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활력을 위한 중간간부 키우기… 경찰혁신기획단 ‘에펠탑형’인력구조 개선에 나서
“오늘은 제가 첫 발령을 받은 지 만 3년째 되는 날입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이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째라니 세월이 참 빠릅니다. 중앙경찰학교 식당에 걸려 있는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의 표어를 보며 내가 젊고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깨에 단 계급장은 꽉 차 있지만 야간근무를 서고 나서 초췌한 얼굴과 동잠바 뒤에 수북이 내려앉은 비듬을 보면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지요. 야식시간 라면을 먹고 난 뒤 입가에 묻은 김칫국물 모습이 왜 그렇게도 우습게 보이던지 말입니다. 20년 뒤에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음주단속 근무를 배정받아 거리에서 ‘불방망이’ 흔들고 서 있을 때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 경위가 플러스펜 하나를 들고 와서 사인을 하고 간다면 20년 뒤 나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순경에서 경감까지 ‘평균 24년’
경력 3년차 경찰관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운 글이다. 그의 글에서 묻어나오는 것처럼 “박봉과 말단으로 정년까지 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강박관념은 직업경찰관 대부분이 겪는 고통이다. 직업경찰관의 최하위 계급인 ‘순경’으로 들어와 평생을 근무하고도 바로 두 계급 위인 ‘경사’로 퇴직하는 것이 최근 경찰 조직의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3년 동안 경사로 퇴직하는 경우가 전체 퇴직자의 74%에 이르렀다. “말단으로 들어와 말단으로 퇴직하는 것”이 푸념이 아니라 현실인 셈이다. 이같은 수치는 일반 공무원의 직급별 퇴직현황과 비교해봐도 지나치게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하위직급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경찰 직급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경찰 조직의 노력에는 절실함이 배어 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만들어진 경찰개혁 실무추진기구인 경찰혁신기획단(단장 최광식 경무관)은 이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확보 방안에 대해 최근 기획예산처와 협의에 들어갔다. 아직은 법률상 상급기관장인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도 이 문제를 경찰개혁의 첫 단추를 꿰는 중요한 대목으로 인식해 기회 있을 때마다 직급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찰 조직이 직급 문제와 관련해 바라는 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허리’를 보강하고 싶다는 것이다. 책임 있고 능력 있는 ‘허리’층을 보강해야만 대국민 서비스가 대폭 강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직업경찰관을 계급별로 보면 ‘비간부’로 분류되는 경사를 포함한 경장과 순경 등 말단 3개 계급이 86.2%(표 참조)를 차지한다. 현재 전체 직업경찰관은 9만1천여명으로, 고위간부급이라고 할 수 있는 총경 이상은 0.5%에 불과하고 중간계급인 경정·경감·경위조차 13.3%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활력 있고 전문성 있는’ 조직을 꿈꾸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중간층이 극히 빈약한 이같은 ‘에펠탑형’ 인력구조는, 필연적으로 여러 문제들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게 경찰 조직의 한결같은 견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국가공무원(일반직)과 지방공무원(일반직)을 통틀어 경찰 조직만큼 중간층이 빈약한 정부기관은 없다”면서 “파출소와 비슷하게 읍·면·동 등 하부 집행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직급별 정원기준과 비교해봐도 경찰의 직급체계는 상대적으로 불합리한 상태”라고 말했다.
절대부족한 사법경찰관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중간층이 극히 빈약하다보니 일반직 공무원이 9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는 데 평균 17년이 걸리는 데 비해 순경이 경감까지 가는 데는 평균 24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하위직 경찰관의 사기가 떨어지면 근무의욕이 떨어지고 능동적인 직무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무사안일→자포자기→부정부패로 이어지는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이 허리층을 보강해야만 하는 이유로 꼽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사법경찰관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인권보장 기능의 약화 현상이다. 현재 조사·형사·교통사고 조사 등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수사 분야는 경위 이상이어야만 사법경찰관으로서의 직무수행이 가능하다. 즉, 형사소송법상 수사의 책임을 ‘검사’와 함께 떠맡을 수 있는 사법경찰관(경찰 조직으로는 ‘경위’ 이상 계급에만 적용됨)의 수를 늘려야 수사의 적법절차를 실질적으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경위 이상 사법경찰관이 부족해 일선에서는 사법경찰관이 책임져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경사 이하 사법경찰관리(형사소송법상 수사보조자의 위치에 해당함)가 직접 (사법경찰관의) 도장만 빌려 찍는 식의 권한 대행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영장 없이 이뤄지는 긴급체포 등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법 집행의 경우 법률에 따르면 사법경찰관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현실은 이를 바꿀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경사가 파출소장을 맡는 경우(전국 파출소 418개 가운데 14.2%에 해당)에는 긴급체포권한이 없어 낮에는 근처에 위치한 경위 파출소장에 달려가고, 밤에는 일선 경찰서 상황실장의 도움을 받느라 사건처리가 미뤄지는 등 불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직 규모나 업무 비중에 비해 지휘부나 실무 인력의 직급이 너무 낮아 지자체의 부기관장보다 직급이 낮아 원활한 업무협조가 어려운 경우도 생기고 있다.
‘피라미드형’구조로 바꿔야
‘에펠탑형’ 인력구조를 ‘피라미드형’ 인력구조로 바꾸자는 경찰의 의도는 실현될 수 있을까.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치안이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이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그 서비스는 값싸게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선입견만 없앨 수 있다면 경찰 조직의 꿈이 터무니없다고 반박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머리에 등장하는 경력 3년차 경찰관은 자신의 글을 이렇게 끝맺는다. “20년 뒤의 미래는 밝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파출소장이 되어 있진 못해도 조직의 선배로서 대우를 받으며, 자기가 일한 만큼 보수를 받으며, 후배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는 경찰관이 되고 싶습니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경찰관들. 경찰이 하위직급이 비대한 내부 직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청와대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