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1살의 장쭝인(張忠音) 할아버지는 ‘나체모델’이다. 살점이라고는 거의 붙어 있지 않은 깡마른 몸집의 장 할아버지가 일반인들도 하기 힘든 나체모델을 하게 된 사연은 그의 직업만큼이나 아주 ‘특별하다’. 베이징의 조그만 후통(胡同·골목) 안에 있는 한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장 할아버지는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가장 무거운 죄에 해당하는 ‘반혁명분자’로 기소돼 무려 17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 사이 부인과도 이혼했다.
1990년대 초, 세상으로 다시 나왔을 때의 감회를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오랜세월 동안 감옥 안에서 생각한 것이라고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것이었어.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더라구.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개혁개방 정책으로 ‘확’ 뒤바뀐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이라곤 매일같이 석간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그리고 집앞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거기 앉아서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감옥에 가기 전 베이징 외곽의 조그만 소학교(초등학교) 선생님을 했던 할아버지에게 가르치는 일 외에 달리 벌어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이 없기도 했지만 그 나이에 직장을 구한다는 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던 중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범상치’ 않다는 걸 발견했다. 이빨마저 몽땅 빠져버린데다가 나이보다도 십년 이상은 더 늙어보이는 얼굴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신선처럼 기른 하얀 수염에 얼굴 생김새가 중국의 한 유명한 화가를 빼다 박았다고 확신한 할아버지는 그날부터 당장 자신의 ‘추천서’를 쓰기 시작했다. 베이징의 각 대학 미술학과에 보낼 ‘모델 추천서’였다.
장 할아버지의 ‘모델인생’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운이 좋으면 일주일에 2~3차례 정도 일거리들이 ‘쏟아지고’ 보통은 한달 평균 3~4차례 정도 모델일을 나간다. 겨우 굶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기는 하지만 장 할아버지에게 모델이라는 직업은 단순한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아직도 내가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평범한 소학교 선생님에서 반혁명분자로, 그리고 황혼의 나이에 나체모델을 하는 장 할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은 건강을 ‘쟁취’하는 것. 살아 있는 동안 좀더 많은 사람들과 ‘인생’을 논하고 싶기 때문이다. 장 할아버지가 나누고 싶어하는 ‘인생 이야기’란 대체 무엇일까.
베이징=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