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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시아의 10대들과 소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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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2 00:00 수정 : 2008-11-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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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네트워크 프로젝트’에 참가해 아시아 곳곳의 향기를 맡고 온 10대 청소년 배낭족들

6월22일 낮 1시. ‘감전(感傳) 아시아 파티’가 열린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선 현관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냄새의 진원지를 따라가보니, 1층 스낵바 부엌에서 10대 10여명이 종종거리며 음식 준비에 분주했다. 엔씨소프트와 하자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한 ‘글로벌 네트워크 프로젝트’에 참가한 팀원들이 여행지에서 맛본 각양각색의 아시아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스팔트도 녹여버릴 것 같은 인도네시아의 찜통더위를 잠시 식혀주었던 파인애플 음료, 일본에서 맛보았던 색색깔의 점심 도시락과 아기자기한 주먹밥 오니기리, 방콕의 카오산 거리에서 먹었던 쌀국수 꿰떼우와 파파야샐러드 쏨땀 등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10대들. 그들은 아시아 특유의 강한 양념 냄새와 함께 지난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진/ “감성으로 소통하라.” 타이 어린이 마을 공동체를 다녀온 ‘글로벌 개더링 무반덱 프로젝트’팀. 왼쪽부터 유한나(17)·이정원(22)·김태준(16)·정효현(18).(김진수 기자)

배낭여행, 이젠 대학생 전유물 아냐

1990년대 초·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해외여행 열풍은 사실상 대학생의 전유물이었다. 어학연수나 배낭여행 경험이 취업을 위한 필수 경력사항이 될 정도였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계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세계’는 유럽과 북미에 머무른 경우였다. 이날 만난 10대 7개팀 20여명은 다른 선택을 했다. 자신의 관심분야에 걸맞은 주제를 정해 스스로 기획서를 써내 여행자금까지 지원받은 이들이 누비고 다닌 곳은 아시아였다. 자신들과 같은 문화를 즐기는 또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세상을 여행하고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여행하고 왔다.” 한껏 솜씨를 부려놓은 요리접시에 젓가락을 대기 전, 사진과 글·그림 등 여행을 기록한 전시물이 사방에 붙어 있는 홀에서 만난 10대들은 “한국에 있으면 나만 유별난 것 같고, 혼자 뚝 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저 멀리 바다 건너에도 친구가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앞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친구들이 아시아 곳곳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1~3월에 타이의 어린이 마을 공동체를 다녀온 ‘글로벌 개더링 무반덱 프로젝트팀’. 이들은 하자센터 1층 전시장 한쪽 벽면에 현지에서 그렸던 벽화 <반토판의 붉은 꽃>을 재현했다. 타이의 칸차나부리에 있는 무반덱에는 타이와 버마 등지에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과 각국에서 온 선생 등 200명이 함께 살고 있다. 이미 2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생활 공동체다. 또 무반덱에서 갈라져나온 반토판은 ‘꿈을 직조하는 집’이란 뜻으로 1988년부터 가족 단위의 공동체를 꾸려 살고 있단다.


반토판과 무반덱에 머물며 참가자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타이·일본·러시아 등 3개국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손짓발짓으로라도 교감하고자 노력했다. 의사소통이 꼭 언어를 통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전체가 큰 정원과도 같은 반토판에선 일본에서 온 오키나와 밴드의 기타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마음이 환해지는 평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태준(17)군은 “말이 아닌 몸짓이나 음악, 벽화 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감성적 소통을 통해 서로를 더 쉽게 알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갖가지 실험으로 디자인 감성 키우기도

사진/ 디자이너를 꿈꾸는 조동혁(19)군. 타이에서 진행하는 ‘당신의 한국 이름을 만들어 보세요’라는 프로젝트를 직접 디자인했다.(김진수 기자)
3~4월에 역시 타이를 다녀온 ‘꼬 하자’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10대들로 꾸려진 팀이다. 자신들의 관심분야에 집중한 이들은 방콕의 ‘짜뚜짝 주말시장’ 등을 돌며 작가들의 재치가 번득이는 벼룩시장 아트를 구경하고 돌아왔단다. 팀을 기획한 조동혁(19)군은 ‘당신의 한국 이름을 만들어 보세요’(Make your Korean name)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각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그는 출발에 앞서 직접 한글 활자를 디자인한 배지를 만들어갔다. 현지에서 낯선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한글 표기대로 활자로 늘어놓고 사진을 찍은 뒤, 돌아와선 이를 전자우편으로 모두에게 보내줬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기획한 것은 ‘나의 시장 만들기’였다. 시장에서는 물건과 돈만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정보와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내 ‘디자인’과 ‘시장’을 연결해보고 싶었다.” 그는 요즘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느라 또래들을 끌어모으는데 열심이다.

지난 2월 열흘 동안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간디학교’ 아이들은 그곳 간디국제학교 아이들과 우정을 나눴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길거리 가수들과 만나 즉석 거리 콘서트를 펼쳤다. 기타연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두 나라의 노래를 나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코드를 잡고, 노래를 불러젖히다 보면 주변에 이방인이라곤 없는 듯했다. 음악이 인류 공통의 언어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좀더 구체적인 경험을 하고 돌아온 친구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4월에 2주 동안 도쿄에서 열린 젊은 디자이너들의 패션축제 ‘디자인 페스타’에 다녀온 디자인119팀이 그들이다. 이들은 행사장 한켠에 자신들의 작품만으로 부스를 차려놓고 현지인의 반응을 살폈다. 또 수백명의 예비 디자이너들이 배우는 동경복장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좌절하기도 했단다. 팀원 장정아(17)양은 “처음엔 너무나 현란한 색깔이 넘쳐나는 도쿄의 거리와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고 주눅들기도 했으나 나중엔 너무나 많은 색깔을 보아서 그걸 소화하는 게 힘에 겨웠다”고 털어놨다.

세계를 봐야 ‘자기 우물’을 잘 판다

사진/ 방학을 맞은 젊은 배낭족들이 인천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이용호 기자)
우리나라에서 10대를 통칭하는 말은 ‘학생’이다. 당연히 10대가 가는 여행은 학습을 위한 수학여행이나 어학연수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그제야 서구인이 써놓은 여행책자를 손에 들고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도는 것이 정해진 코스다. 지난해부터 ‘쥬니어 배낭여행’ 상품을 내놓은 여행업체 하나로항공의 김종하 차장은 “최근 청소년 어학연수와 해외여행이 부쩍 늘고 있다. 연수도 그렇지만 특히 여행은 부모와 동반해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입시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고등학교 1학년을 넘긴 청소년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외국의 친구를 만나면서 10대들은 자기만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지 않다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자기만 부모님의 과잉기대 속에 억눌려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하자센터장 조혜정 교수(연세대)는 “글로벌한 세상이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나가서 그곳의 음식을 맛보고 패션을 경험하고 문화를 접하면서 구체적으로 글로벌 월드에 놓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더욱 더 열심히 ‘자기 우물’을 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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