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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프로야구와 경기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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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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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외국인 연구원 자격으로 일본에 도착한 지 열흘 정도 지났다. 가방에 넣어다닐 수 있는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매일 한국의 신문을 읽고 친지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이렇게 마감시각을 다투는 원고까지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은 참으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바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은 듯하다.

프로야구 성적이 대선에 영향을 줘?

지난주 한때이기는 하지만 닛케이지수가 실로 오랜만에 1만엔을 넘어섰고 오랜 경기침체에 지친 일본 언론들은 이를 앞다투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총리를 비롯한 고위관료들은 당연히 지난 2년 동안의 구조개혁의 성과라며 앞으로도 더욱 분발하겠다는 사뭇 비장한 각오를 보여주었지만, 같은 시각 연말에는 지수가 1만3천엔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다시 8천엔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란히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역시 주식가격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 같은 것인 모양이다. 이러한 주가상승의 가장 큰 단기적 원인은 뉴욕증권시장의 움직임에 연동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많이 사들였기 때문이라는 분석, 일본인 자체는 여전히 주식매도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은 역시 현재로서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고전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항상 경제뉴스보다는 스포츠나 연예뉴스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실은 한신 타이거즈라는 프로야구팀의 승승장구. 그 결과 빠르면 8월 중에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십몇년 만의 리그 우승이 경기회복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보도다. 내가 머물고 있는 간사이 지방이 한신 타이거즈의 본거지인 탓에 이러한 기대 내지 희망은 더 심한 것 같고, 단어 하나라도 가려서 말해야 하는 중앙은행 총재까지 이를 언급하고 나서는 것을 보면 그저 일본인 내지 매스컴 특유의 호들갑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한신 타이거즈보다 내 고향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연패 탈출에 더 관심이 있을 뿐 아니라 일본 경제전망보다는 나 자신의 가계전망이 더 급한 나로서야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제법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의 결과가 그해 겨울 치르는 대통령선거의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장난스럽지만 제법 그럴듯한 논리를 갖추었던 어느 지인의 주장이 문득 떠올랐다. 일정한 물질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지역감정에 의해 선거결과가 좌지우지되곤 하던 것은, 마치 ‘보물섬 발견 중’이라는 소문으로 몇배씩 뛰어올랐다가 ‘알고 보니 보물 없더라’라는 소문으로 다시 곤두박질치는 주식시장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허망함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그래도 정치적 선동을 위해서건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건, 또는 개인의 재테크를 위해서건 다시 그 숫자놀음에 매달리고, 그 숫자의 ‘배후조종 세력’인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개인과 집단을 동일한 논리로…

또 하나, 개인과 집단 전체를 동일한 논리로 생각하는 오류, 경제문제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 오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경제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주체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때로는 구체적 숫자로 압축·선언되는 목표달성이 단순한 상징적 의미를 넘어 정치적 위력을 갖는 담론으로까지 자기발전하는 모습은 외관만 다소 바뀌었을 뿐, 그 본질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국가적 의제의 달성을 위해 모든 주체들은 자기욕구를 자제하고 일로매진해야 한다는 자칫 전체주의적 논리로 흐르기 쉬운 주장이나, 경제관료나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경제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식의 주장이 좋은 예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수출목표 100억불, 1인당 국민소득 1천불’이라는 구호가 ‘1만달러를 넘어 2만달러로 가야 할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들’이라는 식으로 변화한 것은 아닐까 2만달러를 예전에 넘어선 일본에서마저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걸 보면 과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인 모양이다.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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