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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디아] 독일 여의사의 쿠르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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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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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반은 쿠르드민족을 위한 삶이었다.”

이라크 북부지역인 마흐무르에 있는 쿠르드 난민촌의 유일한 여의사인 미디아(39)는 독일 사람이다. 쿠르드민족을 위해 일하는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혈연으로 쿠르드족과 묶여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에 쿠르드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민족해방운동에 가장 많은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 하지만 미디아는 쿠르드민족과는 어떤 인연도 맺지 않고 있었다. 그는 80년대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중 쿠르드민족의 비극을 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의사로 발령을 받아 일하면서도 꾸준히 독일의 쿠르드 지원 일을 해오다가 쿠르드 청년을 만나 결혼까지 했다.

독일에서 쿠르드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면서 언제나 꿈꾸던 일은 산에 들어가 게릴라가 되는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산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쿠르드인 남편이 말릴 정도였다. 결국 미디아는 속세의 모든 것을 등지고 “남편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한다”는 심정으로 10년 전에 입산했다. 산에 들어가자마자 짧은 기간의 사격훈련을 마치고 처음에는 터키군과 싸우는 전장에 배치됐다. 하지만 당시 산에는 의무병이 흔치 않던 시기인 터라 의사로서 몇년 동안 다친 게릴라들을 도맡아 치료해야 했다. 그는 병사들이 작은 상처임에도 제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손발을 잘라내야 했던 때를 가장 안타까워한다. 특히 겨울철 행군 중 얼어붙은 바위산을 맨손으로 기어올라가다 동상에 걸려 손을 절단하거나, 눈길을 걷다가 발에 동상이 걸려 다리를 잘라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 바로 ‘산에서의 삶’이었다고 지금도 자신 있게 얘기한다. 산에서의 전투 중 몇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모두 쿠르드 동료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단다. 한때는 터키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한 동료는 홀로 터키군인들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려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반대쪽 산으로 유인한 적도 있었단다.

“동료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여의사 미디아가 고향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도 난민촌에 남아 있는 이유다. 그는 현재 독일에서의 모금운동으로 마흐무르 난민촌에 제대로 된 병원을 세우는 게 목표다.

마흐무르= 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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