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한인사회의 ‘해결사’
등록 : 2003-06-25 00:00 수정 :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누구나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지만, 그때를 예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는 이뿐 아니라 남은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갖는 황망함과 애통한 마음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더구나 낯선 타국땅, 언어도 풍습도 장례 절차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혈육 하나가 홀연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그 황망함은 몇 곱절의 회한이 되어 남은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때 어느 누가 있어 망자의 마지막 길을 축원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차분하게 어루만져주랴.
“지난 94년에 우연히 한국인 사망자 장례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장례 과정이 한국인 정서에 전혀 맞지 않을뿐더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유가족들에게 여러 가지로 고통만 안겨주더군요. 그래서 누군가 이런 일에 나서서 유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로부터 도울 방법을 찾다보니 그 누군가가 어느새 바로 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28명의 장례를 치러줬다는
변상순(59·호치민한인회 부회장 겸 경조위원장)씨는 태권도 8단의 무술유단자로 본업이 호치민시 공안청 무술교관이다.
그는 1993년 베트남 공안부의 정식초청을 받아 베트남에 왔다. 유가족을 제대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건너가 ‘염하는 법’까지 배우고 온 그가 베트남 한인사회의 훈훈한 귀감이 되는 건 단지 장례 봉사 때문만이 아니다. 한달에 두세번 베트남 오지의 고아원에 생필품과 학용품을 실어나르고, 고엽제 피해자를 위해 목욕 봉사를 하고, 때로는 ‘보안관’이 되어 한인사회를 흐리는 사기꾼들의 행태를 바로잡아주고, 또 때로는 ‘해결사’가 되어 술 먹고 시비에 휘말려 경찰서에 갇힌 한인들 빼내주는 등 ‘민간 대사’ 역할을 10년간 듬직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군에게 상처받은 영혼이 있다면 그것을 위무해주는 것, 한인들이 외국에 나와서도 따뜻한 동족애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리고 이런 따사로운 마음을 모두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그의 소박하고도 원대한 바람이다.
호치민= 글·사진
하재홍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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