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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후반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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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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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을 살았다고 느끼는 시점에서 중년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경제적 위기에 대응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남은 절반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시기이다.

장호균 | 신경정신과 전문의
6월4일로 참여정부가 100일이 됐다. 6월2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을 경제적 안정, 그 가운데에서도 서민생활의 안정에 두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침체의 그늘은 점점 짙어간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짐에 따라 실업률이 지난해보다 높은 3.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기업들도 올 하반기 채용인원을 지난해에 비해 43%가량 줄일 것으로 조사됐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취업대란이 닥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심해지는 직장스트레스


사람들은 일을 통해 금전적 보상 이외에도 자부심, 능력에 대한 확신, 인생의 목적과 의의, 사회적 귀속감 등을 얻는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실업이 문제가 된다. 청년실업은 성인기로 막 진입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박탈함으로써 심각한 사회적·심리적 문제를 빚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갖고 있는 30, 40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의 개념은 없어졌다. 금융권과 기업의 구조조정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40대 직장인들 사이에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사십오살이 정년이요, 오십육살까지 있으면 도둑’이라는 뜻이다

‘오륙도 세대’에게 디지털시대 진입에 따른 ‘기술스트레스’(technostress)가 큰 충격이었다면, ‘386세대’는 ‘상시 구조조정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직장생활이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내일이라고 다를 바 없기에 숨막힌다. 그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취업과 직장스트레스에 대한 대처가 절실해졌다.

직장에 다니는 한 친구는 “바쁘기는 무지 바쁜데 실속이 없게 느껴진다”고 털어놓는다. 과다한 업무량에 비해 자기 만족감이 없다는 뜻이리라. 하는 일의 전망이 흐릿한 데 따른 불안 또한 큰 스트레스다. “다른 세계로 가고는 싶은데… 현실을 놓기는 불안하다”고 하는 게 이 시대 평범한 직장인의 솔직한 심경 고백일 것이다.

정신·신체의학에서는 많은 업무에 시달리거나 업무와 관련해서 자주 좌절하게 될 때 신체적·정서적으로 무기력증에 빠지는 증후군을 ‘탈진’(burn-out)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탈진은 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신호이기도 하므로 ‘몸으로부터 오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질병 위험을 줄이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직장스트레스가 ‘참고 노력해서’ 풀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방향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그 개인적 의미 부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을 어떻게 전환하느냐, 생활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대응하느냐가 요점이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 이른바 ‘젊은 피’로 각광받았던 ‘386세대’도 어느덧 중년기에 접어들고 있다.

인생의 반을 살았다고 느끼는 시점에서 중년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경제적 위기에 대응해 자신의 신체·직업·가족을 되돌아보고 ‘남은 절반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시기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공한 미국 케이블텔레비전 사장인 밥 버포드의 경험과 조언은 매우 시사적이다.

성공중심에서 의미 중심의 삶으로

밥 버포드는 저서 <40 또다른 출발점>에서 자신의 삶을 축구처럼 전후반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는 인생을 전반부와 하프타임, 그리고 후반부로 나눈 뒤 마흔살에 접어든 사람에게 전반전을 마친 뒤 하프타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밥 버포드는 “인생 전반부가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기라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무렵인) 하프타임에는 더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마흔살 이후 후반부를 계획하는 시기”라고 조언한다.

그는 인생 후반부를 위한 첫 번째 단계로서 자신을 옭아매는 자잘한 일상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다음으로 자신이 이미 능숙하게 수행하고 있고, 또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인생 후반부에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유한다. 마흔살을 전후해 성공 중심의 삶에서 의미 중심의 삶으로 ‘삶의 코드’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월드컵 때 한국 축구대표팀은 대부분 후반전에서 승기를 잡았다.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도 전반전보다 후반전이 더 중요하다. 마흔을 넘었다고 인생의 내리막길이 시작된 게 아니다. 축구나 삶이나 하프타임은 숨 고르기와 후반 역전을 노리며 새 판을 짜는 귀한 시간이다.

장호균 |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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