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후진국의 손님맞이

331
등록 : 2000-10-24 00:00 수정 :

크게 작게

잔치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제3차 아셈 정상회의는 ‘한국 외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자평과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세계 25개국 정상들도 각자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고, 흥겹고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도 파장입니다. 승용차 2부제 운행으로 한때 한적하던 서울의 거리는 다시 심한 교통체증의 일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2개국 이상의 외국정상이 한꺼번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88올림픽에 못지않게 ‘전 국민의 일치단결’을 과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잔치가 끝나고 나면 뭔가 허탈한 심정이 들게 마련인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한번 뒤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우리 정부는 아직도 원천봉쇄의 유혹에 함몰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큰 국제회의 취재를 가서 느낀 것은 이른바 후진국으로 갈수록 원천봉쇄형 사고가 팽배하고, 선진국일수록 국제회의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는 점입니다. 지난 97년 제2차 아셈 정상회의가 열린 타이 방콕의 경우, 여기저기 도로를 막아 놓은 것은 물론이고, 풍기문란쇼를 상영하는 업소는 회의가 열리는 동안에는 아예 폐쇄조처를 해버렸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95년 아펙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오사카도 그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회의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이중삼중으로 차단하고, ‘소프 란도’(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문제가 됐던 증기탕을 뜻합니다) 등 ‘문제업소’는 모조리 문을 닫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손님으로 간 입장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이 나라는 도심 교통도 매우 원활하고 풍기문란 업소도 없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직도 사회통제가 강한 후진국이구나’ 하는 경멸감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사카 당국의 철저한 통제를 보고는 ‘일본 너희들도 별 수 없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습니다.(한 일본 기자는 “도쿄에서 열렸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오사카만 해도 촌이라 그렇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아셈을 앞두고 우리도 밤새 도로포장을 새로 하고, 노점상도 대대적으로 청소했습니다. 강남구만 해도 8월 말 1200개소에 이르던 노점상들이 현재는 200∼300개로 줄어들었다는 게 서울시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외국손님들에 대한 선심공세도 대단했습니다.

손님을 맞을 때면 집안을 쓸고 닦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오랜 미덕이기도 하고, 며칠쯤 승용차를 가지고 못 나온다고 투덜댈 만큼 우리 국민이 이기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국제행사가 열려도 일반국민들은 태평스럽게 지나가도 될 만큼 세련미를 갖출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외국인들이 노점상에 들러 우리네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그들에게는 이국적 풍취를 만끽해보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아셈에 참가한 한 외국 수행원이 승용차 2부제 실시에 대한 서울시 공무원의 자랑을 듣고 “그렇게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도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표를 주느냐”고 의아해했다는 이야기도 귀담아들을 대목입니다.

오는 2002년이면 월드컵이 열립니다. 그때도 또다시 ‘과공은 비례’라는 말이 나올까요?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