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날벼락처럼 찾아오는 공황장애, 정신과 환자의 30∼40% 차지
‘쾅쾅쾅!’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헉헉헉….’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맥이 탁 풀리며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등줄기를 타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축축이 젖었다. ‘내가 왜 이러지… 혹시 심장이 터지는 건 아닐까….’ 고통보다 더 큰 공포가 엄습했다.
벌써 나흘째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끔찍한 고통의 시간’은 최현규(29·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직원)씨에게 오늘도 예외없이 찾아왔다. 99년 1월, 최씨는 전경련 국제본부 경제협력팀 소속으로 유럽 3개국 대상 한국경제설명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 행사준비 기간은 2∼3개월 정도. 하지만 이번에는 3주로 몹시 짧았다.
‘공상처리’ 요구, 최현규의 싸움
1월22일 새벽 1시, 집으로 돌아왔다. 몹시 힘들었다. ‘자고 나면 좀 낫겠지…’ 생각하고 수면제를 몇알 털어넣고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오히려 점점 호흡이 힘들어졌고, 심장은 거세게 뛰었다. ‘이대로 혼자 죽을 순 없다….’ 휴대폰을 찾아 들고 119를 눌렀다. “살려주세요…. 여기는 영등포구 여의도….” 새벽 4시, 최씨는 결국 강북대성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혈액, 심전도 등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일단 퇴원했다. 다음날 “도저히 해외출장은 어렵다”고 상사에게 호소했다. 다행히 해외출장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다. 한번 엉클어진 건강은 쉽게 추스려지지 않았다. 격렬한 심장박동과 호흡곤란, 어지럼증은 계속 이어졌다. 최씨는 “그때는 안경이 들썩거릴 정도로 온몸에서 심하게 맥박이 뛰었다”고 돌이켰다. 아무래도 심장병 같았다. 성모병원,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 유명하다는 심장내과 전문의는 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최씨가 ‘공황장애’라는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두 번째 병가를 위해 진단서를 떼면서였다. 대구의 한 개인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에는 ‘공황장애’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쓸데없이 허비한 지난 6개월을 생각하니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그동안 최씨의 몸도 마음도 모두 피폐해져 있었다. 헤매다니는 동안 휴직이 이어졌다. 99년 2월 1주일 동안 병가, 잠시 복직했으나 3월부터 3개월 휴직, 다시 6월부터 6개월 휴직…. 휴직이 거듭될수록 건강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되어갔다. 그래도 차마 ‘공상’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빨리 나아 다시 복직하고 싶었다”는 게 최씨의 심정이었다. 결국 올 2월23일, 회사쪽으로부터 “복직시한을 넘겨 퇴직 처리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때부터 “공상처리”를 요구하는 최씨 가족과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회사쪽의 대립이 시작됐다. 결국 싸움은 법정으로 번졌다. 지난 6월27일 최현규씨가 전경련을 상대로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공상처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사 휴직 규정까지 바꿔가며 최대한 배려를 했다”면서 “최씨가 원래 몸이 약해서 그런 것이지 과로 탓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심해지면 ‘광장공포증’으로 발전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황장애에 대한 판례는 전무하다. 그래서 최씨의 소송은 최초의 ‘공황장애 공상인정 판례’가 되는 셈이다. 어느 날 날벼락처럼 찾아온 공황장애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최현규씨. 한때 “수박 한통도 못 들 만큼” 일상이 힘겨웠지만 올 2월부터 건강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떳떳하게 전경련에 복직해서 내 발로 나오고 싶다”는 게 그의 유일한 바람이다. 공황장애는 어떤 병일까. 특별한 위험이나 자극,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신체가 극심한 불안반응을 나타내는 게 공황장애다. 뇌의 경보기능을 담당하는 청반핵이 너무 예민해져서 생긴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최영희 교수는 자극과 반응으로 공황장애를 설명한다. “인체는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그걸 이기는 대처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래서 정상상태가 유지되는 거죠. 하지만 특정 시기에 스트레스가 너무 크거나 대처능력이 저하되면 자극과 반응 사이의 균형이 깨져 공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증세는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식은땀이 나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심장이 마구 뛴다. 머리가 휑하고 어지러우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증상도 동반된다. 이렇게 되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곧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경험은 뇌리에 깊이 각인돼 어떤 계기로 회상을 할 때마다 즉시 불안감을 유발한다. 바로 이 ‘예기불안’이 문제다. 끔찍한 경험이 다시 올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신체는 신호를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반응하게 된다. 평소 다니던 길이 무서워지고, 특히 공황발작을 경험한 상황에 다시 부딪히면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예기불안은 회피행동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운전중에 공황발작을 경험했다면 운전을 회피하게 된다. 심해지면 버스나 지하철과 같이 사람이 밀집된 장소를 두려워하는 광장공포증으로 발전한다. 공황발생을 여러 장소, 여러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 공황장애는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행하는 진단분류체계에 처음 등장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2배 정도 발병확률이 높고, 20대와 30대 사이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평생 발병할 확률은 1.5∼3.5%.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약 80만∼150만명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다. 공황장애가 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지는 10여년밖에 안 되지만 요즘 정신과를 찾는 환자의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해졌다. 발병하자마자 치료를 하면 완치될 확률이 높지만, 최현규씨처럼 심장질환이나 호흡기질환 등으로 오인해 짧게는 몇달, 길게는 수십년을 헤맨 끝에 공황장애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이 많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완치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많이 발병
치료법은 전통적인 약물치료와 최근 등장한 인지치료가 있다. 약은 6∼12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고, 증상이 없어지더라도 2∼3개월에 걸쳐 서서히 끊어야 한다. 증상이 없어졌다고 약을 바로 중단하는 경우 재발확률이 매우 높다. 요즘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한다.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 처음 공황발작을 일으킬 때는 몹시 걱정하다가도 “이상이 없다”는 내과적 진단이 반복되면 점차 짜증을 내기 십상이다. 심지어 “꾀병”으로 오해받거나 “심약해서 생기는 병”으로 여긴다. 하지만 의외로 자기일에 적극적이거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공황장애가 많이 발병한다. 특히 밤샘작업을 많이 하거나 음주와 흡연을 즐길 경우 위험하다. 더구나 공황장애는 남에게 터놓고 말하기 힘든 점이 있다. 원인을 설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정신과 질환이라는 것이 부담이 된다. 한국통신에서 일하다 공황장애가 생긴 이아무개(33)씨는 “공황장애라고 말하기 어려워 위염으로 병가를 냈다”고 털어놓았다.
주변의 배려로 공황장애를 이겨낸 사람도 있다.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38)씨가 그런 경우다. 외환관리를 담당하던 이씨는 98년 외환위기로 몇달 동안 격무에 시달렸다. 피로가 쌓이던 98년 9월, 처음 공황발작을 경험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첫 공황 이후 늘 긴장상태로 지내야 했다. 이유없이 벌벌 떨리고 추운 증세가 지속됐다. 그해 12월부터 3개월 동안 병가를 내고 쉬었다. 다시 회사에 출근했지만 도저히 업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우선 직장동료들에게 공황장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다행히 상사와 동료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세심한 배려를 했다. 이씨는 “일년 넘게 출근만 할 뿐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며 “동료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자신의 몸상태를 잘 조절해 올 3월부터는 일을 다시 시작했고, 6월부터는 야근도 할 만큼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씨는 “공황장애가 온 원인이 100% 과로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나도 최현규씨처럼 됐다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을 것”이라고 돌이켰다.
의료계에서는 공황장애를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관련된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가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큰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불안에 빠져드는 경제상황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 위기감으로 최근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로와 불안에 휩싸인 사회가 공황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사진/‘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겪었던 최현규씨. 올 2월부터 조금씩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1월22일 새벽 1시, 집으로 돌아왔다. 몹시 힘들었다. ‘자고 나면 좀 낫겠지…’ 생각하고 수면제를 몇알 털어넣고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오히려 점점 호흡이 힘들어졌고, 심장은 거세게 뛰었다. ‘이대로 혼자 죽을 순 없다….’ 휴대폰을 찾아 들고 119를 눌렀다. “살려주세요…. 여기는 영등포구 여의도….” 새벽 4시, 최씨는 결국 강북대성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혈액, 심전도 등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일단 퇴원했다. 다음날 “도저히 해외출장은 어렵다”고 상사에게 호소했다. 다행히 해외출장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다. 한번 엉클어진 건강은 쉽게 추스려지지 않았다. 격렬한 심장박동과 호흡곤란, 어지럼증은 계속 이어졌다. 최씨는 “그때는 안경이 들썩거릴 정도로 온몸에서 심하게 맥박이 뛰었다”고 돌이켰다. 아무래도 심장병 같았다. 성모병원,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 유명하다는 심장내과 전문의는 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최씨가 ‘공황장애’라는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두 번째 병가를 위해 진단서를 떼면서였다. 대구의 한 개인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에는 ‘공황장애’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쓸데없이 허비한 지난 6개월을 생각하니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그동안 최씨의 몸도 마음도 모두 피폐해져 있었다. 헤매다니는 동안 휴직이 이어졌다. 99년 2월 1주일 동안 병가, 잠시 복직했으나 3월부터 3개월 휴직, 다시 6월부터 6개월 휴직…. 휴직이 거듭될수록 건강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되어갔다. 그래도 차마 ‘공상’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빨리 나아 다시 복직하고 싶었다”는 게 최씨의 심정이었다. 결국 올 2월23일, 회사쪽으로부터 “복직시한을 넘겨 퇴직 처리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때부터 “공상처리”를 요구하는 최씨 가족과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회사쪽의 대립이 시작됐다. 결국 싸움은 법정으로 번졌다. 지난 6월27일 최현규씨가 전경련을 상대로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공상처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사 휴직 규정까지 바꿔가며 최대한 배려를 했다”면서 “최씨가 원래 몸이 약해서 그런 것이지 과로 탓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심해지면 ‘광장공포증’으로 발전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황장애에 대한 판례는 전무하다. 그래서 최씨의 소송은 최초의 ‘공황장애 공상인정 판례’가 되는 셈이다. 어느 날 날벼락처럼 찾아온 공황장애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최현규씨. 한때 “수박 한통도 못 들 만큼” 일상이 힘겨웠지만 올 2월부터 건강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떳떳하게 전경련에 복직해서 내 발로 나오고 싶다”는 게 그의 유일한 바람이다. 공황장애는 어떤 병일까. 특별한 위험이나 자극,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신체가 극심한 불안반응을 나타내는 게 공황장애다. 뇌의 경보기능을 담당하는 청반핵이 너무 예민해져서 생긴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최영희 교수는 자극과 반응으로 공황장애를 설명한다. “인체는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그걸 이기는 대처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래서 정상상태가 유지되는 거죠. 하지만 특정 시기에 스트레스가 너무 크거나 대처능력이 저하되면 자극과 반응 사이의 균형이 깨져 공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증세는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식은땀이 나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심장이 마구 뛴다. 머리가 휑하고 어지러우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증상도 동반된다. 이렇게 되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곧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경험은 뇌리에 깊이 각인돼 어떤 계기로 회상을 할 때마다 즉시 불안감을 유발한다. 바로 이 ‘예기불안’이 문제다. 끔찍한 경험이 다시 올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신체는 신호를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반응하게 된다. 평소 다니던 길이 무서워지고, 특히 공황발작을 경험한 상황에 다시 부딪히면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예기불안은 회피행동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운전중에 공황발작을 경험했다면 운전을 회피하게 된다. 심해지면 버스나 지하철과 같이 사람이 밀집된 장소를 두려워하는 광장공포증으로 발전한다. 공황발생을 여러 장소, 여러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 공황장애는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행하는 진단분류체계에 처음 등장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2배 정도 발병확률이 높고, 20대와 30대 사이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평생 발병할 확률은 1.5∼3.5%.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약 80만∼150만명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다. 공황장애가 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지는 10여년밖에 안 되지만 요즘 정신과를 찾는 환자의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해졌다. 발병하자마자 치료를 하면 완치될 확률이 높지만, 최현규씨처럼 심장질환이나 호흡기질환 등으로 오인해 짧게는 몇달, 길게는 수십년을 헤맨 끝에 공황장애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이 많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완치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많이 발병

(사진/서울 백병원의 공황장애 클리닉. 심장질환이나 호흡기질환 등으로 오인해 짧게는 몇달, 길게는 수십년을 헤맨 끝에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