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방법은 경향 각지를 모조리 강남으로 만들거나 강남에만 100층 이상씩 되는 아파트를 가득 지어, 요컨대 공급을 엄청나게 늘려 수요를 압도해버리는 것뿐인데, 그렇게 되는 순간 이미 강남은 더 이상 강남이 아니므로 새로운 ‘강남’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놀랍게도 이른바 일류학교를 없앰으로써 입시지옥을 해소하고 학연 등으로 인한 사회적 병폐를 줄이고자 했던 정책이 실패한 과정과도 흡사하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출신학군, 이른바 좋은 대학에 진학할 확률, 그리고 향후 상당 기간 동안 경제적 전망이 점점 비례하도록 법칙화돼가는 사회에서 어찌 교육은 인적자본 투자를 통해 소득분배를 평등화한다는 둥의 꽃노래만 한가로이 부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아이들을 학원으로 야간자율학습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그저 내 자식만은 이러한 법칙의 예외이기를 바라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아예 소수의 가진 자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에 근거한 대증요법식의 정부 개입은 어차피 백해무익하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냉정한 진단도 나온다. 포퓰리즘에 대한 준엄한 꾸지람? 예측하건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 행사를 억제하는 가당치 않은 정책들을 없애자는 주장도 점점 커질 것이다. 무조건 평등하자는 사회주의적 발상이 오늘날 이렇게 어지러운 나라를 만들었으니 고교입시도 부활하고 수준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의외로 힘이 실리곤 한다. 경쟁이 지닌 효율성이라는 덕목이 강조되면서, 예의 포퓰리즘에 대한 준엄한 꾸지람이 따라붙는 것은 물론이다. 뺑뺑이 돌려 고등학교 가고, 사지선다형 문제 찍어 대학간 전형적인 평준화 세대로서 강북의 기적적인 부활에 한 가닥 희미한 희망을 걸고 있는 나이건만, 이따금 우리가 평등이라는 허울 좋은 대의명분에 얽매인 채 실제로는 모든 것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공교육의 붕괴, 부동산 거품의 붕괴, 아니 포퓰리즘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아이도 잘만 하면 좋은 대학 나와 10억원 벌어 강남에서 살 수 있다는 로또복권 같은 환상마저 무너져내릴 때, 바로 우리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가 무너지는 그때가 아닐까?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