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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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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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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협소한 인식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자살을 예방 가능한 의학적 상태’로 보고 범사회적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뿌리내리는 데는 오히려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장호균/ 신경정신과 전문의

지난달 일간지 자살 보도 제목들이다.

‘공사 대금 못 받자 건축업자 자살’, ‘카드빚 고민 주부 자살’, ‘인터넷 이용료 꾸중 듣고 초등생 자살’, ‘50대 미결수 구치소서 자살’, ‘육군 사병 구타 적발 고민, 총기 자살 추정’, ‘경영난 비관 병원장 자살’, ‘70대 할머니 지하철 투신 자살’, ‘고시 낙방 비관 자살’, ‘유명 포털사 감사 회계사 자살’….

자살 책임이 사회에 있다?


제목만 열거해도 자살이 우리 사회에 열병처럼 번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알려지지 않은 자살, 사고사로 처리된 자살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자살률은 공식 자살률 통계 10만명당 8.5명을 훨씬 웃돌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이미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의 높은 자살률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의사로서 자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자칫 고인이나 유족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염려가 그것이다.

보성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에서 그런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강사 자살의 경우 시간 강사의 처우가 사회적 문제로 환기된 계기가 되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실제 자살 동기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유족의 견해는 언론 보도에 의해 일반에 알려진 자살 동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자살의 주요 원인을 사회적 측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식이나 언론 보도와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자살 연구의 효시가 된 <자살론>의 저자 에밀 뒤르케임이 개인이 사회집단과의 결속에서 끊겨나온 결과 생기는 사회심리적 고립 현상을 ‘아노미’(anomie)라 하고, ‘아노미’가 현대사회에서의 자살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자살이 경제불황 때 증가한다는 보고 외에 실증적인 여러 연구에서 ‘자살의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자살의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협소한 인식이 정부의 정책, 사회제도나 사회집단의 문제를 비판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자살을 예방 가능한 의학적 상태’로 보고 적극적인 범사회적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뿌리내리는 데는 오히려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자살을 예방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비교적 안정된 서구사회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민생안정, 사회갈등 해소, 사회구조 개혁, 사회안전망 구축 등의 사회정책이 저절로 자살률을 낮추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자살의 책임을 사회로 돌리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그리 타당할 것 같지 않다. 앞으로 경기침체, 사회적 변화와 갈등, 가정붕괴, 경쟁심화 등 여러 요인으로 사회심리적 고립을 경험하는 개인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이 자살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별도의 ‘자살예방대책’ 필요하다

자살을 그 자체로 보고 사회정책과는 독립된 별도의 ‘자살예방대책’과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자살에 대한 사회 저변의 인식을 높이고 스스로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실제 신경정신과 치료를 안 받는 ‘보통 사람’이 정신질환으로 치료받는 경우보다 더 많이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에 대한 의사 표시를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서 하는 말이겠지’ 정도로 가볍게 보고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자살하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구조 요청’(cry for help)을 한다고 한다. 다만, 그러한 구조 요청에 우리가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자살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대책은 자살의 위험성을 지닌 개인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정신의학 관점에서도 뒤르케임의 이론은 재평가할 여지가 남아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살의 책임’이 사회에 있다기보다는 ‘자살을 예방할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장호균 |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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