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파업투쟁 이후 생존권마저 박탈…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현실
“우리는 레미콘 기사들이다. 레미콘이 만들어지면 90분 이내에 공사현장으로 운반해주는 일을 한다. 레미콘을 공사현장까지 한번 운반해주고 돌아오면 ‘한탕’을 한 것이다. 우리는 월급이 아닌 한탕에 얼마씩 정해진 운반비를 받는다. 회사와는 1년마다 운반 도급계약을 맺는다. 회사는 우리더러 사장이라고 부른다.”
가압류 76억원, 벌금 1억9천만원, 12명 구속에 78명이 불구속 기소됐고, 파업기금만도 38억원이나 들었던 2001년 레미콘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180여일을 끌었던 노숙농성을 접고 노동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뒤, 그들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현실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똑같은 논란이 유령처럼 그들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전국 700여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2만4천여명에 달하는 레미콘 기사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노조는 허용해도 노동자는 아니다?
지난 1월10일 대법원(주심 박재윤 대법관)은 전국건설운송노조(위원장 박대규) 씨케이인프라시스분회 조합원들이 낸 ‘근로자 지위 부존 재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레미콘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업무내용을 회사가 정하고, 근무태도를 교육받는 등 업무수행 과정이 고용관계와 유사한 사실만으로 운송차주들이 근로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7월1일 이런 대법원의 판결과는 사뭇 다른 해석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나왔다. 건설운송노조가 신청한 노동쟁의 조정사건 결정문에서 조정위원들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최근 법원의 일부 사업체 레미콘 운송차주들에 대한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로 인해 노동조합 인정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레미콘업체의 근로조건 및 근로형태의 다양성으로 인해 근로자성 여부는 당사자간의 계약 및 그 이행방법의 실질적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일부 사업체의 판결을 다른 회사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 더구나 적법하게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이 교부된 만큼 권한 있는 기관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이 노동조합의 적법성을 부인하는 최종결정이 있기까지는 그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인정하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 부조리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01년 총파업 때부터 올 초까지 레미콘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궤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노동자다 아니다>를 제작한 김미례(40) 감독이 답하려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일용 건설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그린 <해뜨고 해질 때까지>를 시작으로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 <동행> 등의 작품을 통해 비정규직·여성·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발해온 그는 “그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은 그들이 처한 현실만 봐도 쉽게 드러난다”고 잘라 말했다. “가스·전기 끊기고 압류 딱지마저”
“한국에 레미콘 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1965년이다. 당시 우리는 회사에 고용돼 일하는 직영기사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민주화 대투쟁을 겪으면서 회사는 노동자가 조직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회사는 서서히 운영방식을 바꿔서, 우리로 하여금 개인사업자등록증을 내도록 유도해나갔다. 우리는 한탕마다 운반비를 받는 도급기사가 됐고, 이것이 (레미콘 차량을) 불하받는 과정까지 이어졌다. 일명 ‘탕 뛰기’를 시작한 것이다. …불합리한 것이 많았지만, 그거라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건설운송노조 여주·이천 지부장을 지낸 해고 노동자 최병옥씨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치열한 생존권 싸움을 오롯이 담고 있다. 각박한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레미콘 노동자들이 전국건설운송노조를 결성한 것은 2000년 9월이다. 서울 영등포구청에서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아냈다. 조합원은 2300여명으로, 70개 사업장에 분회도 구성됐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물론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도 “레미콘 운전기사는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노조활동을 인정했다. 명실상부한 합법노조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운명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사업주들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임단협을 앞두고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들에게는 레미콘 물량을 주지 않았다. 조합원에 대한 부당해고도 이어졌다. 도급계약 해지자 명단을 불러준 뒤 곧바로 회사에서 내몰았다. 구사대에 의해 회사 밖으로 들려나온 50대 노동자는 고개를 땅에 박고 서럽게 흐느꼈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회사 앞에서 “우리는 배고프다”고 외쳤고, 회사는 “빨갱이는 물러가라”고 비아냥거렸다.
2001년 4월 레미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5월부터는 서울 여의도공원 옆에 레미콘 차량들을 세워놓고 기나긴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가뭄을 볼모로 파업을 벌인다’는 억지논리가 생존권 싸움을 왜곡할 때는 레미콘 차량을 앞세운 채 농촌으로 달려가 논에 물을 대기도 했다.
그해 6월19일 오전 10시 경찰병력 3천여명이 투입돼 여의도공원에서 농성 중이던 조합원들을 강제 해산했다. 진압 과정에서 망치와 도끼를 휘두르며 레미콘 차량을 파손하는 경찰의 모습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당산철교 아래로 자리를 옮긴 노동자들은 노숙 농성을 힘겹게 이어갔다. 하루 13만원씩 농성장 사용료까지 물어가며 버텼다.
장마철 장대같이 퍼붓는 빗속을 뚫고 매일 광화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이 지나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닭장차에 실려 시 외곽에 버려졌다. 노래패 꽃다지 출신 이지은씨가 만든 주제곡의 노랫말처럼 “레미콘도 돌고, 운전대도 돌고, 세상도 미친 듯이 돌아간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현실이었다.
그해 9월19일 레미콘 노동자들은 180여일을 끌어온 노숙농성을 중단했다. 장기간 이어진 파업으로 이혼을 당한 조합원이 있는가 하면 전셋방을 월셋방으로 옮긴 노동자들도 상당수였다.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주지 않았으면 파업도 하지 않았을 게다. 이렇게까지 참혹할 줄은 몰랐다. 전기·가스 끊기고 텔레비전·냉장고에는 압류 딱지까지 붙었다.” 카메라를 마주한 40대 노동자는 “사람 목숨이 질기긴 질긴 모양”이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다시 투쟁은 시작된다
파업 시작 당시 230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 수는 350여명으로 줄어 있었다. 눈물바람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도, 늙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레미콘 차량을 팔아 빚을 청산한 뒤 남은 돈을 투쟁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파업을 중단한 지 1년10개월이 흐른 지금도 해고 노동자 대부분은 정든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른바 ‘적색분자’로 낙인찍혀 다른 곳에도 취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파업은 끝났지만, 레미콘 노동자들의 생존권 싸움은 그 뒤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벌어졌다. 총파업을 통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낀 노동자들이 다시 조합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말까지 조합원 수는 1천명을 넘어섰다. 경기 북부·인천 등 4개 지부 58개 사업장에 노동조합 분회가 결성됐고, 완도·전주·고창·대구 등지에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김 감독은 지난해 전국 각지를 돌며 이런 과정을 60분짜리 테이프 100여개에 담아냈다.
80년대식 현실은 80년대식 저항을 부른다. <노동자다 아니다>가 80년대식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 감독은 “일본에서도 70년대 중반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해지면서, 10여년에 걸친 투쟁 끝에 지입차주 신분이었던 노동자들이 직영기사로 바뀌었다. …거의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난해 내내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파업이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한 탓”이라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6월15일 한국노총 ‘한국건설레미콘운송노동조합’과 민주노총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연합)
그러나 지난 7월1일 이런 대법원의 판결과는 사뭇 다른 해석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나왔다. 건설운송노조가 신청한 노동쟁의 조정사건 결정문에서 조정위원들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최근 법원의 일부 사업체 레미콘 운송차주들에 대한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로 인해 노동조합 인정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레미콘업체의 근로조건 및 근로형태의 다양성으로 인해 근로자성 여부는 당사자간의 계약 및 그 이행방법의 실질적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일부 사업체의 판결을 다른 회사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 더구나 적법하게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이 교부된 만큼 권한 있는 기관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이 노동조합의 적법성을 부인하는 최종결정이 있기까지는 그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인정하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 부조리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01년 총파업 때부터 올 초까지 레미콘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궤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노동자다 아니다>를 제작한 김미례(40) 감독이 답하려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일용 건설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그린 <해뜨고 해질 때까지>를 시작으로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 <동행> 등의 작품을 통해 비정규직·여성·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발해온 그는 “그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은 그들이 처한 현실만 봐도 쉽게 드러난다”고 잘라 말했다. “가스·전기 끊기고 압류 딱지마저”

사진/ 다큐멘터리 <노동자다 아니다>를 제작한 김미례 감독. 그는 “레미콘 기사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은 그들이 처한 현실만 봐도 쉽게 드러난다”고 잘라 말했다.(한겨레 김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