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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벨상과 맹목적 반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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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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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범박하게 말해서 그것은 한 사람, 또는 어떤 단체의 행동이 인간이 삶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할 하나의 전범으로 공인받았다는 의미일 터이다. 상은 상을 받는 사람이나 단체를 위해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수여되는 것이다. 상은 수상의 대상이 된 행동을 다른 행동들과 구별해 줌으로써, 사회 안에 정전의 권위를 가지는 ‘차별화된’ 예들을 축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사회적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집단적 이미지 조작

그러나 모든 상이 그러한 의미를 충족시키지는 않는다. 인간 행동은 늘 모호하며 불투명하다. 또 늘상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기도 한다. 한때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던 인간 행동은 사회적 맥락이 바뀌면, 의미없는 행동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상을 받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의미화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상의 존재보다는 상의 해석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 해석은 각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해석이 정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입장은 소수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싸고 무수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역사적 쾌거’라고 흥분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가능한 한 그 의미를 깎아내리기 위해 고심한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수상 소식에 때맞춰 인터넷 토론 사이트들에 올라온 두 가지의 전혀 상반된 반응들을 접하면서, 나는 무엇인가 이 상을 둘러싸고 한국사회의 아주 특수한 맥락이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노벨평화상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분명하다.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동안 독재정권과 싸우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공헌했고, 많은 탄압을 겪으면서도 남북화해를 가시적 성과물로 구현해냈고, 그것이 세계의 평화 정착에 공헌한 바가 크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반대편의 논리 중에서 한 가지 논리는 매우 보편적인 관점에서 노벨상의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대자들은 이런 입장에서 노벨상 수상을 못마땅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논리적 수준이 아니라, 감정적인 수준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있다. 그들의 주장 중에는 김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남북화해를 억지로 추진했으며, 노벨상를 받기 위해서 나라 안의 경제가 파탄이 나건 말건 북한에 돈을 퍼다주었다는 주장들도 있다. 그들은 김대중이 노벨상 심사위원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주장마저 하고 있다.

더욱더 특징적인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노벨상의 수상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견해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종종 원시적인 증오로 물들어 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은 이른바 우리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반DJ 정서가 어느 정도로 맹목적인가를 너무나 잘 알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른바 반DJ 정서에 침윤되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그러한 견해를 확립한 것일까? 아니면 어떤 집단적 이미지 조작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그들은 이처럼 대통령을 형편없는 모사꾼으로 깎아내려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환경을 한국사회에 정착시키는 데 공헌했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세계가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내심 존경해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하에서 이런 말을 공적인 장소에서 발설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턱대고 증오하는 비극을 끝내자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은 아니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사실만 가지고 김대중 정권의 모든 잘못을 덮으려는 시도가 있다면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축하할 것은 축하하면서 비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인이 모처럼 받게 된 귀한 상의 의미를 스스로 깎아내리려고 애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이 작은 나라 안에서마저 지역으로 갈려 화해하지 못하고 원시적인 지역정서로 ‘내가 아닌 다른 자’를 무턱대고 증오하는 비극을 우리는 언제나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김정란/ 시인·상지대 교수

rannie@ranni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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