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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한민국 기후, 아열대화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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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25 00:00 수정 : 2008-11-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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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 게릴라성 폭우 계속… 늦여름~초가을의 태풍 위력은 더욱 강해질 것

“오늘 현재 말라리아 전체 환자 수가 3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세균성 이질 환자도 전국적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 오늘 오후 서울 도심에서는 생체리듬을 잃어버린 벌떼들이 대규모로 출현하는 사태가 빚어져 119 구조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한편 일본 오키나와를 지나 북상하고 있는 태풍 ‘메뚜기’가 남해안에 상륙하면 또다시 돌풍과 초대형 해일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고되면서 당국에서는 해안가 주민들에게 주변 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나라는 대피령을 발동했습니다.”

2030년 여름쯤 되면 이런 뉴스가 저녁 안방을 자주 찾아갈지 모른다. 4~5년 전부터 기상학계에서 초미의 관심거리로 떠오른 이른바 ‘한반도 기후의 아열대(subtropical zone)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마철 이후 집중호우 현상과 더욱 강력해진 태풍의 위력 등으로 요약되는 올 여름철 기상특징은 아열대화의 진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사진/ 열대야를 피해 밖으로 나온 서울시민들. 90년대 이후 하루 평균 기온이 30도가 넘는 날이 1년 평균 18일로 늘었다.(한겨레 이정우 기자)

겨울 줄고, 봄과 여름 상대적으로 늘어

먼저 1990년대 중반 이후 해마다 나타나고 있는 아열대성 게릴라 폭우가 올해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장마기간보다 장마 이후에 비가 더 많이 오는 ‘여름철 강우량 역전현상’이 반복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여름철(6월1일~8월31일) 강수량은 평균 999.5mm로 평년(699.7mm)보다 299.8mm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30년 가운데 1987년, 1998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이에 따라 ‘장마 때보다 장마 이후 시간당 30mm 이상 쏟아지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더 많은 수해를 일으킨다’는 최근 몇년 동안의 경향이 하나의 확고한 패턴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여름철 기후의 변동과 더불어 한반도가 점점 아열대 기후로 변해간다는 징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진전에 따라 지난 100년 동안 지구 전체의 기온은 평균 0.6도 정도 상승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5도 올라 상승폭이 크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는 온난화 진행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만년 동안 온도가 1도 이상 변한 적이 없던 지구가 최근 100년 동안 0.6도 상승한 것은 지구가 겪어야 할 기후변동의 폭과 깊이를 짐작케 해준다.

사진/ 장마기간보다 장마 이후에 비가 더 많이 오는 것도 9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게릴라성 폭우의 결과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기상학계에 따르면 북반구의 경우 기온이 1도 올라갈 때 기후대는 평균 200~250km 정도 북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대전 날씨가 목포 날씨로, 평양 날씨가 대전 날씨로 변한다는 것이다. 사계절의 기간도 변화가 심하다. 겨울은 한달 이상 줄어들었고 봄과 여름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서울의 경우 1960년대 하루 평균 기온이 30도가 넘은 일수는 불과 3일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에는 평균 18일로 6배로 늘었다는 기상청 통계자료도 있다. 대구의 경우 이 수치가 34일에서 75일로 늘었고, 광주는 4일에서 20일로 늘었다.

이같은 기후 변화는 생태계의 격심한 변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식물생태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임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기온 상승으로 나무에서 잎이 나오는 시기가 5~7일 정도 빨라졌다. 1970년대에는 4월에 창경궁에서 열리던 서울의 벚꽃놀이가 최근에는 3월에 윤중로에서 열리고 있다. 잣나무·전나무·분비나무 등 더운 날씨에 적응력이 낮은 침엽수림의 면적은 줄어드는 데 반해 뽕나무·물푸레나무·보리수나무 등 활엽수의 면적은 늘고 있다. 이에 비해 남해안 지방에 서식했던 아열대성 수종인 동백나무는 현재 연안지방에서는 충남 보령까지 진출했고 섬에서는 백령도 근처 대청도까지 북상했다. 내륙의 북상 속도는 늦지만 전남 월출산까지 올라왔다. 기온 상승이 더 가속화하면 침엽수림은 지리산·설악산·덕유산·한라산 등 고산지대에 고립될 가능성마저 있다. 아열대생 수목병원균인 후사리움가지마름병이 1996년 국내 최초로 발견됐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오징어가 엄청 잡히는 이유

수온이 올라간 바다 속에서도 생태계 변화는 심각하다. 겨울의 수온은 갈수록 높아지고 여름 수온은 반대로 낮아지고 있어 온대기후 바다환경의 전형적인 특징인 뚜렷한 수온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수년 전부터 수산진흥원쪽이 연구해온 결과다. 난류성 어류가 많이 잡히고 한류성 어류의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은 이를 뚜렷히 보여준다. 지난 30년 동안 고등어·멸치·오징어 등 난류성 어족은 급증한 반면, 명태·대구 등 한류성 어족의 어획량은 급격히 줄었다. 오징어는 80년대 후반 어획량이 1만t이던 것이 최근에는 3만t을 넘어섰다. 반면 명태는 80년대 어획량 순위 3위에서 지금은 6위권에도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

홍치·도화돔·만새기·고너리류 등의 아열대생 물고기가 동해에서 잡히고, 해파리·곤쟁이 등 난류성 생물이 동해에서 대량으로 나타나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지시킨 점도 쉽게 파악되는 변화 양상이다. 연안에서는 난류 수역에서 볼 수 있는 산호가 나타나고, 따듯한 해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이 동해연안에 나타나는 점도 지나칠 수 없는 현상이다.

생태계 교란은 결국 먹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인간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아열대성 전염병인 말라리아는 95년 23건, 2000년 2462건이 발생했고, 세균성 이질은 95년 107건에서 2000년 4142건으로 증가했다. 열대성 전염병인 뎅기열도 2001년 최초로 6건이 발생했다.

전염병만큼이나 걱정스러운 것은 급격한 기온 상승이 가져올지 모를 재앙 수준의 재해다. 게릴라성 집중폭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늦여름과 초가을에 나타나는 태풍의 위력은 지금보다는 평균적으로 훨씬 강해질 것이라는 데 대부분의 기상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 공기 중 수증기의 양이 증가하고 수증기가 물방울로 변하면서 뿜어내는 에너지의 총량은 점점 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1월의 기온변화를 주목하라

기상학자들마다 기후의 분류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아열대성 기후인지 아닌지는 1년 가운데 평균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9개월 이상 되느냐에 달려 있다. 기상청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의 권원태 실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12월부터 3월까지는 평균기온이 10도 이상 넘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11월의 기온이 10도 이상으로 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겨울철이 줄어들고 따듯해지는 추세가 가속화해서 11월의 평균기온이 10도 이상으로 되는 시기가 빨라지면 그만큼 아열대성 기후로 빨리 전환할 것이라는 얘기다.

아열대 기후로의 진입이 한반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 기후의 변화라는 것이 몇년 사이의 기상변동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의 기온 변화는 분명히 전지구적 변동이 시작됐으며 한반도 역시 아열대화로 변하는 추세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이라는 ‘갑옷’ 때문에 생태계의 변화에 가장 둔감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언제나 자연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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