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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효자클럽’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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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01 00:00 수정 : 2008-11-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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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재단’에 1천만원 기부한 송래형씨 이야기]

송래형(60)씨를 만나자마자 대뜸 “송구스럽다. 나는 그런 자격이 없다. 내가 살아온 삶과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 부담스럽다. 취재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때, 악수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으면 ‘내가 무슨 기삿거리가 됩니까’라며 겸양의 미덕으로 자신의 주가를 높이는 사람들을 꽤 보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과 5분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입으로만 그렇게 말할 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 오장육부가 부풀어 있는 사람이란 게 금방 드러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단박에 봐도 송씨는 그런 부류와는 꽤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기 전 ‘아름다운 재단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찾아왔다. 남보다 많이 갖고 많이 소비하는 게 행복으로 통하는 세상이지만, 적게 갖고 남과 나누며 살면서도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며 인터뷰 취지를 꽤 길게 설명해야 했다.

요즘 노인들끼리 모이면 ‘돈이 효자다’고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이 늘어나고, 자식들에게 괄시를 받지 않으려면 돈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 현실에서는 경험적으로 틀리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데 송씨는 올 초 1천만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한 직장에서 25년을 근무하고, 지난 1월 만 60살이 되어 국민연금을 받는 수혜자가 되었다. 1988년 7월 국민연금법이 시행된 이래 법에 따라 회사가 납부해준 부담금이 800만원이었다. 그 800만원에 상당한 돈과 지난해 환갑 때 축의금 200만원을 더한 1천만원을 기부한 것이다. 애초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반납할 생각이었지만 환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기부를 선택했다. 아름다운 재단은 기부금을 종자돈으로 ‘은빛겨자씨기금’을 만들었다.

“국민연금 초기 가입자들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다고들 하는데, 내가 후대에 짐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내지 않는 것은 돌려주는 것뿐입니다.”


그가 형편에 여유가 있어서 기부를 결정하게 된 것은 아니다. 10년 가까이 지인이 입던 양복을 입어왔을 정도인 그는, 회사에서도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평소 자녀들에게 “유산은 없다. 너희들을 교육시킨 것으로 부모로서 내 역할은 다했다”고 교육했다며 “아이들도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줄 재산은 없을 것’란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송씨는 사후 유산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서서히 재산을 줄이는 지혜를 발휘할 생각이다.

송씨는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사후 안구를 기증하고 시신은 화장을 한다’고 서약했다. 안구 기증자의 주민등록증에는 안구기증 표시가 되어 있어 사망시 안구를 추출해 안구은행으로 가져가게 되어 있다. 그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다음과 같은 문구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안구는 가장 나이 어린 시각장애자들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유명을 달리한 뒤 남은 재산이 있다면 혼자 사는 불우한 노인들에게 줬으면 좋겠다.’

그는 1999년 8월부터 무덤 대신 추념 식수심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내가 죽으면 무덤을 남기지 말고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하라. 가족 묘지에는 봉분 대신 나무나 하나 잘 키워라’고 이야기한다. 사람 살기에도 좁은 땅에 구태여 죽은 사람까지 자리를 차지할 필요가 없이 고인을 기리는 나무 한 그루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태도와 생각이 전통적인 효의 개념과는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효의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상에서 지위를 얻고 돈을 많이 버는 게 효도가 아니라, 부모가 생존해 계실 때는 세상을 뜻뜻이 사는게 효를 다하는 것이고, 부모님이 안 계신 사람들은 혼자 사는 불쌍한 노인들을 자기 부모 모시듯 보살피는 게 효가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그런 이를 위해 농담삼아 ‘불효자 클럽’을 만들 생각도 있다고 했다.

송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최희준의 노래 <하숙생>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 모두는 지구란 별에 머물다 가는 하숙생 신세일 테니까.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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