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정태원] “추리소설은 나의 애인”

475
등록 : 2003-09-06 00:00 수정 :

크게 작게

1만3천권의 추리소설과 함께 사는 남자. 추리소설 전문번역자인 정태원(50)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추리와 판타지 소설 원서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서 가운데는 미국·영국·일본 등 현지에서도 찾기 힘든 책들도 많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뤼팽이 나오는 <기암성>을 읽은 뒤 용돈을 모아 서울 청계천과 소공동 조선호텔 앞, 대학교 근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책들은 이제 그의 집을 박물관처럼 만들어놓았다.

사진/ 이용호 기자
한국에서는 언제나 ‘소외된 문학’이었던 추리소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광고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출장이나 연수로 외국에 갈 때마다 일이 없는 주말이면 바퀴 달린 큰 가방을 끌고 나가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침부터 수십권의 책을 산 뒤 호텔에 들러 가방을 비우고 다시 수십권씩을 사곤 했다. 지난해 처음 완간된 <셜록 홈즈 전집>(전 8권, 시간과공간), 최근 19세기 말 유명 작가들의 공포소설들을 묶어낸 <세 처녀의 탑>(도서출판 다시) 등 80권이 넘는 추리·판타지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워낙 가지고 있는 책이 많아 출판사들이 알지 못하는 책을 직접 발굴하고 기획해내는 일도 많다.

그에게 추리소설은 도대체 뭐기에 그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의 지적 재미에 흠뻑 빠졌다고 말한다. 또 추리소설의 인기는 그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때려서 간첩을 만들던 시대에 추리나 논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겠어요. 독재정권에게는 자유롭게 생각하는 국민이 제일 무섭기 때문에 추리소설이 금서가 됐죠. 추리소설은 민주주의가 앞선 나라일수록 더 발달해요. 우리나라도 민주화나 경제발전이 시작된 80년대 말부터 추리소설 독자층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작가들의 상상력도 자유로워지고 있죠.”

그는 또 “우리나라에서는 추리소설이 저급한 문학이라는 잘못된 시선 속에 갇혀 있었지만 자유롭게 사고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독자층이 두꺼워지고 있다”며 “일본처럼 대학 추리소설 동아리가 많이 생겨서 상상력과 탄탄한 논리가 잘 담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