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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주화운동과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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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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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동안 입국을 거부당해온 해외 민주인사 33명과 송두율 교수가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이민 안내 박람회장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고, 이민이 홈쇼핑의 ‘대박’ 상품으로 자리잡은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미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원정출산’에 나선 한국 임산부들이 무더기로 미 이민당국에 체포돼 조사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그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도 궁금하다.

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해외 민주인사들의 귀국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언론은 그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언론이 그들을 ‘민주화운동 인사’(민주인사)라고 표현했으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반체제 인사’로 표현해 나름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들이 해외에서 통일 및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친북 인사’들임을 덧칠하고 싶은 데서 비롯된 고뇌의 흔적이다.

해외 민주인사들에게 누를 끼칠게 될지 모를 얘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2000년 1월 발효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실 그들은 우리 정부에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 법에서 정한 ‘민주화운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민주 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귀국을 계기로 통일과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보훈정책마저 국가 ‘유공자’ 규정과 그 범위를 둘러싸고 고민에 빠진 것을 보면 이 논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유공자 범위에 새로 포함되면서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보훈대상에 포함돼 있던 독립·참전 유공자들이 그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는가 하면, 보수세력들은 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남갈등의 또 다른 한 단면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고 그분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할 보훈정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유공자의 개념을 국민정서와 시대변화에 맞게 재정립하고 그 성격에 따라 구분하는 새로운 보훈제도를 도입하는 게 시급하다. 국가의 존립·유지와 관련된 유공자와, 국가 민주화와 사회발전에 기여한 유공자 등으로 분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칫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 정당성을 상실한 전쟁이란 점 때문에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새로운’ 유공자를 양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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