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그래도 국화 옆에 서리다

332
등록 : 2000-10-31 00:00 수정 :

크게 작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현수국 새순은 삭풍 한철부터 서둘러 올라온다. 한해 국화재배의 시작이다. 이른 봄이면 대국 새순이 올라오고, 분갈이가 이어진다. 연이은 세번의 분갈이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봄은 저만치 가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한겨울부터 박진익(35·전북 정읍시 내장동)씨는 그렇게 열심이었다. “봄엔 줄기하고 잎밖에 없지요. 오래 하다보니 이젠 그놈들만 봐도 꽃모양이 보이네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올 여름 천둥 먹구름 속에서 그도 울었다. 뒤늦게 덮친 장마에 농장은 침수됐고, 국화 뿌리는 썩어들어갔다. 태풍도 비켜가지 않았다. 흔들리는 비닐하우스를 붙잡고 밤새 고생한 박진익씨. 하지만 어떤 시련도 그의 단심을 꺾지는 못했다. 마침내 가을, 꽃봉오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국화 키우는 일은 기다림입니다. 일년 내내 기다려야 꽃이 피고요,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면 꽃이 안 나옵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농고와 원예대학을 마치고 91년 서울행 기차를 탔다. 밑천은 몸에 밴 성실함 뿐. 몇년 고생 끝에 꽃꽂이 전문가로, 조경사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도회지 생활이 안정될수록 오히려 향수는 커갔다. 내내 그리움에 젖었던 그에게 99년 마침 때가 왔다. 정읍시가 ‘우리꽃 우리나무 심기 사업’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오랫동안 품어온 ‘내장산 단풍과 국화가 어울리면 관광상품으로 금상첨화일 텐데…’란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지난 겨울 박씨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고향땅에 다시 뿌리를 내렸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주머니를 털어 무작정 국화재배를 시작한 지 어언 꼭 일년. 생돈 2500만원에 인건비까지 합쳐 5천만원이 들었다. 애초부터 수입은 기대하지 않았다. 일년 동안 국화를 재배해 국화전시회를 성공시키면 그만이었다. 전시회를 통해 국화재배가 정읍시 특화사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유일한 목표. 겨울, 봄, 여름이 지나 드디어 국화의 계절 가을이다. 박씨는 그동안 가꿔온 국화를 모아 11월2일부터 5일까지, 정읍사 예술회관에서 국화전시회를 연다. 중2 때부터 국화에 매료돼 17년 동안 가꿔온 시골청년의 꿈이 드디어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시에서 특화사업으로 받아들여주면 계속하는 거고요. 아니면 살길 찾아 떠나는 거고요.” 말끝마다 꼭 ‘∼고요’를 붙이는 고요한 사람, 박진익씨는 ‘국화 옆에서’ 오래도록 남고 싶다. 혹시 정읍까지 발길이 닫지 않는다면 박씨의 홈페이지(www.jinik.kr21.net)에 들러도 국화향기를 맡을 수 있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