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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언론에 상처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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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25 00:00 수정 : 2008-11-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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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쪽 얘기만 듣고 무조건 노조가 잘못한 것처럼 몰아붙이는데 정말 환장하겠더군요.” 한국네슬레의 전택수(42) 노조위원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신문 헐뜯기’부터 시작했다. “파업으로 추석도 제대로 못 쇠었는데, 신문을 보고 친척들이 ‘경기도 어려운데 왜 파업하냐’고 몰아붙일 때는 정말 괴로웠어요. 편파적인 언론 때문에 노조원들이 모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죠.”

실제로 한국네슬레의 파업을 다룬 보수언론들의 태도는 지나치게 편파적이었다. 보수언론들은 한국네슬레가 직장폐쇄 조처를 취하자, ‘노사분규 못 견디겠다’ ‘외국 CEO, 한국 지옥 같다 평가’ ‘노사분규 외국기업 쫓는다’며 일제히 노조를 몰아붙였다.

보수언론들은 지난 7월 외국계 기업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자 “외국계 기업의 노사분규로 외국 기업의 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8월12일치 기사에서 산업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자료를 인용해 “최근 외국계 기업의 노사분규는 지난 4년 동안 최악의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8월29일에도 주한 외국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좌담회 기사를 싣고 “전투적인 노조 때문에 외국계 기업의 투자가 크게 줄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외국계 기업의 노동쟁의는 해외투자 위축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가. 노동부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9월15일 현재 외국계 기업(행정용어는 외투기업)의 노동쟁의 건수는 29건이다. 노동쟁의가 주로 봄과 여름 사이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쟁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적다. 이 수치는 지난 한해 동안 발생한 26건에 비해 많지만, 2000년 31건에 비해서는 적은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 높긴 하지만 그리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닌데 실제보다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의 노동쟁의 원인에 대해서도 보수언론들은 노조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 9월3일 11년간의 한국 근무를 마치고 러시아로 떠나는 BAT코리아의 존 테일러 사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고약한 노조는 경영을 잘못한 탓이다.” 보수언론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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