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시를 탈출하는 휴가 차량 행렬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연간 5주간의 유급휴가를 연중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고, 휴가계획을 짠 뒤 끊임없이 새로운 일정과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한해를 보낸다는 유럽인들 얘기를 들으면 부럽기 짝이 없다. 유급휴가 3일에 연·월차 2일, 주말을 합쳐 일주일을 쉴 수 있으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우리의 휴가문화가 왠지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비록 업그레이드 없이 얼떨결에 떠나는 여름휴가지만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의 주인공이기에 그 설렘과 기대감을 어찌 유럽에 비할 수 있을까.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이 8월4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휴가’를 떠났다.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분명한 메시지는 ‘대북사업의 중단 없는 추진’이었다. 남북교류와 대북사업을 위해 ‘열심히 일한’ 그만이 먼 길을 떠나면서 남길 수 있는 말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너그러워지는 탓일까. 그의 죽음을 남북분단사의 아픔으로까지 묘사하는 추모의 글도 눈에 띈다.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에 따라 남북경협에 쏟았던 그의 열정과 고뇌를 뒤늦게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의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옹졸하고 비겁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의 빈소 왼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화가, 오른쪽에 노무현 대통령의 조화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은 그것을 상징하고 있다. 햇볕정책을 ‘퍼주기’라고 몰아붙이며 대북송금 특검을 관철시켰던 한나라당의 홍사덕 총무는 “특검수사가 제대로 안 돼 한 기업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특검과 청문회, 국정조사로 그 경위를 밝힐 것”이라며 다시 팔을 걷어붙인다. 특검을 받아들였던 노 대통령은 “정 회장이 남북 경협사업과 남북관계 발전에 크게 공헌해왔다. 경협이 고인의 뜻대로 흔들림 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때늦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말을 잇지 못한 것도 그를 ‘지켜주지’ 못한 만시지탄의 회한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대화를 통해 고통을 함께할 누군가가 주위에 없다는 것이 자살의 한 원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그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었을까. 1998년 6월18일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소떼를 몰고 북녁의 고향을 찾았고, 그는 이제 한줌 유분(遺粉)이 되어 자신이 열정을 쏟았던 금강산에 뿌려지게 됐다. 유서를 쓰고 긴 ‘휴가’를 떠나면서 어쩌면 그는 남북통일이라는 설렘과 기대에 차 있었는지 모른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