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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윌리엄 스타이그] ‘95살의 어린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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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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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많은 어른의 의무를 해냈지만 나를 쥐어짜야 했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적이 없다.”

사진/ AP연합
61살에 어린이책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월리엄 스타이그(William Steig)는 왜 그 나이에 어린이책을 쓰게 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했다. 어른답지 못하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때론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게 성공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스타이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러나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운 녹색 괴물 이야기 <슈렉>의 원작 동화를 쓰는 등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어린이책 작가가 됐다. 그가 95살의 나이로 지난 10월3일(한국시각 10월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린이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카툰(풍자만화) 작가였다. 1907년 뉴욕에서 페인트공과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난 스타이그는 1930년 대공황 시기에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잡지 <뉴요커>에 풍자만화를 그려 판 것을 계기로 이 잡지의 카툰작가로 활동하며 1600개 이상의 카툰을 그렸다. ‘카툰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공한 만화가·삽화가였던 그는 1968년 남들이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어린이책 작가로 변신했다. 동료가 기획한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우연히 시작한 일이지만 ‘초보작가’ 시절에 쓴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이 어린이책 최고의 상인 ‘칼데콧’ 상을 받는 등 곧 어린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가 됐다.

순진무구한 시선과 경쾌한 선을 두른 그림이 인상적인 그의 어린이책들은 부모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분리불안, 죽음과 재탄생, 다른 존재로 몸이 변형되는 것 등을 소재로 가족, 집, 자연에 대한 사랑, 자신감 등을 이야기한다. 그가 쓴 30여권의 어린이책 중 <멋진 뼈다귀> <아벨의 섬>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슈렉> 등 10권 이상이 한국에도 번역돼 있다. 성공 비결에 대해 “어린 시절이 즐거웠고, 지금도 어린아이와 있는 것이 어른들과 있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항상 작고 순수한 상태로 있고 싶다. 그것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한 그는 거액을 받고 팔 수 있는 원화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태워버릴 정도로 ‘어른답지 않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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