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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23년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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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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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7년부터 인도의 웨스트 벵골주를 통치해왔던 요티 바수(87) 주무장관이 10월27일 건강 문제로 이번주에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바수의 은퇴가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면서도 23년이나 집권했다는 데 있다.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카스트로 등의 집권 기간이 더 길지만 바수는 부르주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인도의 전체 25개주 가운데 그 누구도 바수만큼 오래 집권한 인물은 없다. 바수가 중앙위원으로 있는 ‘마르크스주의 인도공산당’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가 낫과 쇠망치가 그려진 깃발과 함께 선명하게 적혀 있다.

바수는 지난 9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르크스주의만이 미래가 있다”며 “착취를 없애는 데 몇 세대가 걸릴지 모르지만 자본주의는 인류문명의 최종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케케묵은 주문만 되풀이하는 듯 보이는 그가 강한 정치 생명력을 가진 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고 원칙과 현실을 잘 조화시켰기 때문이다. 바수는 집권하자마자 광범위한 농업개혁을 단행해 빈민에게 농토를 나눠줌으로써 하층계급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90년대 미국과 영국을 방문해 14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수완도 보였고, 대중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대단히 뛰어나다.

노동자인 디나반두 베라는 “그 누구도 바수만큼 인민의 역동성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를 칭찬하고 있지만 동시에 기업가로부터는 공산당 지도자 가운데 첨단기술의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수는 96년 인도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공산당 안 강경파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비록 은퇴를 선언했지만 바수는 완전히 정치에서 손을 떼지는 않을 전망이다. 인도 언론들은 “바수는 앞으로 킹메이커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최후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정치 일선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경 기자/ 한겨레 국제부gauz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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