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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많이 가지면 행복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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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01 00:00 수정 : 2008-11-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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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중독사회에서의 외로운 노력,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들

많이 가질수록 당신은 행복한가, 아니면 허전한가 지독한 소비중독사회에서 삶의 가치를 다른 곳에 두는 사람들이 있다. 더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요즘 박병희(40·서울 중랑구 면목동)씨는 보름 넘게 마음이 우울하다. 일종의 추석 후유증이다. 박씨는 추석 연휴 때 고향에서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소주 한잔 하는 부담 없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어떡하다 보니 ‘돈자랑’ 경연대회가 되고 말았다.

“집값이야 지역마다 차이가 크니 이야기가 좀 나오다 말았는데, 차 자랑이 끊이지 않더군요. 3천만원이 넘는 대형차나 다용도 레저 차량을 풀옵션으로 뽑았다는 자랑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사업하는 친구들은 1년에 수십억원을 번다는 둥, 제주도에 땅을 몇천평 사뒀다는 둥, 30대는 30평대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40대는 40평대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등, 3시간 동안 온통 돈 버는 이야기로 시작해 돈 버는 이야기로 끝났어요.”

사진/ 한국불교환경교육원 관계자가 화장실에 있는 뒷물용 샤워기 작동법을 보여주고 있다. 정토회관 화장실 문에는 외부 방문객을 위해 ‘휴지가 없어서 놀라셨나요’란 샤워기 설치 이유와 사용법이 적혀 있다.

소비지상주의는 무엇을 남겼는가

박씨는 이때까지는 그런 대로 버틸 수 있었다. 자리를 마치고 나오는데 고교시절 학업성적이나 품행이 그리 모범적이지 않던 친구들이 100만원이 넘는 밥값을 치르고 2차 술자리를 주선하겠다고 나서자 왠지 모를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대학 진학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사실 직장과 직함이 적힌 명함만 빼면 나는 빈껍데기 신세가 아닌가. 아파트 한채가 전 재산이고, 아이들 과외 돈 마련에 허리가 휘는 게 내 신세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휩싸인 박병희씨는 ‘내가 그동안 헛산 게 아닌가’ 하는 열패감에 시달리고 있다.

박씨뿐만 아니라 한가위나 설 같은 명절 뒤 친척이나 친구들끼리 돈 문제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몇년 전부터 덕담도 ‘돈 많이 벌어라’ ‘부자되거라’ 등이 인기이고,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는 ‘10억 만들기’가 큰 관심사가 됐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198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끌었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 가사다. 이 노래 가사처럼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돈이든 이름이든 내가 산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끝없는 즐거움이 있다고 광고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다. 코엑스몰에서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은 화장실 가기나 걷거나 서서 오가는 사람 구경하기 등이다.
미국 사람 존 더 그라프 등 3명이 지은 <어플루엔자>는 ‘많이 가질수록 왜 허전하지’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들은 소비 중독에 빠진 미국 사회를 맵고 눈물나게 비판한다. 저자들은 어플루엔자가 공인된 질병이 아니지만, 실재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어플루엔자는 ‘풍요로운’(Affluent)과 ‘독감’(Influenza)의 합성어로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수반한다’고 정의된다.

이들은 소비지상주의 생활방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인간까지 소비시켜버리고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심각한 병적 상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을 처음 방문한 테레사 수녀는 미국의 눈부신 발전에 감탄하기는커녕 “(미국은)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나라 중 가장 (영혼이) 가난한 나라다”고 혀를 찼다고 한다.

저자들이 제시한 어플루엔자 치료방안은 ‘검약 생활 프로그램’ ‘자발적 생활 단순화운동’ 등인데, 가장 핵심은 개인이 생활 지향을 ‘더 가지는 것’에서 ‘자기성찰·가족·자연·행복’ 등에 두는 삶의 자세 전환이다.

대량생산문명에 대한 반발, 슬로푸드

우리 사회도 치솟는 가계 부채, 신용불량자 양산 등의 소비중독병을 앓고 있다. 대형 할인점이나 쇼핑몰 등이 다투어 들어서면서 소비 중독현상은 더욱 깊어진다. 우리 사회는 소비 권하는 사회다.

정아무개(32·회사원)씨는 추석 때 회사에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대형 할인점 한곳을 정해 가격 제한 없이 갖고 싶은 상품을 쇼핑 카트에 실을 수 있는 데까지 싣고 계산대까지 끌고 오면 몽땅 자기 것이 되는 이벤트 참여권을 받은 것이다. 추석 연휴 전 정씨 회사 동료들은 어떻게 해야 총액이 최대한 큰 물건으로 카트를 채울 수 있을지 머리를 짜내느라 즐거워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많이 갖고 많이 소비하면 진짜 행복해지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일 뿐 아니라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생태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태계를 후손에게 대를 이어 물려주어야 한다고 본다. ‘덜 갖되 더 많이 존재하는 삶’을 위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하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이야말로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삶이란 것이다.

사진/ 서울 시립청소년 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에서 슬로푸드를 만들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을 끄는 슬로푸드(slow food)는 생산성과 속도로 드러나는 대량생산 문명에 대한 반발이다. 슬로푸드운동의 시작은 1986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미국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자 일단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식사·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슬로푸드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대량소비가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환경과 경관을 위협한다고 보고 그 대안을 슬로푸드에서 찾고 있다.

여러 해 전부터 적극적인 사람들은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귀농운동’을 펼치고 종교 공동체 성격을 강하게 띤 생태공동체 마을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평범한 생활인이 이런 움직임에 쉽게 동참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도시인은 ‘도시에서 어떻게 생태적으로 살 수 있을까’란 고민에 빠진다.

김아무개(42·주부·서울 강북구 번동)씨는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아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기’란 강좌를 들었다. 김씨에게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게 마음대로 되더냐’고 물었더니 “농담 좀 섞어 이야기하면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것은 허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될 수 있으면 자연에 해를 덜 끼치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환경단체에서 이야기하는 게 현실에서 가능할지 좀 회의적이다. 그동안 해온 생활과 너무 동떨어진 게 많아서 문화적으로 충격이 크다. 장 보러 가도 비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세탁할 때 처음 물은 버리지만 두 번째 물은 화장실 물 내리는 데 쓴다. 생리대도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강좌 들으면서 마음이 불편하다. 환경이 망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나서 제대로 행하지 못하니 더욱 마음이 불편하다.”

쓰레기 0운동, 정토회관의 실험

‘도시라는 공간을 선택한 우리에게 생태적 삶으로의 선택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까’란 화두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만나러 서올 서초구 서초3동 정토회관에 있는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을 찾았다. 정토회관에서 살거나 지내는 99년 5월부터 ‘쓰레기 0운동’을 벌이고 있다. 낮에 100명 남짓한 인원이 상주하는 정토회관에서는 이 운동을 벌이기 전에는 1주일에 100ℓ짜리 쓰레기봉투 10치의 쓰레기가 나왔다. 정토회관 찾아간 날 쓰레기통을 보니 하루에 나온 쓰레기가 총량이 비닐 200g, 모기향 봉투와 과자껍질 5개가 전부였다.

사진/ 정토회관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없애기 위해 김치와 물로 식기를 헹궈 먹는다.
정토회관의 실험은 일반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깡통 음료·휴지·비닐과 1회품 용품 건물 반입금지, 음식물 쓰레기의 완전 퇴비화, 세숫물은 반드시 받아서 쓰며, 헹굼물은 받아놓았다가 화장실 중수로 사용하기 등이다. 사찰에서 발우공양을 하듯 정토회관 사람들은 식사 시간에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닦아서 다 먹는다.

김승정 환경불교환경교육원 간사는 “다른 휴지는 다 줄였는데 화장실에서 휴지가 계속 나와 인도에서 하는 것처럼 뒷물 바가지를 이용하게 했다. 요즘에는 바가지 대신 샤워기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화장실 뒷물에는 관습상 익숙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정착하는 데 1년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한달에 한번 전체 정토회관 사람들이 모여 ‘쓰레기 공청회’를 열어 마음을 열고 토론하고 이견을 좁히고 있다.

김승정 간사는 ‘정토회관에서 실험이 특정 종교집단(불교)의 튀는 행동은 아니냐’는 질문에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란 우리들의 소비적 행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태적 위기에 있다. 하루아침에 욕심을 버릴 순 없겠지만, 쓰레기 0운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얼핏 수도승 같은 삶이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같은 정토회관 사람들은 편리한 생활과 욕망을 놓아버리면 더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쳐도 물에는 자취가 없으며, 새가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녀도 허공에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취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명예와 업적, 형식적인 권위로 후대에 길이 남기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서 자신이 순간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충실하게 살았다는 의미인 것이다.”(월간 <정각도량> 2000년 5월호, 정성본 스님의 글에서)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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