는 평화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1박2일의 봉사활동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선생님, 너무 좋던데요. 진짜 재미있었어요”로 이틀 동안의 일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아이.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평화캠프 참여는 좋은 경험과 기억하고픈 추억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그 아이의 모습이 크게 남아서였는지 책상정리를 하다 발견한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 관한 안내문이 관심을 끌었고 평화캠프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 정리해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 참가해보라고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석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좋은 기회라 싶었는데 신청 기간이 지나서 아쉬움이 컸다. 올해는 기회가 없지만 다음에는 놓치지 말고 참가시켜봐야지 하는 마음에 필요한 것들을 살피다 참가 대상에서 눈이 멈추었다.

‘참가 대상 - 시내 중·고 재학 중인 청소년’.

‘중·고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라면 학생만 된다는 거잖아. 그럼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안… 된… 다… 는…’ 하는 생각이 들자 이제까지 이것에 대해 아무런 의식이 없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아이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에 청소년이지만 학생은 아니다.

아이의 소중한 경험담을 또래 아이들에게 전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에 참가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불평등한 일인가. 행사명은 ‘학생 자원봉사대축전’이 아닌 ‘청소년 자원봉사대축전’이지만 참가 대상은 재학생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만 된다니 말도 안 돼. 이런 게 어딨어?’ 나도 모르게 거칠게 튀어나온 말. 그러면서 ‘왜 이제까지는 한번도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런 불평등을 선생인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사회고’라는 학교를 아는지 열여덟살의 아이는 당연히 학생일 거라는 무지에 가까운 편견,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 ‘어느 학교 다니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사회고’에 다닌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사회고’라는 특별한(?) 학교를 만들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편견에 대한 그들 나름의 눈물나는 몸부림이 아닐까.

“사고 치고 잘린 모양이군”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한마디에 더 이상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들은 마음의 문이 더 굳게 닫힌다고 한다. 학교를 떠난 이유는 다양하건만 더 이상 묻지 않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을 거라고. ‘사고 치고 잘린 모양이군.’

어른들의 마음속에 높다란 벽 하나가 쌓이기 시작하고 그 벽에 편견과 차별이 장식처럼 달리는 것이 느껴진다는 아이들.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참가 대상 - 중·고 재학 중인 학생 (또는 청소년)’.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이 있어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할인’에만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부분들을 찾아 개선해야 함이 우리의 과제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보듬어 안아야 할 아이들이 ‘학생’만은 아니기에.

이영미 | 대구 경상여중 과학교사 · <작은 친절> 지은이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