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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주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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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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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국민의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얼마 전 사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척 말을 아꼈다. 김 대통령이 꼭 한번 감정을 드러낸 것은 ‘옷 로비’ 의혹이 불거졌을 때이다. ‘언론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결국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고 전하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방문 전날인 6월5일 저녁 자신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가 땅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데 대한 소회를 청와대 홈페이지에 편지형식으로 띄웠다. 주변 인물들과 관련한 의혹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언론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는 않다.

1999년 5월 ‘옷 로비’ 사건을 최초 보도한 <한겨레> 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서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옷 로비’와 ‘땅투기 의혹’ 사건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걱정과 우려, 불길한 예감이 교차하는 것은 왜일까.

두 사건은 우선 별일 아닌 것 같던 사건이 시간이 갈수록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닮았다. 관련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수시로 뒤바뀌면서 의혹을 키우고 있는 점에서도 똑같다. 그들의 잠적과 기자회견 자청도 단골메뉴다. ‘실패한 로비’라며 법무장관 부인 감싸기에 급급했던 검찰 수사와, ‘야당 도지사와 시장 때문에 용도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청와대의 조사 결과도 그렇다. 김 전 대통령이 ‘마녀사냥’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나, 노 대통령이 ‘언론이 대통령을 굴복시키려 한다’며 불만을 표시한 것도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백하건대 ‘국민의 정부’와 옷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당시 옷 사건 취재는 첫 정권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에 도덕성을 일깨우려는 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검찰 수사와 국회 청문회, 특검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정부’는 1년여 동안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정부의 권위는 실종됐고, 밀레니엄 시대의 희망도 옷 사건에 묻혀버렸다. 당사자들의 거짓말과 검찰의 축소수사가 빚어낸 ‘참화’였다. 그들이 뉘우침과 사과, 책임지려는 모습만 보여주었으면 1주일 만에 끝날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생수회사, 친형과 측근 부동산 등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옷 사건에서 보듯 어쩌면 북한 핵문제 해결, 경제 살리기, 원칙이 통하는 사회 만들기보다 ‘주변 정리’가 더 시급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4년 전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옷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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