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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인환] 고속도로를 평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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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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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환 기자의 도로공사 안전순찰요원 체험… 잡물제거에서 피투성이 사고차 수습까지

“도공 영동, 영동 3호!”

“예, 3호. 말씀하십시요.”

“영동 3호, 2공구 순찰!”

“예, 수고하십시요.”

8월13일 오후 고속도로 안전순찰요원 체험을 위해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 충북 영동지사를 찾았다. 근무에 나서기 전 주먹을 불끈 쥐고 “안전! 안전! 안전!”으로 끝나는 구호까지 외치고 순찰차에 올랐다. 지사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영동 요금소를 지나 곧바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안전조끼에 안전모까지 눌러쓰고 짐짓 태연한 체 등받이에 몸을 기댔지만, 맘까지 편안한 건 아니었다. 지난해에만 모두 5명의 안전순찰요원이 업무 중 교통사고로 순직했다지 않던가. ‘고속도로 순찰요원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던 동료가 떠나오기 전 뒤통수에 대고 한 말이 떠올랐다. “생명보험은 들어놨어?”

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요원들은 고속도로 유지·관리를 현장에서 책임진다. 안전순찰요원들이 고속도로 주변 공사장 출입구가 제대로 잠겼는지 살피고 있다. 왼쪽이 정인환기자.

생명보험은 들어놨어?

경북 김천시 추풍령 휴게소 부근에서 대전 동구 비룡분기점까지 총연장 56.6km를 관할하는 영동지사는 고속버스 기사들도 ‘마의 구간’이라고 부를 정도로 도로 사정이 녹록지 않다. 경부고속도로 중간지대로 산악지역을 관통하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급경사와 커브길이 많은 탓이다. 경부고속도로에 있는 9개 터널 가운데 8개가 이 구간에 몰려 있다. 더구나 금강 수계가 가까이 있다보니 안개가 자주 껴 가시거리가 30m 이하로 떨어지는 날도 많다고 했다.

“그냥 러버콘(rubber corn·도로에서 임시 차선 역할을 하는 붉은색 원뿔)이라 생각하고, 가만히 있게만 하세요.” 주동혁 교통안전과장은 출발하기 전 동행하는 순찰요원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도로에 쏟아진 비누상자를 치우다 영동지사 안전순찰요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서 있을 순 없는 법! 출발한 지 3분여 만에 하행선 1차선에 떨어져 있는 종이상자를 줍기 위해 순찰차가 멈춰서자 재빨리 도로에 내려섰다.

‘잡물 제거’. 도로에 방치된 물건은 차량 운행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안전순찰요원들이 도로에 떨어진 물건을 치우고 있다.
조장 백남출(53·경력 20년차)씨가 익숙한 솜씨로 신호봉을 휘두르며 ‘후면 안전관리’를 하는 사이, 유진형(35·경력 10년차)씨가 잰 걸음으로 도로로 뛰어들어 눈 깜짝할 새 ‘잡물제거’를 끝마쳤다. 5초나 걸렸을까? 차에서 내려선 것이 머쓱해졌다. “그냥 보기만 하세요. 괜히 일 돕는다고 나섰다가는 서로 위험해지니까.” 백씨는 웃으며 말했지만, 듣는 입장에선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한 느낌이었다. 이번 취재는 ‘기자가 지켜본 세상’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순찰차가 다시 멈춰선 건 채 2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번에는 과일상자 다발이 길 한켠을 점거하고 있었다. 백씨가 달리는 차량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신호봉을 흔드는 사이 상자 다발을 들고 돌아온 유씨의 이마에 어느새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다. “다리 위에는 갓길이 없기 때문에 훨씬 긴장하게 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씨가 말했다.

도로 안쪽 차선에 떨어진 물건을 치우기 위해선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차량 흐름이 잠시 끊긴 사이 갓길로 뛰어나오는 안전순찰요원의 발걸음이 바쁘다.
도공 안전순찰요원들은 고속도로 유지·관리를 현장에서 책임진다. 도로에 떨어져 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물건을 치우는 일(잡물제거)과 교통흐름을 현장에서 알리는 일이 그들의 몫이다. 또, 터널이나 교량·비상전화 등 시설물을 점검하고, 사고가 났을 때 2차사고를 막기 위해 사고차량 주변의 교통을 통제하는 일(안전관리)도 주요 임무다. 보통 근무는 2인 1조로 이뤄지는데, 각 지사가 관리하는 구간을 2개 공구로 나눠 순찰을 돈다. 순찰차가 평균 70km로 운행하는 것도 달리는 차 안에서 도로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손짓 하나에 ‘목숨’이 달려 있다

고속도로 이용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안전순찰요원들의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타이어 교체 장비를 비롯한 각종 정비도구는 물론 비상용 연료까지 순찰차에 빼곡히 싣고 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원하는 ‘편의’도 천차만별이다. ‘긴급상황’이라는 무전에 찾아가보니 “급한 김에 길가 풀섶에서 ‘일’을 본 뒤 화장지가 없어 연락을 했다”고 태연히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부싸움을 한 뒤 무작정 고속도로에 내려선 뒤 비상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단다.

오후 3시19분께 영동 나들목을 빠져나와 상행선 방향으로 들어서자마자 순찰차가 다시 멈춰섰다. 이번에는 나뭇조각 뭉치가 1차선에 떨어져 있다. 처리하러 들어간 유씨가 이번에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2분여 만에야 기회가 찾아왔다. 조장 백씨의 수신호가 떨어지자, 유씨가 순식간에 갓길쪽으로 내달린다. 서로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결과는 치명적이다. 손짓 하나에 그야말로 ‘목숨’이 달려 있다.

“한겨울에 잡물제거를 하러 들어갔다가 30분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고 중분대(중앙분리대) 곁에서 벌을 설 때도 있다. 코끝을 스치듯 달리는 차량이 만들어내는 찬바람에 안면 근육이 굳어버릴 정도다.” 백씨가 남의 얘기하듯 말했다.

고속도로 교통체증은 자칫 사고를 부를 수 있다. 안전순찰요원이 정체구간에서 교통통제를 하고 있다.
순찰차가 추풍령 휴게소에 다가서면서 차량 흐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순찰차 지붕에 설치된 전광판에 ‘추풍령 휴게소 2km 전방, 교량공사로 지·정체’라는 안내문구를 올린 뒤 차에서 내려선 순찰요원들에게 한 화물차 기사가 손짓을 한다.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해대는 모습이 “시간 없는데 왜 공사를 해서 차를 막히게 하느냐”는 항의라도 하는 모양이다.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히면 사고를 부를 수 있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내달리던 운전자들이 차간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뒤늦게 속도를 줄일 경우 자칫 연쇄추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순찰요원들이 손에 든 신호봉을 바삐 움직이며 ‘안전관리’에 나섰다.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 속도를 낮추라는 뜻이고, 두 팔을 좌우로 벌리면 차간 거리를 넓히라는 신호다.

고속도로에도 농약을 뿌리더라

교통통제를 하고 있는 사이 반대편 상행선으로 ‘작업 중’이라는 푯말을 단 차량이 천천히 지나갔다. 무슨 일인지 묻자, 유씨가 “도로와 갓길 사이 틈새에 풀이 나면 도로가 갈라진다. 이를 막기 위해 제초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속도로에도 농약을 뿌린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속도로에 어둠이 깔리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질주하는 차량이 내는 굉음은 더욱 위협적으로 변한다. 밤 10시께 근무교대를 해 이번에는 1공구쪽으로 나가는 순찰조를 따라 나섰다.

“사고가 나면 일단 차를 갓길로 빼야 하는데, 고속도로 차선에 그대로 차량을 방치한 채 담배를 피우거나 전화를 거는 운전자들이 있다.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르는 탓이다.” 김진수(32·경력 2년차)씨가 “이 얘기는 꼭 써달라”며 말을 꺼낸다. “위험하다고 경고를 해도 ‘보험사에서 레커차를 보내기로 했다’며 미동도 않는 운전자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자칫 2차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밤 근무의 백미는 ‘졸음과의 전쟁’이었다. 11시50분께 도착한 하행선 옥천 휴게소는 빼곡히 들어선 화물차로 만원이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화물차 10여대가 휴게소 들머리를 점령해버렸다. 휴게소에 주차공간이 없으니, 무작정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러버콘 서너개로 차량 뒤편에 안전조치를 취해준 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졸음운전 화물차를 깨우며…

12시57분께 피로가 몰려들기 시작할 무렵, 앞서 가던 화물차 1대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눈에도 졸음운전이 분명했다. 사이렌을 울리고 경고등을 반짝거리자 잠시 괜찮아지는 듯하더니 다시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김씨가 조심스럽게 속력을 높여 화물차와 나란히 달리면서 경고방송을 시작했다. “아저씨, 차 옆으로 대고 좀 쉬었다 가세요.” 선잠에서 깨어난 운전자는 고맙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차량을 멈추지는 않았다.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어쩌겠어요.” 조장 김기천(41·경력 15년차)씨가 한숨을 내쉰다. 안전순찰요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동안 뒤쫓아가며 다시 졸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면서 고속도로를 배회하던 수마(垂魔)의 위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갓길 곳곳에 깊은 잠에 빠져든 화물차들이 행렬을 이루기 시작했다. 판암 나들목 부근에서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화물차들 뒤편에 러버콘을 설치한 뒤 출발을 하려는데 상황실에서 다급한 무전이 들어온다. 조장 김기천(41·경력 15년차)씨가 “이 시간에 무전이 오면 사고밖에 없다”며 아연 긴장하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하행선 영동2터널 부근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다.

시속 70km를 유지하던 순찰차가 갑자기 빨라졌다. 잠깐 사이에 시속 120km를 넘어서는데, 잇따라 전화가 빗발친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레커차 운전기사를 통해 현장 상황설명이 전달됐다. 속력을 더욱 높이며 조장 김씨는 “이럴 땐 상황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몇 차선에서 사고가 났는지에 따라 교통차단과 후속 정리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2차사고를 막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고현장에는 이미 119구급대와 경찰 고속도로순찰대가 도착해 있었다. 순찰차를 세우자마자 안전요원들이 숨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러버콘 대여섯개를 꺼내들더니 몸을 사리지 않고 뛰기 시작한 김씨를 따라 70~80m를 내달렸다. 삽시간에 차선 하나를 막아냈다. 김씨가 신호봉을 든 손이 바삐 위아래로 움직이며 차량통제를 하는 사이, 순찰차 지붕에 있는 전광판에는 ‘전방사고, 서행운전’이라는 경고문이 떴다.

한숨을 돌린 뒤 사고차량에 다가서자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다. 뒤에서 정면으로 들이받았는지 1.3t 소형 화물차의 앞유리는 통째로 깨져나갔고, 차량 앞부분은 운전석까지 찌그러졌다. 이부자리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운전석 주변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에 비해 앞서가던 19t짜리 대형 화물차는 ‘가벼운 찰과상’ 수준이었다.

드디어 사고를 만나다

졸음운전이 부른 불행이었다.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던 대형 화물트럭의 속력이 떨어진 사이 뒤따라 오던 소형 화물차 운전자가 졸다가 차량 뒤편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소형 화물차를 몰던 30대 운전자는 인근 충남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고, 상황은 10여분 만에 막을 내렸다.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요원들도 변비가 생길 정도로 밤근무는 긴장의 연속이다. 사고차량이 견인된 뒤 러버콘을 회수하면서 조장 김씨는 “안전장치를 충분히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특히 야간에는 조금만 지체해도 2차 사고의 위험이 급속도로 커진다. 분초를 다투는 시간에 순간적으로 현장 상황을 판단해 대처하는 게 필수”라고 전했다.

2002년 말 현재 도공이 관리하고 있는 고속도로 길이는 23개 노선 2663km다. 도공 40개 지사마다 14명씩, 전국적으로 모두 560여명이 안전순찰요원이 그 길 위를 하루 24시간 달리고 있다.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스트레스, 위험한 근무환경 탓인지 안전순찰요원 가운데 위장병이 없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 귀향길에 갓길에서 신호봉을 손에 든 그들과 마주친다며, 웃는 얼굴로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줄 일이다.

영동=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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