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정치인과 애인

468
등록 : 2003-07-17 00:00 수정 :

크게 작게

‘훔쳐보기’를 소재로 한 영화의 백미는 샤론 스톤과 윌리엄 볼드윈이 주연한, 필립 노이스 감독의 <슬리버>(Sliver)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관음증이 단순히 성행위를 훔쳐보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에게 더 복잡하고 근원적인 호기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한겨레21>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는 평범한 남녀의 성생활과 성의식을 들여다봤다. ‘우리와 닮은 다른 부부’에 대한 독자들의 근원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흥미 위주가 아니라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시대의 변화상을 읽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음을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한편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합리적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번 조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도 앞선다.

비슷비슷한 조사 결과가 가끔 선보이지만, 이전의 조사들과 사뭇 다른 흐름을 보여준 몇 가지 결과는 뜻밖이어서 이채롭다. 이 시대 기혼 남녀들이 배우자 외에 ‘애인’을 사귀고 있거나 사귀고 싶어한다는 것. 부부 성생활에 대체적으로 만족하면서도 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갖고 싶어한다는 것 등등. 40대 중반의 남자 입장에서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이런 흐름들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금실 좋은 부부도 배우자 한 사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상상의 나래를 펴면 짜릿한 일이지만, ‘내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끔찍하다. 독자 여러분들도 부부와 가정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을 듯싶다.

정치와 부부관계를 연결짓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임을 감안할 때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 정치인의 굿모닝시티 비리 연루사건은 그 파장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세계를 비교해보게 한다. 정치인의 당적 바꾸기가 ‘이혼’이라면 뇌물수수 같은 탈법행위는 ‘외도’쯤이 될 것 같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스스로 바람을 피웠다고 시인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런데 “나만 바람 피운 게 아니라 누구누구도 바람 피웠고 나보다 많이 피웠다”며 ‘물귀신 작전’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은 바람 피운 사람들이 누구이고 얼마나 피웠을까로 모아지면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정치인들은 돈 주는 사람이면 모두 ‘애인’으로 사귀는 게 문제다. 무슨무슨 ‘게이트’마다 예외 없이 그들의 ‘외도’가 드러난다. 소속 정당과 ‘잠자리’를 하면서도 늘 외도를 꿈꾸는 것도 문제다. 정당이념과 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곳’이면 언제든 ‘이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짜릿함만 있고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다.

장마가 한풀 꺾이면서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모든 부부들이 ‘애인’이 필요 없는 멋진 휴가를 보내길 기대해본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