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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세상이 무섭다, 삼성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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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18 00:00 수정 : 2008-11-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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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의 퇴사 압력을 거부하다 ‘불안신경증’으로 산재요양 승인받은 이재익씨의 사연

역류성 식도염, 인후염, 지방간, 담음견비통·요통, 불안신경증…. 삼성생명 대구법인영업국 이재익(47·대구 북구 태전동) 차장이 올 들어 병원에서 발부받은 진단서에 쓰인 질병들의 이름이다. 원인불명의 자극성 접촉피부염 등 가벼운 질병까지 포함하면 그 목록은 더욱 길어진다. 그는 요즘 약을 ‘주식’으로 먹다시피 한다. 애초 잔병치레가 잦은 사람 아니냐고 따져보고 싶어질 정도다. 그러나 그의 질병 목록은 최근 몇년간 그가 살아온 또 하나의 이력서일 뿐이다.

“회사와의 갈등에 따른 스트레스” 인정

그는 지난 7월29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6개월간 산재요양 승인을 받았다. 요양이 받아들여진 질병은 ‘불안신경증’이다. 그를 그런 병으로 몰고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단은 요양승인통지서에서 “회사와의 지속적인 갈등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신경증이 발병했다는 의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제출한 요양신청서에는 그 사연이 좀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나 퇴직하지 않자, 회사로부터 계속되는 퇴직 압력, 부당한 인사고과, 차별적 대우, 부당 대기발령, 조직적인 ‘왕따’ 등의 부당한 처우를 받고 이와 관련해 회사와 지속적인 갈등 상황으로 인해 불안신경증이 발병했다”는 것이다.

사진/ 회사쪽의 퇴사 압력을 거부하며 버티다 불안신경증에 시달리게 된 이재익씨. 그는 ‘기적’적으로 산재요양 승인을 받았다.
삼성생명이 감원을 위해 직원들을 선별해 퇴사 압력을 넣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로 경제상황이 급격히 나빠진 지난 1998년 5월이 처음이었다. 이어 그해 10월에 상당수가 두 번째로 회사를 떠났다. 이씨가 첫 퇴사 압력을 받은 것도 이때였다. 퇴사 대상자로 찍힌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른바 퇴직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이씨는 거부했다. 젊은 시절을 다바쳐 일해온 회사가, “이제 나이가 많다고 떠나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듬해 2월, 그에게 전보 발령이 났다. 그동안 근무하던 대구법인영업국을 떠나, 구미법인영업소장으로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는 “구조조정에 반발한다는 이유로 연간 평가실적이 전국에서 최하위권이면서 폐쇄가 예정된 영업소로 발령을 내는 것은 또 다른 퇴사 압력”이라고 항의했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도 살아남았다. 그해 10월 전국 90개 영업소 중 23등을 하는 등 구미영업소의 실적을 높여 ‘우수영업소’로 만든 것이다. 2000년 상반기에는 전국 법인영업소 중 1등, 하반기에는 3등을 해 그는 ‘관리자대상 금상’을 받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2001년 5월 중 실시된 3차 구조조정의 파도를 잠시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회사쪽은 2001년 10월 전국 200여개 영업소를 폐쇄하면서 4번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에게도 다시 퇴사 압력이 가해졌다. 그가 이때 퇴직을 선택했다면 1억원가량의 퇴직위로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거부했다. 그러자 새로운 ‘압박’이 시작됐다. 11월 들어 영업실적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구미영업소가 전격 폐쇄됐고, 그는 대구법인영업국으로 다시 인사발령이 났다. ‘업무담당’으로 발령이 났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일감도 주어지지 않은 사실상의 대기발령이었다. 그에게 ‘업무지시’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인 일거리가 처음 떨어진 것은 대구로 인사발령이 난 지 9개월이나 지난, 지난해 7월 말이었다.

가슴떨림과 현기증, 그리고 불면증

인사고과는 새로운 압력이었다. 그의 인사고과는 2000년 AAA(상반기·하반기·능력고과), 2001년에는 BCD였다. 그러던 것이 2002년에는 DDD로 나빠졌다. 물론 그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많다고 했다. ‘업무담당’의 본래 업무는 ‘비품관리, 사무지도, 민원’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일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업무와는 아주 무관한 ‘특별한’ 평가기준표를 건네받았고, 그것도 시시각각 바뀌었다. 2002년 8월 그가 건네받은 평가기준표에는 ‘30인 이상 단체 정보 입력’의 경우 300건 이상 하면 ‘상’의 평가를 준다고 돼 있다. 그러나 그해 6월부터 11월까지 그가 속한 영업국 전체에서 설계사들이 입력한 정보는 모두 합해도 96개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사진/ 이씨가 회사쪽의 퇴사 압력에 맞서는 과정에서 준비한 자료들.
지난해 4월부터 그는 가슴떨림 증상과 현기증, 불면증에 시달리다 결국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우울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구제받을 길은 보이지 않았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낸 부당노동행위 구체신청은 신청기간(3개월)이 이미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각하’됐고, 근로복지공단에 우울증 등에 따른 산재보상 진정서를 낸 것도 기각됐다.

그에게 사실상 최후 통첩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 3월 직원이 3명인 서울의 한 영업소로 인사발령을 내겠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76살의 부친이 심장병과 디스크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어 떠나기 어렵다며 고충을 호소했다. 회사쪽은 그에 대한 인사발령을 연기했다. 한달의 말미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가 병가를 내겠다고 한 것은 또 다른 충돌의 시작이었다. 그는 진단서를 끊어 회사에 병가원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일로 3월13일 직장 상사와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실랑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주장이 크게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실랑이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팔목을 비틀고 목을 짓눌렀다”며 직장 상사를 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고, 본사에도 항의를 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가 이뤄지자, 직장 상사는 이틀 뒤 그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했다. 물론 결과는 이번에도 그에게 불리할 뿐이었다.

산재요양 승인조차 기적이었다?

경찰은 그의 직장 상사를 상해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검찰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처분을 내렸다. 반면, 업무방해로 고소된 그는 벌금 50만원에 약식기소됐고, 회사쪽도 징계위원회를 열어 그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그는 법원이 그에 대한 약식기소 사건을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에게 지금 남은 것은 근로복지공단이 6개월간 산재요양 승인을 해준 것 하나뿐이다. 노동계에서는 그가 삼성 계열사와의 싸움에서, 그것도 ‘회사와의 갈등 과정에서 생긴 우울증’을 이유로 산재요양 승인을 받은 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회사쪽은 9월28일 정직 처분이 만료되면 요양기간인데도 출근을 하라고 한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그는 출근하지 않을 계획이지만, 6개월의 요양으로 그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그 뒤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삼성생명에서는 4차례에 걸친 구조조정 과정에서 9천여명의 직원 중 3천명가량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 차장이 요양승인까지 받게 된 것을 놓고 ‘시대의 아픔’이라고 말했다. 고용관련 법과 제도가 시대 상황에 맞지 않아 빚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법과 제도가 급변하는 현실에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논리에는 그동안 회사를 떠난 노동자들이 이씨처럼 버텼다면 그들도 이씨 같은 ‘시대의 아픔’을 겪었을지 모른다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이씨는 “이제 세상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대구= 글·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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