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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홍규 교수의 ‘결벽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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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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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의 한 PD가 해외촬영 때 가족을 데려와 혈세를 낭비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이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칼럼으로 알려지자, 최근 일주일 동안 온·오프라인 세계가 온통 그 얘기로 들끊었다. 그러나 문제의 칼럼을 쓴 영남대 법학과 박홍규(51) 교수는 그 기간 중 꼬박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전주에서 영화에 빠져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는 그와 며칠 만에 간신히 연락이 닿아 8월29일 오후 경북 경산에 있는 학교 연구실로 그를 찾아갔다.

박 교수는 “영화제에 갔더니 온통 젊은 사람들뿐이어서 좀 씁쓸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칼럼에 대해서는 “혈세 낭비에 공범이었다는 죄의식을 씻으면서 다같이 반성하자는 의미로 글을 쓴 것”이라고 짧게 대답할 뿐 계속 말을 아꼈다.

그러나 한참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느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 ‘방송의 미디어 관련 프로그램에서 끊임없이 비판받고 있는 보수신문에 반격의 빌미를 준 꼴’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우스워져버렸다.

박 교수는 오래 전부터 공금을 쓰는 데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엄격한 잣대를 빈틈없이 들이대고 있었다. “몇해 전 제가 학과장을 맡았을 때 모든 회식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회의는 회의대로 하고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은 자기 돈으로 먹으면 되니까요.” 지금도 그는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차린 밥자리에는 가지 않는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학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집 텃밭에서 친환경농법으로 기른 채소로 도시락 반찬을 준비해온다.

박 교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평전으로 펴내는 ‘노동법학자’로 유명하다. 이번 파문으로 ‘고발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데 대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죠. 그러나 한 개인에게 화살이 정면에서 겨냥되는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겁니다.”

그의 말 속에 고발자를 자처한 그가 겪었을 ‘고민’이 묻어났다.


경산=글·사진 박주희 기자/ 한겨레 사회부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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