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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가 있는데 학교를 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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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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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광남고등학교 1년 김대현(16)군은 요즘 걸을 때마다 어깨에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말투, 손짓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지난 10월1일 모교인 광남중에 들어온 도둑을 붙잡았고 그 일로 오는 11월3일 학교장 선행상까지 받게 됐다. 명실공히 ‘용감한 바른생활 사나이’가 된 것이다.

도둑을 잡은 날, 대현군은 학교에서 공부하다 나란히 붙어 있는 광남중 운동장까지 운동삼아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경비아저씨는 없고, 마침 일직근무를 하던 강재남(32·미술담당) 교사 등 여선생님 두명만 교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와장창 소리가 나면서 복도 유리창에서 교무실쪽으로 얼굴 하나가 쑥 나타났다. 강 교사가 소리를 지르며 나가자 그 낯선 인물은 복도 끝 층계쪽으로 달아나 모습을 감췄다. 학생일지 몰라 경찰 신고를 망설이던 교사들은 운동장에 있던 대현군을 보고 그를 불러 함께 주위를 살펴봤다. 강 교사는 교무실에 남고 대현군은 다른 한 교사와 함께 건물을 뒤졌다. 그러다 2층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던 도둑을 발견했다. 대현군과 도둑간에 기싸움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나오세요, 나오세요’ 했는데 무시하는지 코방귀도 안 뀌는 거예요. 그래서 목소리 깔고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나와’ 하고 소리를 쳤죠.” 도둑이 화장실에서 나와 눈을 부라리자 대현군도 질세라 눈을 치켜 떴다. 결국 대현군의 승리. 기죽은 도둑을 교무실로 데리고 가는 동안 대현군은 그의 양손을 머리 뒤로 올리게 했다. 혹시 호주머니에 무기 같은 게 있을까봐 그랬다고 한다. 도둑은 광남파출소를 거쳐 동부경찰서로 인계됐으나 훔친 물건은 없어 훈방조처됐다.

소설읽기와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대현군은 평소 액션이나 무협보다는 멜로드라마를 선호하는 조용한 성품이다. 만약 도둑과 몸싸움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대현군은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위기의 순간에 용감하게 대처하라는 부모님 가르침대로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결은 두 가지다. 궁지에 몰린 상대이니만큼 어른스러운 목소리와 얼굴을 내세워 기를 죽이거나 영 안 되면 팔힘으로 눌렀으리라는 것. 대현군은 반에서 ‘팔씨름 짱’이라고 한다. 아버지 김학수(43·현대상선 근무)씨 등 부모는 나중에 이 사실을 듣고 자랑스러운 마음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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