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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9.11이 낳은 신데렐라, 리사 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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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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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월마트나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걷다보면 꼭 발견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해리 포터, 힐러리 자서전, 그리고 9.11이 낳은 신데렐라다. 리사 비머. 금발에 푸른 눈, 가냘픈 몸매가 천사같은 그는 신앙심도 깊고 비즈니스에도 소질이 있는 완벽한 여성이다. 그리고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년전 이맘때만해도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했던 그는 지금은 전 미국인이 추앙하는 성녀다.

리사 비머의 남편 토드 비머는 9.11때 희생당한 사람이다. 9.11때 납치당한 비행기는 모두 4대. 두 대는 세계무역센터에 떨어졌고 한 대는 펜타곤에, 그리고 한 대는 피츠버그 남동쪽 들판에 떨어졌다. 토드 비머는 들판에 떨어진 유나이티드 93호기에 타고 있었다. GTE 에어폰에서 근무하는 리사 제퍼슨에 의하면, 토드와 함께 있었던 톰 버넷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비행기 납치상황을 중계했다고 한다. 리사 제퍼슨은 토드 비머의 목소리도 들었다고 하는데, 이 통화내용이 얼마나 길고 자세했는지 토드는 리사 제퍼슨에게 아내가 곧 아이를 낳을 것이란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리사 제퍼슨의 주장에 따르면 토드 비머와 톰 버넷은 함께 조종석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돌진했다고 추정된단다. 그래서 유나이티드 93호는 펜타곤이나 세계 무역센터나 다른 어떤 국가적인 상징물도 부수지 않고 홀로 쓸쓸히 희생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드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 굳이 한국말로 옮기자면 "함 해보자". 이건 리사 비머가 최근에 발행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그래, 우리 한 번 해보자"며 테러리스트를 향해서 뛰어든 미국의 선량한 남편과 그를 추모하는 미망인. 슬픔에 젖은 미망인은 뱃속에 있는 남편의 세 번째 아이와 하나님에 의지하여 일어선다. 한 월남전 참전용사는 그에게 자기가 받은 소중한 훈장을 보내고, 미국 의회는 기립박수로 미망인을 맞이한다. <오프라>토크쇼, <래리킹 라이브>, <60분>, <굿모닝 아메리카>등 TV는 미망인을 향해 카메라를 돌린다. <타임>과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 등 인쇄매체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답지하는 성원에 힘입은 그는 펀딩을 받아 <토드 비머 재단>을 세우고 설립자가 된다. 한마디로 더이상 완전할 수는 없는 인간승리다.

기적을 못미더워하는 어린 양들에게 리사 비머는 기적의 존재를 가르쳐준다. 칼과 폭탄으로 무장했다는 테러범이 세 명이나 지키고 있는 와중에서 인질인 승객이 기내 상황을 생중계할 수 있었다는 기적, 통화량이 급증했다는 9.11 아침에 GTE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전파가 도달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비행기 안의 통화가 끊김없이 이루어졌다는 것. 이것을 리사 비머의 책은 '기적'이란 말로 설명한다. 하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하고 죽었다는 소년이 있으니, "Let's roll!"이라고 하고 죽었다는 영웅이 없으란 법은 없다.


웃을 일이 아니다.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구체성이 바로 힘이 아닌가. 인간적으로, 구체적으로, 반복적으로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포만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힘이 된다. 자기가 자세히 많이 아는 애완견의 슬픔이, 잘 모르는 아프리카 난민의 굶주림보다 중요한 법이 아닌가. 우리도 하자. 늦지 않았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유가족들을 영웅이라 칭하자. 아침마당에 토크쇼에 추적60분에 이 사건을 다시 불러내자. 미국 의회가 리사 비머에게 했던 것처럼 국회에 효순이 어머님을 모셔다가 기립박수를 드리자. 미선이의 친구들이 바라본 미군문제를 특집으로 싣자. '효순이와 미선이의 짧은 나날들'이란 책도 한 권 내자. 그리고 그들과 같은 신앙고백으로 이 구체성을 마무리하자. 이 고통스러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강해지게 되었노라고.

인디애나=이민아 | 자유기고가 mina74@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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