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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포퓰리즘보다 무서운…/ 류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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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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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서울 강남지역의 잘나가는 고등학교에서 모교인 강북지역 고등학교로 옮긴 어느 선생님, 수업 첫날 유달리 조명이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실상은 아이들의 얼굴빛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는 그 선생님의 책이 신문 서평란에 소개되었을 때, 몇해 전이던가 졸업 뒤 처음 열린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공부 꽤나 또는 반장 꽤나 한 동기생들이 대부분 강남지역, 하다못해(?) 분당에라도 살고 있음을 깨달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부의 고심에 찬, 무기력한 정책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선생님은 내 후배이고 그 문제의 학교는 나의 모교이거니와, 그 책이 나오기 훨씬 전에 우연히 그를 만났을 때, 지금의 제자 겸 후배들은 전교에서 일등을 해도 아무개 대학도 못 간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를 듣고 맹목적인 애교심에 사로잡혀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내친 김에 사적인 경험을 단순무식하게 일반화해보면, 인생이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계기는 고교시절 성적 올리기, (특히 서울 시내에) 내 집 장만하기,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의 부모 되기인 것 같다.

그칠 줄 모르는 강남 집값의 폭등세, 온 국민을 대를 이어가며 몰아치는 사교육 열풍, 홈쇼핑 매진 사태로 다시 한번 드러난 중산층의 해외이민 바람. 딱히 상호간의 논리적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상당한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버리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오죽하면 공교육의 주체인 정부가 신도시에 사설학원단지를 만들도록 지원한다는 기발하면서도 스스로 자기존재를 부정하는 발상까지 하였으랴.

그저 세상을 무미건조한 눈으로 바라보는 경제학자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고심에 찬 수많은 정책들도 어느 것 하나 무기력하기 짝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지은 지 20년도 넘은 30평짜리 아파트값이 6~7억원을 넘어서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공급보다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깟 몇푼의 양도세나 세무조사 따위로 협박해본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리 없다.


방법은 경향 각지를 모조리 강남으로 만들거나 강남에만 100층 이상씩 되는 아파트를 가득 지어, 요컨대 공급을 엄청나게 늘려 수요를 압도해버리는 것뿐인데, 그렇게 되는 순간 이미 강남은 더 이상 강남이 아니므로 새로운 ‘강남’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놀랍게도 이른바 일류학교를 없앰으로써 입시지옥을 해소하고 학연 등으로 인한 사회적 병폐를 줄이고자 했던 정책이 실패한 과정과도 흡사하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출신학군, 이른바 좋은 대학에 진학할 확률, 그리고 향후 상당 기간 동안 경제적 전망이 점점 비례하도록 법칙화돼가는 사회에서 어찌 교육은 인적자본 투자를 통해 소득분배를 평등화한다는 둥의 꽃노래만 한가로이 부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아이들을 학원으로 야간자율학습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그저 내 자식만은 이러한 법칙의 예외이기를 바라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아예 소수의 가진 자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에 근거한 대증요법식의 정부 개입은 어차피 백해무익하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냉정한 진단도 나온다.

포퓰리즘에 대한 준엄한 꾸지람?

예측하건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 행사를 억제하는 가당치 않은 정책들을 없애자는 주장도 점점 커질 것이다. 무조건 평등하자는 사회주의적 발상이 오늘날 이렇게 어지러운 나라를 만들었으니 고교입시도 부활하고 수준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의외로 힘이 실리곤 한다. 경쟁이 지닌 효율성이라는 덕목이 강조되면서, 예의 포퓰리즘에 대한 준엄한 꾸지람이 따라붙는 것은 물론이다.

뺑뺑이 돌려 고등학교 가고, 사지선다형 문제 찍어 대학간 전형적인 평준화 세대로서 강북의 기적적인 부활에 한 가닥 희미한 희망을 걸고 있는 나이건만, 이따금 우리가 평등이라는 허울 좋은 대의명분에 얽매인 채 실제로는 모든 것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공교육의 붕괴, 부동산 거품의 붕괴, 아니 포퓰리즘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아이도 잘만 하면 좋은 대학 나와 10억원 벌어 강남에서 살 수 있다는 로또복권 같은 환상마저 무너져내릴 때, 바로 우리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가 무너지는 그때가 아닐까?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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