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있는 ‘얼라’들은 교무실에 와서 나에게 조용히 말해주기 바란다.”
선생님의 동아리 소개말이 처음부터 가슴에 와락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사엔 별로 관심도 없고 엘리트 집단 같은 부담스러운 면도 있고 하여” 겁이 났었다. 그러나 서울 중경고등학교 역사탐구반 동아리 학생들은 점차 바뀌어갔다. 첫 계기는 2001년 불거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였다. 자원봉사 활동으로 교과서 왜곡 반대 캠페인 등을 벌이던 학생들은 당시 식민지 희생자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의 소개를 받아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로 징집됐던 할아버지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쑥쑥 자라났다. 징병으로 끌려가 연합국 포로 감시를 맡다가 전범으로 몰렸던 할아버지, 남편을 군대에 보내고 50여년을 고된 시집살이하며 살아온 할머니,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아버지 명부를 제외해 달라며 소송을 낸 아주머니, 16살 때 탄광으로 끌려가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 등을 취재하며 일본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적개심과 동경심은 ‘역사의식’으로 진화해나갔다. 그리고 지난 2년간 걸쳐 이뤄진 이 ‘특별한 만남’들은 한권의 책으로 묶였다. <10대들의 역사리포트>(역사넷 펴냄).
학생들은 일제가 개인 한명 한명에게 새긴 상처를 기록하는 것말고도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자료들도 실었다. 17살 때 군으로 끌려간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시 일본이 발표한 ‘육군 특별 지원병령’이 무엇이었는지, 당시 징병을 부추기던 언론들의 보도 행태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폈고, 위안부 할머니와 인터뷰할 때는 당시 문인들이 ‘처녀 공출’을 선전하기 위해 쓴 친일 시나 위안부 모집 광고도 실었다. 특히 지난해 1월엔 일본 히로시마 등을 방문해 전쟁의 상처를 목도했고, 일본 친구들과 만나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도 했다.
2001년 역사탐구반을 처음 시작한 국사 교사 박중현(43)씨는 “역사가 옛날의 고전 같은 것만이 아니고 숨쉬는 현실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며 “과거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한-일 두 나라 젊은이들 사이에 진정한 우정을 새기는 길”임을 강조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