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천권의 추리소설과 함께 사는 남자. 추리소설 전문번역자인 정태원(50)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추리와 판타지 소설 원서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서 가운데는 미국·영국·일본 등 현지에서도 찾기 힘든 책들도 많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뤼팽이 나오는 <기암성>을 읽은 뒤 용돈을 모아 서울 청계천과 소공동 조선호텔 앞, 대학교 근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책들은 이제 그의 집을 박물관처럼 만들어놓았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소외된 문학’이었던 추리소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광고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출장이나 연수로 외국에 갈 때마다 일이 없는 주말이면 바퀴 달린 큰 가방을 끌고 나가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침부터 수십권의 책을 산 뒤 호텔에 들러 가방을 비우고 다시 수십권씩을 사곤 했다. 지난해 처음 완간된 <셜록 홈즈 전집>(전 8권, 시간과공간), 최근 19세기 말 유명 작가들의 공포소설들을 묶어낸 <세 처녀의 탑>(도서출판 다시) 등 80권이 넘는 추리·판타지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워낙 가지고 있는 책이 많아 출판사들이 알지 못하는 책을 직접 발굴하고 기획해내는 일도 많다.
그에게 추리소설은 도대체 뭐기에 그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의 지적 재미에 흠뻑 빠졌다고 말한다. 또 추리소설의 인기는 그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때려서 간첩을 만들던 시대에 추리나 논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겠어요. 독재정권에게는 자유롭게 생각하는 국민이 제일 무섭기 때문에 추리소설이 금서가 됐죠. 추리소설은 민주주의가 앞선 나라일수록 더 발달해요. 우리나라도 민주화나 경제발전이 시작된 80년대 말부터 추리소설 독자층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작가들의 상상력도 자유로워지고 있죠.”
그는 또 “우리나라에서는 추리소설이 저급한 문학이라는 잘못된 시선 속에 갇혀 있었지만 자유롭게 사고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독자층이 두꺼워지고 있다”며 “일본처럼 대학 추리소설 동아리가 많이 생겨서 상상력과 탄탄한 논리가 잘 담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