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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시아,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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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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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천년의 미소, 천개의 미소.’

아시아 국가를 여행한 사람이면 어느 나라를 가든지 한번쯤 전해들었을 말이다. 유구한 역사를 토대로 한 아시아인들의 자신감과 당당함,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겸손과 온화함을 표현한 것이다. 얘기를 듣고 그들의 미소를 음미하면 오묘하기 그지없고 편안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우리와 아시아는 아직 멀게 느껴진다. 우리가 아시아를 미국이나 유럽처럼 여전히 ‘자본’ 중심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제금융 조기졸업’과 ‘한류열풍’,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예고’에 들떠 우리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것도 한몫 거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고교생들이 시험지를 훔쳐 기말고사를 치렀다가 무더기로 퇴학당했다는 소식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과연 이번 사건이 한국의 성적 만능주의 교육현실이나 대학입시에 압박감을 느낀 철부지 학생들의 일탈에서 빚어진 일일까. 안타깝게도 그들의 일탈에는 우리 어른들이 아시아에 뿌려놓은 오만과 무례함이 배어 있다. 그동안 아시아 몇 나라를 방문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점들은 그들의 일탈을 예고하고 있었다. 동포들은 한국의 평범한 샐러리맨이 받는 월급 수준으로 운전기사와 가정부, 경비원을 거느리면서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로마시대 귀족’쯤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휴양지나 쇼핑센터에서 만난 동포들의 말투는 거칠었고 볼썽사나운 거드름은 습관처럼 불거져나왔다. 한국 여객기 기내에서는 샌님처럼 얌전하던 동포들이 그 나라 여객기를 타면 좌석을 벗어나 포커판을 벌이거나 술에 취해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만 이번 일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번 사건은 천박한 한국식 우월주의로 아시아를 대할 때 얼마나 낯뜨거운 결과를 빚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국시민사회 아시아센터’라는 단체를 필리핀에 만들어 아시아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는 소식은 희망적이다. <한겨레21>이 아시아 20여개국의 언론인과 사회운동가들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왜곡된 아시아의 역사를 바로잡고 삶의 모습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그들과 가까워지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 지인은 지난달 서울을 방문해 “6년 전 인도네시아에 처음 갔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은 부러움으로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냉랭한 눈빛으로 퉁명스럽게 대한다. 왠지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아시아와 ‘하나’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들은 경고하고 있다. 아시아로부터 ‘천민자본주의’ 나라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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