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회의 유치가 아무리 실용적 이득을 가져와도 자주 있으면 시민생활에 불편을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지난번 아셈회의 때도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제회의를 유치하여 조직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지혜에 달린 것이다. 시민들은 이른바 ‘국제회의용’ 조처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것이다. 순전히 급조된 국제회의용 각종 공사와 교통질서, 공안조치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 일상을 국제회의용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국제회의용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제회의는 다시금 우리에게 실용적 이득을 줄 수 있다. 국제적 수준의 도시생활과 시민생활을 자연스레 일상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은 우리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 자꾸 손님을 맞다 보면 손님 맞는 능력과 요령도 느는 법이다. 그러면 절로 시민생활이 국제수준화하는 것이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가뭄에 콩나듯하는 수준급 국제회의를 유치해놓고 국제회의용 조처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생활용 국제회의를 많이 유치하는 데 신경써야 할 것이다. 그러면 경제적 이득과 함께, 참가 손님도 맞이하는 시민도 국제회의를 즐기게 될 것이다. 국제회의는 또다른 실용성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국제회의와 시위의 관계다. 현대사회에서 시위는 다양한 의사표현의 창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적으로 말해 시위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위를 생활에 이롭게 잘 이용하는 능력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시위의 다양한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각종 국제회의는 시위 방식 개발과 실험의 좋은 무대이다(이것은 반어적 표현이 아니다). ‘시위학’개발해야 할 지도 예를 들어 국제회의 때에는 시위를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지 연구해야 한다. 정부도 시위를 막는다는 의식보다는 시위가 제대로 된 시위로서 진행되도록 협조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시위를 구경하는 경우도 많다. 폭력적인 시위가 아니라, ‘게임 같은 시위’, ‘예술적 퍼포먼스 같은 시위’, ‘신명나는 시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는 사람은 재미있고 보는 사람(그 시위의 공격대상일지라도)은 비판의 칼침에 속이 뜨끔하면서도 즐거운 그런 시위 말이다. 그러면 시위의 효과도 있고, 시민의식도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시위연출 전문가’도 필요하고 ‘시위학’이라도 개발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실용정신이다. 그러면 이것은 앞서 말한 산업경제적인 면, 일상생활적인 면과 함께 국제회의를 신명나게 하는 3대 요소가 될 것이다. 김용석/ 전 로마 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