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샴 쌍둥이들의 파란만장한 삶…대개 서커스단에서 생활하다 같은 날 사망
역사 속의 샴 쌍둥이들은 고단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 기형적인 모습과 희귀성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이런 상품성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려는 파렴치한 인간들은 이들을 납치·감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과 용감하게 결혼한 사람도 있었으며, 이들을 수렁에서 건져올려 교육을 시키는 훌륭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대개 서커스단이나 쇼 흥행단에 몸을 담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묘기 또는 노래·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생활했다. 영화배우가 된 사람도 있었다. 60살이 넘도록 장수한 경우도 꽤 있었다. 같은 시각에 한몸으로 태어난 이들은 모두 같은 날 죽었다.
63세까지 살며 자녀 남긴 엥과 창
역사상 가장 유명하며 샴 쌍둥이란 말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엥과 창이다. 이들은 1811년 샴(지금의 타이) 왕국의 방콕 부근 메콩강 강변에 있는 한 마을에서 가슴이 붙은 채 태어났다. 18살 되던 때인 1829년 미국으로 건너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한 미국인의 말에 그를 따라 배를 타고 보스턴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7개월을 보낸 엥과 창은 영국으로 갔다. 키가 157cm와 155cm인 이들 형제는 관중들에게 곡예를 선보여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프랑스로 여행하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 관리들은 이를 거부했다. 프랑스 임신부들이 이들의 기괴한 모습을 볼 경우 이와 비슷한 기형 어린이가 태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오른쪽의 창은 엥보다 힘도 세고 건강했으며 술과 노름을 좋아한 반면, 엥은 조용하고 수줍음을 잘 탔다. 창이 밤새도록 노름을 즐기는 동안 엥은 기다리다 지쳐 잠드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1832년 유명한 바넘 서커스단에 입단해 활동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1839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뒤 쇼무대를 떠나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자그마한 농장을 사들여 정착했다. 이들은 인근 농장에 사는 10대 자매와 사랑에 빠져 이들 자매 부모와 이웃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1843년 봄 결혼했다. 엥과 창 형제는 두 자매 집을 사흘씩 오가는 식으로 생활했다. 이들이 어떻게 성생활을 했을까는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엥은 11명, 창은 10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보아 아무런 문제없이 성생활을 즐긴 것 같다. 1874년 1월17일 창이 먼저 죽었고 3시간 뒤 엥도 따라 숨졌다. 63살이었다. 당시로서는 장수한 셈이다. 이들의 주검은 기증돼 부검이 이루어졌다. 창은 중풍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엥이 왜 죽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창과 서로 피를 공유하며 살았기 때문에 엥의 몸 속에서 피가 많이 빠져나가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창과 엥은 당시 미국과 유럽 사회 시민들의 샴 쌍둥이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았다. 샴 쌍둥이도 직업과 배우자와 건강한 가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보여준 것이다.
흔히들 창과 엥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샴 쌍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영국 켄트 지방의 비든덴에서 1100년에 태어난 메리와 엘리자 헐스트 자매는 허리와 엉덩이가 붙은 채 34년을 살았다. ‘비든덴의 소녀들’로 불린 이들은 부자였다. 이들은 죽으면서 지역 교회에 20에이커의 땅을 기증했다. 교회는 이들 자매의 자애로움을 기념하기 위해 그 뒤 해마다 부활절 첫 일요일에 가난한 사람에게 이들 자매의 모양을 새긴 자그마한 케이크와 비스킷을 나눠주고 있다. 이들이 죽은 지 9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전통은 계속되고 있다.
학대 받다 탈출해 영화배우로 성공 1851년 미국에서는 밀리와 크리스틴 자매가 엉덩이가 붙은 채 태어났다. 이들은 어렸을 때 부모한테서 떨어졌다. 그 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여러 차례 인신매매와 납치 등 비인간적 학대를 당하다가 마침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 특별한 재능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흥행 쇼에 출연해 성공을 거둔다. 이들도 61살까지 살았으며 같은 날 죽었다. 바이올렛과 데이지 힐튼 자매는 샴 쌍둥이 출신의 첫 영화배우다. 1908년 영국에서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한 과부에게 팔려가 20년간 학대를 받으면서 흥행 쇼에 나가 춤추고 노래하고 색소폰과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이들은 극적으로 탈출해 법정 싸움 끝에 독립에 성공한다. 힐튼 자매는 1932년 <프리크스>라는 영화에 출연했으며 몇년 뒤 <사슬로 묶인 인생>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두 자매는 나중에는 결혼까지 했지만 데이지가 10일 만에 파경을 맞는 등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들도 밀리·크리스틴 자매처럼 61살 때 독감에 걸려 같은 날 숨졌다. 안종주 보건복지전문 기자/ 한겨레 사회부 jjahn@hani.co.kr

사진/ 엥과 창의 공연을 홍보하는 포스터.

사진/ 16세기 프랑스 의사가 그린 샴 쌍둥이 그림.
학대 받다 탈출해 영화배우로 성공 1851년 미국에서는 밀리와 크리스틴 자매가 엉덩이가 붙은 채 태어났다. 이들은 어렸을 때 부모한테서 떨어졌다. 그 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여러 차례 인신매매와 납치 등 비인간적 학대를 당하다가 마침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 특별한 재능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흥행 쇼에 출연해 성공을 거둔다. 이들도 61살까지 살았으며 같은 날 죽었다. 바이올렛과 데이지 힐튼 자매는 샴 쌍둥이 출신의 첫 영화배우다. 1908년 영국에서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한 과부에게 팔려가 20년간 학대를 받으면서 흥행 쇼에 나가 춤추고 노래하고 색소폰과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이들은 극적으로 탈출해 법정 싸움 끝에 독립에 성공한다. 힐튼 자매는 1932년 <프리크스>라는 영화에 출연했으며 몇년 뒤 <사슬로 묶인 인생>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두 자매는 나중에는 결혼까지 했지만 데이지가 10일 만에 파경을 맞는 등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들도 밀리·크리스틴 자매처럼 61살 때 독감에 걸려 같은 날 숨졌다. 안종주 보건복지전문 기자/ 한겨레 사회부 jjah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