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미/ 교사·<작은 친절> 지은이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있으면 안 될 곳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심한 전율 한 자락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아이가 이 책을 펼칠 때마다 여기 적혀 있는 내 이름 석자 때문에 얼마나 낯설었을까? 자기 책이 아니라는 것, 남의 책을 빌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그건 도서관 이름과는 또 다른 낯설음이 아닐까? 도서관이야 당연히 책을 빌리는 곳이니 괜찮겠지만 이렇게 한 개인의 이름이 선명히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남의 책을 빌려 읽는다는 느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처음 전학을 온 후 그 아이가 몇번이나 내가 권한 책들을 읽고 돌려주러 왔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똑같은 책을 다시 빌려갔던 기억도. 머뭇거리며 내 책장에서 책 한권을 빼며 “저는 같은 책을 여러번 읽거든요. 이 책 한번만 더 빌려가도 되죠?”라고 말하던 아이. 나는 그때서야 아이가 왜 그렇게 책을 돌려주려 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에 적혀 있는 ‘이 책은 내 책이오’라는 그 이름 석자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 후로 책에 내 이름을 적거나 도장 찍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릴 적 책읽기의 한 즐거움으로 생긴 버릇이고 그로 인해 가졌던 기쁨이 적지 않지만 더 큰 즐거움을 위해 그것을 선뜻 포기할 수 있었다. ‘공유의 기쁨’을 위해. “그게 니 책이었니?” 내가 읽고 있을 때는 내 책, 친구의 손에 가면 그 친구의 책, 그 친구의 옆 집 아주머니에게로 가면 그 아주머니의 책. 그렇게 내 이름 석자가 사라진 책은 우리 모두의 책이 되어 우리에게 공유의 기쁨을 더해 주리라 믿기에. 요즘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방송 준비를 위해 예전에 읽은 책이 갑자기 필요해 질 때 나는 그 책을 누구에게 주었던 가를 기억해내느라 즐거운 추억 속에 잠기고 한 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 그 책을 빌미로 전화해 책과 함께 친구를 만나기도 하니 이 어찌 큰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그게 니 책이었니? 그거 나도 어디 빌려줬는데 누구에게 빌려줬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어쩌지?" 전화선을 타고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즐거움.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되어 준 책 덕분이리라. 글쎄, 그게 내 책이었나? 나도 기억이 잘 안 나네! 이영미 | 교사·<작은 친절> 지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