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1년 때부터 혼자서 비행기 탄 최상민씨
“미국은 정말 거기에 있는 걸까?”
재수생 최상민(20)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지난 2000년 12월 혼자서 비행기를 탔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바다 건너에 미국이 있다고 나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력이 그의 여행을 부추긴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고향인 경북 영양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그가 조바심을 낸 것은 ‘고2가 되면 미국 여행도 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친구들이 학원을 찾는 동안 혼자서 비자를 신청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항공료를 포함해 여행에 필요한 경비는 모두 250만원. 끝없이 이어진 설득과 호소에 마침내 두손을 든 부모님은 “그저 무사히 돌아와만 달라”며 어렵사리 여행비용을 보내왔다.
2000년 12월28일 10시간 남짓 비행기를 탄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그는 충격에 빠졌다.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풍경이 사뭇 달랐어요. 상상 속의 도시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죠.” 그는 공항 주변에서 꼼짝도 않고 서너 시간을 보낸 뒤에야 겨우 마음의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허름한 도심의 7달러짜리 ‘이상한’ 모텔에서 첫날 밤을 보낸 그는, 이튿날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그저 날씨가 좋아’ 미국 서부를 찾아온 유럽의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루이틀이 지나면서 마음에 여유도 생겼고,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이름 들어본 도시는 다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았던 로스앤젤레스의 허름한 숙소에서 만난 이탈리아 ‘건달 형’들은 돈 없이도 여행하는 법의 진수를 가르쳐줬다. 비결은 간단했다.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었다. 낯선 만남이 진한 우정으로 바뀌는 경험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거리의 자원봉사자에서 주차보조원,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이들까지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어디를 가면 뭐가 좋다는 등의 정보를 꿰고 있었어요. 인생 자체를 즐기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서구 사회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었죠.” 햇살이 따가운 라스베거스를 출발해 사막지대를 지나, 숲이 보인 것도 잠시, 눈 쌓인 시카고에 도착하기까지 2박3일 동안 기차여행을 하면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만치만은 않구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시카고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다가온 현지인이 “시어스타워를 구경시켜주겠다”고 말해 따라나섰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지니고 있던 현금을 모두 털리고 50달러짜리 여행자 수표 2장만 달랑 남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보스턴을 거쳐 뉴욕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미리 끊어놓긴 했지만, 당장 숙박비와 식비가 문제였다. 기차역 부근에서 떨며 밤을 지샌 그는 이튿날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보스턴행 기차에 올랐다. 보스턴에 도착해 숙박비 4일치를 내고 나니, 18달러가 남았다. 그것도 동네 슈퍼마켓에서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빵과 햄을 사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불과 8달러였다. 그러나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어디나 친구가 있다’는 교훈을 이미 터득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와 함께 나흘 내내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차를 타고 지나치면 볼 수 없었을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연히 초대받은 바베큐 파티에서 만난 미국 여고생은 한국에서 들었던 것과 달리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면서 명문대 입시 준비에 매달리고 있기도 했다. 단돈 8달러를 손에 쥐고 도착한 뉴욕에서도 ‘행운’은 이어졌다. 막막한 마음에 기차역 의자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학생의 도움으로 숙박비와 식비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날에는 사촌동생 선물을 사기 위해 가방 밑 깊숙히 감춰뒀던 10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끼에 60달러 하는 식사를 즐기는 여유까지 부렸다. “돌아온 뒤 한동안 여행 후유증이 심했어요. 거의 일상생활이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개학을 하니 달라졌어요. 다시 교복을 깨끗하게 다려입고 학교에 가는 것도 새로운 느낌이더라구요.” 이듬해 겨울에도 그는 태국으로 1주일 남짓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재수생이 된 지금 혹시 여행갔다 온 것을 후회하진 않을까?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사이 삶을 즐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천만에 말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학원에 다니는 것도 재미있어요. 여행이 새로운 현실과 꿈에 적응해 가는 과정인 것처럼, 삶도 마찬가지잖아요.” 밝게 웃던 그가 보탠 한마디. “곧 방학인데…. 여행가는 거 겁내지 마세요. 외국에도 우리와 똑같은 친구들이 살고 있어요.”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최상민(이용호 기자)
물론 위기도 있었다. 시카고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다가온 현지인이 “시어스타워를 구경시켜주겠다”고 말해 따라나섰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지니고 있던 현금을 모두 털리고 50달러짜리 여행자 수표 2장만 달랑 남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보스턴을 거쳐 뉴욕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미리 끊어놓긴 했지만, 당장 숙박비와 식비가 문제였다. 기차역 부근에서 떨며 밤을 지샌 그는 이튿날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보스턴행 기차에 올랐다. 보스턴에 도착해 숙박비 4일치를 내고 나니, 18달러가 남았다. 그것도 동네 슈퍼마켓에서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빵과 햄을 사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불과 8달러였다. 그러나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어디나 친구가 있다’는 교훈을 이미 터득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와 함께 나흘 내내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차를 타고 지나치면 볼 수 없었을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연히 초대받은 바베큐 파티에서 만난 미국 여고생은 한국에서 들었던 것과 달리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면서 명문대 입시 준비에 매달리고 있기도 했다. 단돈 8달러를 손에 쥐고 도착한 뉴욕에서도 ‘행운’은 이어졌다. 막막한 마음에 기차역 의자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학생의 도움으로 숙박비와 식비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날에는 사촌동생 선물을 사기 위해 가방 밑 깊숙히 감춰뒀던 10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끼에 60달러 하는 식사를 즐기는 여유까지 부렸다. “돌아온 뒤 한동안 여행 후유증이 심했어요. 거의 일상생활이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개학을 하니 달라졌어요. 다시 교복을 깨끗하게 다려입고 학교에 가는 것도 새로운 느낌이더라구요.” 이듬해 겨울에도 그는 태국으로 1주일 남짓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재수생이 된 지금 혹시 여행갔다 온 것을 후회하진 않을까?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사이 삶을 즐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천만에 말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학원에 다니는 것도 재미있어요. 여행이 새로운 현실과 꿈에 적응해 가는 과정인 것처럼, 삶도 마찬가지잖아요.” 밝게 웃던 그가 보탠 한마디. “곧 방학인데…. 여행가는 거 겁내지 마세요. 외국에도 우리와 똑같은 친구들이 살고 있어요.”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