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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광주, 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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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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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려보는 것은 ‘역사의 진실’과 그 위대한 힘 때문이다. 우리의 군대가 한 도시를 폐쇄하고 시민들에게 총질을 해댔다.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던 수많은 시민들이 총칼 앞에 쓰러져갔다.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해 우리는 부끄럽게도 '광주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군사정권에 무릎꿇은 언론이 “불순세력에 의해 폭동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라고만 보도했기 때문이다. 훗날 ‘광주의 진실’을 우리에게 처음 알려주기 시작한 것은 외신이었다. 당시의 광주 상황을 낱낱이 기록한 일부 외신의 르포기사와 사진, 영상자료가 아름아름 국내로 흘러들어오면서 마침내 ‘광주의 진실’은 햇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겨레21>이 전쟁 상황인 인도네시아 아체에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를 급파한 것은 그해의 ‘광주’가 그곳에서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의 '광주'처럼 외신만이 '아체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릴 수 있을 뿐이라는 참담한 상황이 <한겨레21>을 아체로 불러들였다. 바그다드에 북적댔던 수백명의 기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성조기와 첨단무기가 없을 뿐인데, 몇달 전 바그다드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광주’가 민주주의 수호를, ‘아체’가 자치독립 쟁취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는 다른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군의 무자비한 발포, 철저한 언론통제, 국제사회의 외면과 무관심은 너무나 닮았다.

외신이 아니었으면 ‘광주의 진실’은 꽤나 오랫동안 역사의 뒷편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그만큼 더디게 우리에게 다가왔을 게다. 많은 취재 제한에도 불구하고 아체에 간 기자는 그곳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왔다. 열흘 동안 모든 연락이 끊겨 애를 태우기도 했으나 ‘아체의 진실’을 일부나마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아체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광주’를 경험한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제사회의 무관심만 탓하는 것은 벌써 우리가 ‘광주’를 잊어가고 있음이다.

그런 점에서 나치의 유태인 학살 생존자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비젤 보스턴대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무관심 속에서는 빛과 어둠, 황혼과 여명, 죄와 벌, 잔인함과 애정, 선과 악 사이의 구분이 사라집니다. 무관심을 미덕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까 비참한 전쟁을 겪은 우리 주위의 세상처럼 단순히 건강을 지키려고, 평범하게 살려고, 좋은 음식과 술을 즐기려고 때때로 무관심해지는 것이 중요합니까?”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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