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기자의 10월2일 전두환씨 동산 경매 참여기… 60만원 들고 가 명함도 못 내밀고 돌아오다
5·18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이 질문에 ‘먹고살기 힘든데 괜스레 골치 아픈 얘길 꺼낸다’는 반응을 보일 독자가 계실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월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는 이 ‘골치 아픈’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이자 ‘반란 수괴’인 전두환(72)씨의 동산에 대한 경매가 벌어진 것이다. 이날 경매는 전씨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씨는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으나 그동안 추징금의 14%인 314억원만 집행됐다. 검찰은 전씨 재산 추적 전담반까지 만들었지만 성과가 없자, 전씨의 살림살이와 소장품 중 일부를 경매에 부쳤다.
낙찰가, 감정가의 10배 이상 오르다
이날 경매에 부쳐진 전씨 동산의 평가 총액은 1790만원. 미납액 1891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다분히 ‘생색내기용 경매’였던 것이다. 따라서 욕만 실컷 해주고 외면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5·18을 잠시나마 ‘복원’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둘 수 있는 행사였다. 그래서 격론(!) 끝에 <한겨레21>도 경매 취재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몇몇 기자가 ‘직접 경매에 참가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겉으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한 얘기를 취재할 수 있고, 운좋게(?) 낙찰이라도 받으면 그 물건을 사무실에 전시해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의견이었다. 탐탁지 않게 여기던 기자들도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경매꾼’으로는 12·12 및 5·18사건 재판을 취재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선정됐다(기자는 1996년부터 1년여 동안 진행된 이 재판의 전 과정을 취재했다).
경매자금으로 회사에서 50만원을 지원받았다. 경매 물건 중 감정가가 5만원인 도자기도 있었기에 넉넉잡아 그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경매에 나온 40여점의 물품은 모두 7필지로 묶여 일괄 경매에 부쳐지고(그래서 경매 최저가가 예상보다 높아졌다), 낙찰가는 감정가의 10배 이상으로 치솟을 줄을.
10월2일 오후 2시. 전씨가 사는 연희동 95번지 일대는 동네 어귀부터 시끌벅적했다. 기자는 꼭 9년 만에 연희동을 다시 찾았다. ‘문민정부’ 출범 두해째인 1994년 봄부터 학생운동권에서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었는데, 학생들은 이른바 ‘전·노 체포조’를 구성해 연일 연희동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당시 복학생이던 기자도 몇 차례 참석했다. 그 뒤 10년이 지난 연희동은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로마 병정처럼 중무장한 전경들과 ‘닭장차’는 보이지 않고, 사복 차림의 의경 10여명만이 전씨 자택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를 막고 있었다(나중에 경매가 진행될 때 ‘질서유지’를 위해 2개 중대 규모의 의경들이 ‘추가파병’됐다).
경매 물건이 전시된 전씨 경호원들 숙소 앞에는 경매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보, 주발대접이 뭐여?” “그것도 몰러유? 부엌에 있는 대접 말하는 거 아니유.” “그래 그걸 뭣에다 쓰라고 내놨다냐.” 60대 부부가 육중한 철문 앞에 붙어 있는 경매 목록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 주변으로 신문과 방송, 사진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무슨 물건을 사러 오셨나요?” “낙찰받은 물건은 어디에 쓰실 거예요?” “…” 20여분이 지난 뒤 경호원 숙소 앞은 경매 참가자들과 취재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잠시 뒤 의경들이 투입됐다.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군중’을 정리하자 곧 육중한 철문이 열렸고, 바로 문 앞에 서 있던 기자들부터 ‘전시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기자들이 왜 먼저 들어가나. 물건 살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야지.”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전시장으로 향하는 기자들의 뒤통수에 대고 쏘아붙였다. 욕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지만 내 뒤통수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여보쇼! 신용카드는 안 되우?”
30여분이 지난 뒤 드디어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와 함께 들어간 20여명의 경매 참가자들은 전직 대통령의 살림살이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들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설렘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아니, 무슨 물건이 이래? 창고에나 쌓아둘 물건을 경매로 내놓은 거 아냐? 차라리 벼룩시장이 낫지.” “이걸 돈 주고 사라고 내놨어? 저 진돗개(감정가는 2마리에 40만원) 빼놓곤 다 쓸모없잖아.” 여기저기서 푸념이 들려왔다. 실제 경매로 나온 물건은 형편없었다. 몇몇 동양화와 도자기를 제외하곤 ‘소장 가치’를 부여할 만한 물건이 없어 보였다.
가전제품 등 살림살이도 너무 오래돼서 구매 의욕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때 갑자기 거실이 소란스러워졌다. 70대 할머니가 피아노 앞에 앉아 ‘고향의 봄’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예요? 할머니! 그만하세요.” 법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대꾸했다. “아니, 소리가 나는지 확인해봐야 될 거 아냐!” 할머니는 노기 띤 목소리로 법원 사람들을 꾸짖었다. “오늘이 노인의 날(10월2일은 국가가 정한 노인의 날이다!)인데 왜 그래? 노인한테 마실 것도 한잔 안 주면서….” 썰렁했던 전시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경매는 경호원 숙소에서 500여m 떨어진 ‘궁말 어린이놀이터’에서 열렸다. 경매장은 전시장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시장에서는 보지 못한 ‘경매꾼’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구경꾼들이 놀이터 뒤쪽으로 물러나자 경매가 시작됐다. 법원 관계자가 경매 방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49점을 7개 필지로 나눠서 합니다. 저기 붙여놓은 경매 목록을 확인하시고 신청서에 필지 번호와 이름, 주소를 적어서 갖고 계시다가 순서가 되면 신청서를 갖고 앞으로 나오세요.” 오 마이 갓! 물건을 7개 묶음으로 나눠서 경매를 하겠다니…. 그러면 경매 단가가 커질 게 아닌가. 7개 필지 중 가장 감정가가 낮은 것은 30만원에 나온 골프 세트였다. 당혹스러웠다. 이러다간 명함도 못 내밀어보는 거 아냐? 그러나 당황해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묶어서 경매한다는 걸 진작에 알려줬어야지. 낱개로 하는 줄 알고 돈을 조금밖에 안 찾아왔는데, 낭패일세.” “신문에는 왜 그런 중요한 정보가 안 나오는 거야?” “여보쇼! (신용)카드는 안 되우?” “카드 갖고 경매하는 거 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나는 경매 목록을 다시 살펴봤다. 골프 세트 다음으로 감정가가 낮은 것은 55만원짜리 도자기 세트였다. “그래도 한 10배까지는 오를 텐데. 500(만원) 정도는 있어야지….” 내가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을 등 뒤에서 엿보던 50대 남자가 중얼거렸다.
5·18 전씨쪽 변호인을 만나다
드디어 경매 시작. 필지1을 신청한 사람들이 앞으로 모였다. 진돗개 2마리를 포함해 가전제품으로 구성된 필지1의 감정가는 630여만원. 그러나 경매가는 시작하자마자 1천만원을 훌쩍 넘었고, 5분 뒤 5천만원까지 치솟더니 마지막 2명이 남았을 때는 7천만원까지 올랐다. “너무하네. 이거…” 40대 남자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기권하자 최종 낙찰가가 정해졌다. 7800만원. 물건은 한 수집상의 대리인으로 참석했다는 50대 남자가 차지했다. “전 대통령과 아는 사인가요?” 그는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아무런 대꾸도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완전히 사기야, 사기. 전씨한테 이 물건을 다시 돌려주려고 측근들이 몽땅 사가는 거야. 틀림없어.” 여기저기서 ‘음모론’이 제기됐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7천만원까지 가요, 그게.” 필지2 물건은 골프 세트였다. 이 골프 세트도 감정가의 30배인 900만원에 낙찰됐다. 내가 신청한 필지3 차례가 됐다. 도자기 세트라서 그런지 신청자가 앞의 두 필지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신청자 중에는 5·18재판 때 전씨쪽 변호인이던 정주교 변호사도 있었다. 내가 아는 체를 하자, 그는 “황영시 원장(12·12 및 5·18때 전씨 측근으로 쿠데타에 가담했고, 그 공으로 뒤에 감사원장을 지냄)의 부탁으로 도자기를 구입하러 왔다”며 인사를 건넸다. ‘음모론’이 점점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었다.
내 ‘배팅’ 순서는 4번째였다. “자 갖고 계신 현금을 모두 꺼내세요. 시작합니다.” 나는 회사 공금 50만원에다 내 수중에 있던 1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잠시 뒤 나는 그 돈을 도로 지갑에 넣어야 했다. 첫 번째 신청자가 첫 배팅에서 600만원을 불러버린 것이다. 2번과 3번이 차례로 기권을 했고 나도 기권을 선언했다. 도자기 세트는 20여차례 호가가 이뤄진 뒤 2500만원에 50대 남자에게 낙찰됐다. 그는 아까 내 신청서를 보고 ‘조언’을 해준 사람이었다.
“전두환 각하는 다시 평가받아야 할…”
꼭 물건을 구입하는 게 목적은 아니었지만 좀 허탈했다. 7개 필지는 모두 1억8천여만원에 팔렸다. 도대체 이 물건들을 몇천만원씩 주고 산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는 다시 평가받아야 할 분입니다. 지금 같은 때는 그런 분이 또 나와야 돼요. 오늘 구입한 물건을 다시 그 분께 돌려드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대접, 주전자 등을 1200만원에 낙찰받은 한 남자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경매장 옆에서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벌였다. “전두환의 은닉재산을 환수하라!” “재산 은폐한 전두환을 즉각 구속하라!” 5·18은 아직 ‘역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였다. 2003년 10월2일 연희동은 이를 말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 이춘재 기자가 60만원을 들고 연희동을 찾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산 경매 현장.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명함도 못 내밀고 돌아왔다는데…. |
5·18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이 질문에 ‘먹고살기 힘든데 괜스레 골치 아픈 얘길 꺼낸다’는 반응을 보일 독자가 계실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월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는 이 ‘골치 아픈’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이자 ‘반란 수괴’인 전두환(72)씨의 동산에 대한 경매가 벌어진 것이다. 이날 경매는 전씨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씨는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으나 그동안 추징금의 14%인 314억원만 집행됐다. 검찰은 전씨 재산 추적 전담반까지 만들었지만 성과가 없자, 전씨의 살림살이와 소장품 중 일부를 경매에 부쳤다.

전두환씨의 동산 경매 현장에서는 돈이 곧 힘이요, 정의였다. 경매에 부쳐진 물건은 감정가의 10배 이상의 가격에 모두 낙찰됐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춘재 기자.
이날 경매에 부쳐진 전씨 동산의 평가 총액은 1790만원. 미납액 1891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다분히 ‘생색내기용 경매’였던 것이다. 따라서 욕만 실컷 해주고 외면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5·18을 잠시나마 ‘복원’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둘 수 있는 행사였다. 그래서 격론(!) 끝에 <한겨레21>도 경매 취재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몇몇 기자가 ‘직접 경매에 참가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겉으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한 얘기를 취재할 수 있고, 운좋게(?) 낙찰이라도 받으면 그 물건을 사무실에 전시해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의견이었다. 탐탁지 않게 여기던 기자들도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경매꾼’으로는 12·12 및 5·18사건 재판을 취재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선정됐다(기자는 1996년부터 1년여 동안 진행된 이 재판의 전 과정을 취재했다).

“60만원으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전문 경매꾼들 사이에서 경매 전략을 짜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직 대통령의 소장품은 의외로 평범한 것들이 많았다. 경매 참가자들이 경매물건 전시장인 전씨 경호원 숙소에서 경매 물품을 관람하고 있다.

전씨 동산 경매 현장은 ‘정의’와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전씨 물건을 구경하러 몰려온 사람들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당원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