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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주현] 대구는 뜨겁게 놀았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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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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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마 같은 더위 속에서 아리랑응원단과 함께… “남한에선 여성의 지위가 열악한 모양이지요?”

대구는 불가마 속처럼 더웠다. 그러나 아리랑응원단의 공동응원은 더욱 뜨거웠다. 이주현 기자가 뛰어든 경기장 안 통일의 열기. ‘보수 대구’도 녹을 수밖에 없었다.

8월22일 오후 대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을 휘감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이건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던 화염산 더위 같은걸. 숨이 턱턱 막히는 습습한 서울과 달리 대구는 강렬한 햇살이 내리꽂히는 진하고 뜨거운 진짜배기 더위였다. 공항에 지친 표정으로 늘어서 있던 택시기사들도 오늘이 35도니, 36도니 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대구의 더위보다 뜨거운 응원 열기. 아리랑 응원단이 북한 대 네덜란드의 남자배구 경기에서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두 번째 줄 가운데가 이주현 기자).(한겨레 임종진 기자)

그러나 얘기를 듣고 보니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치르는 대구 시민들로서는 쨍쨍한 햇볕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며칠 전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 응원단이 불참한다는 비보가 전해졌던 것이다. “인공기를 태우든 말든 온다으면 와야제. 가들은 와 이리 딴말을 자꾸 하노.” 눅눅한 방 안에서 제대로 마르지 않은 빨래에서 나는 찝찝한 냄새처럼 대구 시민들 사이엔 짜증어린 실망감과 냉소가 번져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있었고, 북한은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했고, 정말 꽃처럼 예쁜 스무살의 북한 언니들이 왔고, 이어서 날도 활짝 개었다. “처음에 북한사람들 안 온다고 하니까 ‘우리 대구는 와 이리 되는 일이 없노’ 하면서 대구시 차원에서 굿이라도 한판 해야 한다고 다들 그랬어요.” <한겨레>의 대구지역담당 박주희 기자는 이렇게 분위기를 전했다.

고맙다, 쨍쨍한 햇볕아


생각해보니 정말 요즘 대구는 ‘되는 일 없는’ 곳이었다. 와룡산 자락에서 10년 전 사라졌던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나타나는가 하더니, 6개월 뒤엔 100여명이 숨지는 끔찍한 지하철 화재가 났다. 그리고 며칠 뒤엔 대부분의 대구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던’ 이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경제도 분위기도 밑바닥으로 내려앉은 대구에서 유니버시아드대회는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던 셈이다.

그건 그렇고, 정작 ‘한겨레남북평화응원단 아리랑’(이 긴 이름이 공식 명칭이다. 통상 아리랑응원단으로 불린다)에 참가해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는 북쪽 참가단을 뜨거운 동포애로 맞아 북쪽 응원단과 함께 열렬한 공동응원을 펼침으로써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참가기를 써야 하는 나로선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22일 저녁 7시 우크라이나-북한 남자배구 경기가 열리는 대구체육관에 가보니 북한 응원단은 아리랑응원단과 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북한 응원단 옆자리는 이번 대회의 북한팀 공식 응원단인 ‘달성서포터즈’(북한을 응원하는 달성군민 응원단)가 차지하고 있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아리랑응원단의 ‘나’는 곧 노란 옷을 입은 달성서포터즈 아줌마·아저씨가 부러워졌다.

북한 응원단은 자리에 앉자마자 눈부신 응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늘색 재킷을 입은 맨 앞줄 언니들이 벌떡 일어서더니 버들가지 봄바람에 살랑이듯, 꾀꼬리 사뿐 내려앉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버들가지에 내려앉은 꾀꼬리들이 일시에 지저귀듯 낭랑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조·국·통·일~ 짝짝 짜자작’ ‘우·리·민·족·끼·리~ 짝짝 짜자작’. 곧 이어 그쪽에서 ‘조국통일’을 외치면 이편에선 ‘우리민족끼리’로 화답했다. 그쪽에서 ‘우·리·는~ 짝짝 짜자작’을 보내면, 이편에선 ‘하·나·다~ 짝짝 짜자작’으로 응했다. 다양한 변주가 계속됐다. ‘민족도~’ ‘하나~’ ‘핏줄도~’ ‘하나~’ ‘이땅도~’ ‘하나~’ ‘문화도~’ ‘하나~’ ‘언어도~’ ‘하나~’ ‘역사도~’ ‘하나~’ 그러고 보니 ‘하나’인 것이 참 많았다.

‘미녀 응원단’에 대한 환대와 냉소

500여명가량 입장한 아리랑응원단을 둘러보니 눈에 띄는 분들이 많았다. 어린 여중생들 사이에 끼어 75살의 ‘운동권 할머니’ 한기명(범민련 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 의장)씨는 경기 내내 한반도기를 흔들며 구호와 노래를 지치지도 않고 부르셨다. <한겨레21> 논단의 필자인 이영미(경상여중 교사)씨는 응원에 도취된 나머지 기다란 응원용 풍선을 너무 세게 움켜쥐고 두드리다 7개나 터뜨리는 바람에 계속 새 풍선을 공급받아야 했다. 그래도 이날의 응원은 이후 펼쳐질 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세트에선 막강해 보였던 북한 배구단은 이후 2, 3, 4세트를 고스란히 내주고 막을 내렸다. 북한 응원단은 그럼에도 실망스런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고 씩씩하게 응원을 마무리했다.

북한 대 우크라이나 남자배구 경기(위,박승화 기자). 통일을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북한팀을 응원하는 아리랑 응원단(아래,박승화 기자). 북한 응원단의 눈부신 화답이 이어졌다.
숙소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리랑응원단에만 계속 있으면 북쪽과 가까이 앉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는 빨간 옷과 함께 노란 옷도 준비하기로 했다. 상황을 봐서 아리랑응원단과 달성서포터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심사였다.

23일 오전엔 유니버시아드대회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북한지원실에 가서 북한 응원단을 취재하고 싶다는 신청서를 냈다. 무슨 내용을 묻고 싶은지 적는 난이 있어 응원단에 참가하게 된 계기와 선정 방법이 무엇인지, 북한 대학생활은 어떠한지, 북한 ‘미녀’에 대한 남쪽의 환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써냈다. 나는 북한 응원단에 대한 환대와 냉대 두 가지 태도 모두 거부감이 있었다. 전자는 북한 응원단을 띄워줄 때 늘상 따라붙는 ‘미녀 응원단’이란 수식어가 맘에 걸려서였고, 후자는 미인계로 수작을 거는 적에게 속아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수구적 사고가 터무니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정작 당사자들은 어떠할까. 어여쁜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남한 사내들의 호기심이 싫지 않은지, 북한에서 외모는 여성들의 출세와 성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또 북한 여성들이 요구받는 사회주의적 헌신은 봉건적 헌신과 그 내용이 얼마나 다른지 궁금했다. 물론 이렇게 심도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본래 24일 밤으로 잡혀 있던 이 인터뷰는 24일 낮 청년우파 단체와 북한 기자들 사이의 충돌로 취소되고야 말았다).

이날 정오엔 대구시에서 주최한 북한 응원단 환영 오찬이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북한 응원단 6명과 한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들고 온 안이정선(대구여성회 대표)씨는 응원단으로부터 노래 하나를 배워왔다. 제목이 확 깼다. <여성은 꽃이라네>. 북한에서 잘 부르는 노래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 노래를 적어주었다는 것이다. 1절 가사가 이러했다.

빈 자리를 비집고 앉고 서고…

경기가 끝나고 북한 응원단이 퇴장하자 시민들이 늘어서 악수를 청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여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한 가정 알뜰살뜰 돌보는 꽃이라네/ 정다운 안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면 생활의 한자리가 비어 있으리/ 여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그 다음 2절과 3절은 ‘생활’ 대신 ‘행복’과 ‘나라’가 들어 있다. “아들딸 영웅으로 키우는 행복의 꽃”이자 “걸어온 위훈의 길에 수놓을 나라의 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으로 짐작해볼 때 북한 여성들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모두 ‘원더풀’한 슈퍼우먼이길 촉구받는 듯했다. 다만 남한에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말해야 한다고 주입받았기 때문에 속으론 어찌 생각하더라도 ‘여성=꽃’이라고 함부로 대놓고 말할 순 없는 것이다. 여하튼 북한 여성들은 여성운동 하는 안이정선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한에선 여성의 지위가 열악한 모양이지요? 우리는 탁아지원 같은 거 다 잘돼 있기 때문에 여성운동 따로 할 필요 없습네다.” (그래~애요????? 정말 좋겠군요!)

23일 저녁 7시 네덜란드 대 북한 남자배구가 열리는 대구체육관에 갔더니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5천여 관중석이 꽉 찬 상태였다. 북한전에 앞서 열린 남한 대 오스트레일리아 경기를 본 관객들이 북한전을 보려고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리 비워둔 2층 북한 응원단 자리 옆으로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날은 달성서포터즈마저도 옆자리에서 밀려나 3층에 앉아야 했다. 그나마 층과 층 사이에는 국정원 직원들과 시커먼 옷을 입은 보안성원이 앉아 접근을 원천봉쇄했다. 쳇~ ‘노란 옷’으로 바꿔 입은 보람이 전혀 없었다…. 아리랑응원단은 아예 자리를 못 잡아 일반 관중 사이사이 앉고 서고 해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1세트에서 25 대 23으로 북한이 승리하자 난리가 났다. ‘조국통일’ ‘우리민족끼리’가 연발하더니 북한 응원단에서 발원한 ‘파도’가 연거푸 2~3차례 경기장을 휩쓸었다. 아리랑응원단이든 달성서포터즈든 일반 시민이든 모두 벌떡벌떡 일어서며 함성을 외쳐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들도 단일기를 열심히 흔들었다. 2세트, 3세트, 4세트 교대로 승패를 가르던 경기는 5세트에서 15 대 7 네덜란드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는 끝났지만 응원은 이어졌다. 북한 응원단은 <아리랑>으로 분위기를 살리더니 탬버린을 들고 ‘우리는’ ‘하나다’를 주고받았다. <통일의 날에 다시 만나요>를 부른 뒤 짐을 챙기는데 남한쪽에서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부르며 분위기를 이었다. 이날 대구에서 ‘번개’를 치르기로 한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 회원들이었다. ‘국민의 힘’ 회합도 하고 남북통일응원도 할 겸 겸사겸사 대구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4살짜리 딸과 아내와 함께 의정부에서 내려온 신화섭(39·신흥대 교수)씨는 “무엇보다 ‘우리 선수 잘해라’라는 평범한 구호가 뭉클하더라. 경기장에 와보니 나이 많은 보통 시민들이 많아 놀랍고 반가웠다”고 말했다.

‘보수 대구’도 녹고 있었다

남쪽 기자가 빌려준 사다리를 이용하고 있는 북한 기자. 처음의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이내 풀렸다.(박승화 기자)
응원의 하이라이트는 24일 오후 7시 프랑스와 북한의 여자축구경기가 벌어진 대구시민운동장에서 펼쳐졌다. 붉은 옷을 입은 대구 시민 2천여명에 더해 광주전남 통일연대, 부산통일연대, 민주노총 등 전국 각지에서 5천여명이 ‘조직적으로’ 아리랑응원단에 합류했다. 2만석의 대구시민운동장이 3분의 1 가까이 붉게 물들었다. 전반전에서만 9골을 뽑아내며 북한이 일방적인 게임을 펼친 덕분에 관중들은 ‘어차피 이길 경기’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응원’에 맘놓고 열중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내려온 한국청년단체협의회 200여명 회원 사이에 끼어 나도 모처럼 열광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구호의 화답이 이어지더니 아리랑응원단에서 대형 한반도 단일기를 북한 응원단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관중들의 머리를 타고 넘어 하늘색 ‘한반도’가 북쪽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휴전선 철조망은 국정원과 보안성원 직원들이었다. 남북 응원단 경계에 서 있던 이들은 깃발을 북쪽으로 보내지 못하게 막았다.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넘겨라, 넘겨라”를 외쳐댔다. 3분쯤 멈췄을까, 주춤하던 깃발이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했다. 골이 터지는 것보다 100배쯤 더 짜릿했다. 대형 전광판을 쳐다보니 깃발을 넘겨받은 북한 언니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언니들 못지않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9 대 빵이요? 와, 경기 싱거웠겠네. 근데 가들 오늘은 무슨 옷 입고 나왔능교? 옷에 조국통일 같은 글씨 안 쓰여 있습니꺼?” 돌아오는 길, 바빠서 텔레비전도 제대로 못 봤다는 택시기사는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 전에 2박3일 동안 대구에서 만났던 택시기사들은 다들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모하러 왔는지 모르겠네예. 우리도 굶는 사람 천지인데 돈 들여서 그리 잘해줄 필요 있습니꺼?”

폭염에 녹았는지, ‘미녀’의 웃음에 녹았는지, 붉은 옷에 녹았는지, 녹을 사람만 녹는 건지, 겉만 녹는 건지, 여하튼 ‘보수 대구’가 녹고 있었다.

대구=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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