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틴하드웨어 탈레이사가르 원정대, 사랑하는 이들을 삼킨 ‘악마의 붉은 성벽’을 넘는다
100m 남았다. 정상이 보인다. 한국인 등반대원 3명은 마지막 설벽에 발을 내딛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안개가 덮치기 시작했다. 1시간30분 뒤 안개가 걷혔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로프로 연결돼 있던 3명은 다음날 등반지점에서 1400m 아래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 1998년 9월30일이었다. 수십 군데가 골절된 그들의 주검은 일주일 뒤 머나먼 땅 인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화장됐다.
세계에서 단 한팀만이 뚫은 봉우리
한국산악인들의 히말라야 도전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이 장면은 탈레이사가르봉(THALAY SAGAR·해발 6904m) 북벽 등반 실패기다. 인도 북부 가르왈 히말라야 산맥의 강고트리 산군에 위치한 탈레이사가르봉은 ‘악마의 붉은 성벽’이라는 별명만큼이나 악명이 높다. 국제 산악계는 이 산에 대한 정상 등정성공률을 통상 10% 안팎으로 보고 있다. 등반의 난이도와 어려움은 지구상에 단 14개밖에 없는 8천m급 산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당시 원정대가 선택했던 북벽은 직각에 가깝게 깎아지른 절벽으로, 전 세계적으로 단 한팀(1991년 헝가리팀)만이 이 길을 뚫은 바 있다. 울산대팀이 지난 2000년 한국 산악계로는 처음으로 8전9기 만에 탈레이사가르 정상에 올랐지만, 이 역시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알려진 북서릉을 통한 등반이었다.
오는 8월11일 다시 한번 난공불락의 북벽을 뚫으러 인도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 ‘마운틴하드웨어 탈레이사가르 원정대’가 바로 그들이다. 이번 원정등반은 당시 사고로 세상과 결별한 고 신상만(사망당시 32), 최승철(〃28), 김형진(〃25)씨가 못다한 숙제를 해결해 한국 산악계의 과제인 히말라야 거벽등반의 지평을 열자는 게 1차적 목적이다.
아울러 이번 등반대에는 당시 숨진 3인 대원의 미망인과 친형, 동료와 선후배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당시 대원들의 유품을 찾는 등 먼저 간 이들의 원혼을 달래려는 목적도 있는 셈이다.
원정대 홍일점인 김점숙(36)씨는 고 최승철씨의 미망인이다. 90년대 중반 국내 제일의 암벽등반가이기도 했던 김씨는 의정부에서 ‘샤모니’라는 실내인공암벽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산으로 영원히 보낸 뒤, 그 슬픔을 말 없이 홀로 가슴에 묻은 채 다시 그 산으로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6월 초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등반 훈련 중에 만난 김씨는 의외로 담담했다. 자신보다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 하나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고 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우리 하나는 엄마나 아빠를 닮지 않았는지 담력이 약한 것 같아요. 앞으로 산에 갈지는 미지수이지만, 아빠와 엄마가 산에서 추구했던 열정과 마음은 이해할 수 있겠죠.”
김씨는 남편을 탈레이사가르로 보낸 이후 암벽센터를 어렵게 운영해왔다. 친지들의 도움과 이런저런 생계대책이 없었다면 생활하기 곤란할 정도였다. 그러나 산에 대한 열정만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98년 남편 최씨는 정상등반 직전 엉뚱하게 엽서 한장을 보내왔다. 탈레이사가르 아래 인도의 성지 강고트리에서 일생 동안 고행 속에 깨달음을 찾는 수행자들을 보며 느낀 바를 정리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김씨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구절은 “산행도 하나의 수행”이라는 부분이었다.
엄지발가락을 자르고 산을 오르던…
형제의 비원을 달래기 위한 대원도 있다. 김형철(36)씨는 고 김형진씨의 친형이다. 그는 이번 원정을 준비하면서 다니던 직장도 접었다. 98년 동생을 하얀산에 보내기 전부터 함께 산을 다녔던 산악인 형제였다. 한때는 산에 대한 마음이 힘겹고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동생의 원혼과 더불어 새로운 투지로 이번 원정에 참여하고 있다.
원정대장인 이상조(52)씨 역시 이번 등반은 의미가 다르다. 전북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인 이씨에게는 산악동지였던 두 후배를 먼저 보낸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이념적·정치적 결사를 한 선·후배 이상의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 히말라야의 극한을 함께한 선·후배 관계라고 한다.
특히 이씨와 고 최승철, 김형진씨는 97년 파키스탄 발토르 빙하지대의 험봉인 트랑고타워에 ‘코리안환타지’라는 직등루트를 처음으로 뚫은 장본인들이었다. 히말라야 거벽의 직등루트에 한국인 최초로 초등루트를 낸 것이다. 이씨는 당시 원정대장이었다. 히말라야의 등반 역사에서 ‘코리아’라는 뚜렷한 흔적을 확실히 세웠던 동료이자 선·후배였기에 먼저 보낸 후배들에 대한 회한은 더욱 남다른 것인지 모른다. 트랑고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연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소개될 정도로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험산준봉이다.
선배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원정대에 참가한 이도 있다. 모상현(30·천안대)씨는 고 신상만씨와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8천m 난제인 낭가파르밧을 97년 함께 올랐다. 고 신상만씨는 국내에서는 기술적으로 불모지였던 ‘혼합등반의 달인’이었다.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을 함께 구사하는, 극히 까다롭고 위험한 등반형태인 혼합등반은 히말라야 거벽등반에서는 필수적으로 구사해야만 하는 등반스타일이었다.
신씨는 90년대 중반부터 겨울이면 홀로 설악산의 미답봉을 찾아 아무도 오르지 않던 루트를 고집스럽게 오르는, 고독한 개척자였다. 모씨는 여기에 기꺼이 동참했다. 산악인의 길을 걷다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 모씨는 고등학생 시절 국내 랭킹 1위의 암벽등반가였다. 모씨는 신씨와 함께했던 그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상만이 형은 97년 낭가파르밧을 오를 때 이미 양쪽 엄지발가락을 모두 자른 상태라 고도를 높일수록 발가락이 남들보다 훨씬 시려운 상태였다(신씨는 95년 가셔브럼 4봉을 오르다 악전고투 끝에 동상으로 발가락을 잘랐음).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국내에서 여러번 했다. 낭가파르밧 정상 바로 아래인 8천m를 넘어서 상만이형의 등산화를 벗겨서 내 겨드랑이에 끼여서 녹였다. 8천m 이상에서 등산화를 벗은 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발목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양쪽 엄지발가락을 잘라낸 상태였다.
상업성 배제한 차분한 준비
가슴 아픈 사연의 대원은 한 사람 더 있다. 98년 원정대원이기도 했던 장기헌(34)씨다.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심정을 혼자 고스란히 감내했던 장본인이었다. 먼저 간 세 사람과 함께 원정에 나섰다가 살아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적인 고통이 심했다. 그러나 다시금 탈레이사가르로 향하는 험난한 등반의 열정은 아픔을 아물게 하고 있다. 충남 천안의 한 철강회사에 다니는 그는 직장생활 때문에 원정 전까지 주로 주말을 이용해 훈련을 하고 있다.
2003년 원정대는 매스컴을 타는 여타의 대규모 원정대와는 달리 의외로 담담하다. 훈련도 평소 개인 훈련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원정에 들어가는 경비도 뜻있는 한 장비업체의 지원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대기업을 통한 스폰서나 국고 보조가 아닌 형태로 꾸린 셈이다. 상업적으로만 치닫는 국내 산악풍토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마치 평범한 직장인들이 여름휴가 때 설악산이나 지리산 종주를 하듯이 그렇게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98년 등반팀이 대규모 협찬과 정부지원금을 멀리하고 소요경비를 대부분 자비로 충당하며 ‘소박하지만 위대한’ 등반을 차분히 준비한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등반대원 각자의 내면 세계도 심연의 차가운 물처럼 정제돼 있다. 상처와 아픈 기억을 넘어 무한의 세계, 무상의 세계를 향해 자신들을 내던지는 구도자의 모습이 엿보인다고 할까.
흔히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 특히 진정한 ‘알피니즘’(눈과 얼음이 있는 고산을 오르는 행위와 정신)의 핵심은 정상에 올랐다는 ‘결과’라기보다는 오르는 ‘과정’이라는 게 산악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먼저 간 세 산악인도 그렇고, 이번의 원정대원들도 여기에 기꺼이 동의하고 이 정신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이다. 비록 산에서 추구했던 길이지만, 성과주의와 결과주의에 매몰된 세속의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이들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진/ 인도 북부 가르왈 히말라야 산맥의 강고트리 산군에 위치한 탈레이사가르봉은 ‘악마의 붉은 성벽’이라는 별명만큼이나 악명이 높다. 국제 산악계는 이 산에 대한 정상 등정성공률을 통상 10% 안팎으로 보고 있다.(손재식)
아울러 이번 등반대에는 당시 숨진 3인 대원의 미망인과 친형, 동료와 선후배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당시 대원들의 유품을 찾는 등 먼저 간 이들의 원혼을 달래려는 목적도 있는 셈이다.

사진/ 암벽훈련을 하는 김형철씨는 고 김형진씨의 친형이다(맨위). 북한산 인수봉에서 원정훈련 중인 김점숙씨. 고 최승철씨의 미망인이다.(서재철)

사진/ 북한산에 모인 마운틴하드웨어 탈레이사가르 원정대원들. 왼쪽부터 김점숙, 모상현, 이상조(원정대장), 손중호(단장), 변성호(등반대장), 김형철씨.(서재철)
![]() 사진/ 1998년 9월 텔레이사가르봉 등반에 나섰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 왼쪽부터 고 신상만, 김형진, 최승철씨. |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