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를 다녀온 종군여성저널리스트 이진숙·김영미, 전쟁과 여성을 말하다
종군기자는 세 종류의 전쟁을 한꺼번에 겪는다. 총탄이 빗발치고 피와 살이 튀는 전쟁,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의 취재 전쟁, 그리고 자신과의 전쟁.
그동안 종군 취재는 주로 남성들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여성 언론인들이 적극적인 도전으로 그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MBC 이진숙(41) 기자와 다큐멘터리 감독 김영미(33) PD가 그런 이들이다.
이라크 전쟁에서도 많은 종군기자들이 전선에서 상당히 떨어진 호텔에서 CNN과 알자지라방송 등에 의존해 이름뿐인 ‘종군’을 했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그런 모습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한편, 사회적 약자에 미치는 전쟁의 영향까지 여성의 눈으로, 어머니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난 5월29일 이들이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기회가 닿으면 또다시 현장으로 가겠다”는 두 사람의 대화엔 프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사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종군 저널리스트 두분을 모시게 됐다. 두분 모두 최근 무정부 상태의 이라크 현지 상황에 대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영미 PD(이하 김): 이라크에서 돌아온 지 2주일 정도 됐다. 그동안 이라크가 많이 변했다. 정권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살던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많이 털어놨다. 후세인 정권에 대한 분노, 전쟁 후 공포심, 정부 부재의 공황상태가 다 맞물려 있다. 이진숙 기자(이하 이): 나는 솔직히 지금 당장 이라크로 돌아가고 싶다. 회사에서 안 보내줘서 그렇긴 한데. 차기 정부 수립이나 변화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있다. 10년 동안 언어와 그쪽 지역을 공부해보니 대단히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나로선 ‘기다려온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내 인생에 가장 끔찍한 경험이 이라크전이었다. 나라는 부국인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끔찍하게…. 시장에만 가도 8∼9살짜리 꼬마들이 레몬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인생에 가슴이 저려오는 순간들이 많았다. 쓰지 못한 촬영본 많아 안타까워 사회: 두분 모두 여성이자 한 아이의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은 여성을 천시하는 문화가 횡행하지 않는가. 여성으로서 취재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 전쟁터에선 남녀를 가릴 일이 없다. 특히 이라크는 아프간보다 여성을 천대시하는 것이 없는 편이고. 하지만 아프간 사람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했다. 외국 여기자가, 게다가 카메라까지 들고 있으니까. (웃음) 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는 민박을 했는데 거의 현지인을 대하듯 나를 생각했다. (웃음) 오히려 국내에서 여자 혼자 애를 놔두고 그런 데를 왜 갔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전쟁터에 갔다왔다. 아홉살 난 아들에게만 전쟁터에 간다고 말했다. 아들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저번(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안 죽었으니까 이번에도 안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이: 나는 여섯살바기 아이가 “엄마 바그다드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보니까 멋있더라”는 얘기를 하더라. “엄마, 나도 아프간, 이라크 가고 싶다”고 얘기해서 속으로는 웃었지만 “언제 기회가 있을 때 같이 가보자. 나중에”라고 설득했다. 사회: 전쟁은 인류의 가장 폭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약자들의 피해상황에 대한 자세한 보도가 없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전쟁은 사회, 경제, 문화, 역사적인 모든 사건을 담고 있는 사건이니까. 여성과 어린이의 문제를 크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전쟁이 워낙 총체적인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김: 한 아이의 엄마인 나로선, 후세인보다 사람들 사는 것이 더 궁금했다. 후세인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싶었다. 피와 살이 터지는 장면을 편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뉴스에조차 이라크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더라. 이: 뉴스는 너무나 피, 부상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고 나니 이라크전에 대한 수요가 확 떨어졌다. 쓰지 못한 촬영본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전세계 어느 기자보다 빨리 바그다드에서 최초로 무너진 후세인 동상, 만수르 광장의 금동상이 오후에 목이 날라가고, 며칠 후에 허리가 날라가고 하는 것들을 다 찍어두었다. 기사 시간 1분10초 안에 다 담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너무 아쉬운 점이 많아 좀더 호흡을 길게 갈 수 있는 12분짜리 보도를 만들 수 있는 <시사매거진 2580>팀에 자진해서 오게 됐다. 보도에서도 다큐의 영역과 뉴스의 결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사회: 전쟁을 오락 중계하듯 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종군기자로 유명한 CNN의 크리스티나 아만포는 2001년 아프간전 당시 방탄복을 입고 등장해 분위기를 잡았지만 그가 서 있던 곳은 호텔 옥상이었다.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에는 한 방송국 기자가 현지인 의상을 입고 낙타를 탄 채 뉴스 멘트를 하자, 상대 방송국에서 국장의 질타가 쏟아졌다. “저렇게 좀 섹시한 화면 잡아와라”는 주문이었다. 기자로서 경쟁적 전쟁 보도에 앞서 전쟁 방지 여론조성에 힘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뺏은 차’자랑, 가이드가 기가막혀 이: 전쟁 보도가 선정적이라고 하는데,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는 사람이다. 저널리스트가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전쟁을 막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인과 시민사회의 몫이다. 그리고 전쟁을 막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이번에도 프랑스의 80%, 영국의 60%에 이르는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했지만 전쟁은 터지지 않았나. 김: 내 경우엔 선정성보다는 전쟁이나 독재로 고통받는 약자들의 삶이 궁금할 뿐이다. 이번 취재에선 취재할 때 감시가 심해 다소 어려웠다. 사회: 취재 기간 중에 위험한 일이나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이: 나는 죽지 않는다 싶으면 다 찍었다. 전쟁중이나 종료 후에는 매복의 위험이 늘 있었다.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르니까. 대통령궁이나 전략 시설 같은 데 들어가고 싶어서 여러 가지로 많이 신경을 썼지만 되지 않아 아쉬웠다. 김: 카메라를 뺏길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뺏긴다, 들고 튄다, 찍으면서 나온다. 이: 당연히 찍으면서 나와야지. 김: 카메라를 들고 갈등을 느낄 때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병원에 산모들 절반이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병상도 모자랐다. 나도 아이를 가진 엄마라 카메라를 들지 못하고 산모들과 함께 울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진실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다. 이: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답변을 잘 안해서 질문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에둘러 묻다 보면 취재원들이 답변을 피해갈 시간을 벌어주게 된다.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남의 말을 늘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해야 하니까. 사회: 국내에선 전쟁 직전 이라크인들이 1991년 걸프전 이후 두번째 전쟁이라선지 상당히 담담하게 전쟁 대비를 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이라크인들의 모습과 주변국들의 동향은 어땠나. 김: 담담하지 않았다. 공포에 떨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다고 울먹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 후엔 정부가 없다는 공황상태에 빠져들더라. 지금도 의약품 수송업체가 많이 털린다. 주위 나라들은 이라크인들의 불행한 상황을 이용해 배를 불리는 것 같다. 이라크가 아니라 요르단 암시장에 의약품이나 무기들이 다 나와 있더라. 전쟁의 비열함을 볼 수 있다. 옆의 나라에서 이득을 보는 셈이다. 이: 전쟁에는 인간성이란 게 없으니까. 요르단 암만 시장에서 기관총, M16 등이 다 팔리더라. 50배에서 100배씩 받는 거다. 김: 가이드가 차를 몰고 나와선 “뺏은 차”라고 자랑하더라. 기가 차서 “그건 뺏으면 안 되고, 차는 돈 주고 사는 거야”라고 얘기했더니 지금 이라크는 룰이 깨졌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깨진 룰대로 자기는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이: 관공서에 자기 문패를 버젓이 달아놓고 자기 집인 양 행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다 독재정권이 우리한테서 빼앗아간 것이니까 먼저 도장을 찍는 쪽이 가지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 차례는 너희나라? 김: 사람들의 심성이 황폐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원래 이라크인들이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복잡한 심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면 미국 기자들이 그랬다. “세상이 원래 그런 거야.”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폭격당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취재 장비를 챙겨주던 어느 호텔 직원은 끝까지 보상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사회: 북핵을 둘러싸고 전쟁불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국내외에 다수 있다. 이: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사람이니까, 전쟁은 무슨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불사론자들도 나나 내 가족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김: 이라크에서 “다음 차례는 한국, 너희 나라 아니냐”는 투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거기에서 나는 제3자였지만, 내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폭격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보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리= 이김유진 기자 | 한겨레 스카이라이프 fro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사진/ 전쟁의 참상을 여성과 어머니의 눈으로 최전선에서 바라본 두사람의 대화에선 자부심과 사명감이 묻어났다.
김영미 PD(이하 김): 이라크에서 돌아온 지 2주일 정도 됐다. 그동안 이라크가 많이 변했다. 정권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살던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많이 털어놨다. 후세인 정권에 대한 분노, 전쟁 후 공포심, 정부 부재의 공황상태가 다 맞물려 있다. 이진숙 기자(이하 이): 나는 솔직히 지금 당장 이라크로 돌아가고 싶다. 회사에서 안 보내줘서 그렇긴 한데. 차기 정부 수립이나 변화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있다. 10년 동안 언어와 그쪽 지역을 공부해보니 대단히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나로선 ‘기다려온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내 인생에 가장 끔찍한 경험이 이라크전이었다. 나라는 부국인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끔찍하게…. 시장에만 가도 8∼9살짜리 꼬마들이 레몬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인생에 가슴이 저려오는 순간들이 많았다. 쓰지 못한 촬영본 많아 안타까워 사회: 두분 모두 여성이자 한 아이의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은 여성을 천시하는 문화가 횡행하지 않는가. 여성으로서 취재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 전쟁터에선 남녀를 가릴 일이 없다. 특히 이라크는 아프간보다 여성을 천대시하는 것이 없는 편이고. 하지만 아프간 사람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했다. 외국 여기자가, 게다가 카메라까지 들고 있으니까. (웃음) 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는 민박을 했는데 거의 현지인을 대하듯 나를 생각했다. (웃음) 오히려 국내에서 여자 혼자 애를 놔두고 그런 데를 왜 갔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전쟁터에 갔다왔다. 아홉살 난 아들에게만 전쟁터에 간다고 말했다. 아들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저번(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안 죽었으니까 이번에도 안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이: 나는 여섯살바기 아이가 “엄마 바그다드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보니까 멋있더라”는 얘기를 하더라. “엄마, 나도 아프간, 이라크 가고 싶다”고 얘기해서 속으로는 웃었지만 “언제 기회가 있을 때 같이 가보자. 나중에”라고 설득했다. 사회: 전쟁은 인류의 가장 폭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약자들의 피해상황에 대한 자세한 보도가 없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전쟁은 사회, 경제, 문화, 역사적인 모든 사건을 담고 있는 사건이니까. 여성과 어린이의 문제를 크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전쟁이 워낙 총체적인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김: 한 아이의 엄마인 나로선, 후세인보다 사람들 사는 것이 더 궁금했다. 후세인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싶었다. 피와 살이 터지는 장면을 편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뉴스에조차 이라크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더라. 이: 뉴스는 너무나 피, 부상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고 나니 이라크전에 대한 수요가 확 떨어졌다. 쓰지 못한 촬영본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전세계 어느 기자보다 빨리 바그다드에서 최초로 무너진 후세인 동상, 만수르 광장의 금동상이 오후에 목이 날라가고, 며칠 후에 허리가 날라가고 하는 것들을 다 찍어두었다. 기사 시간 1분10초 안에 다 담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너무 아쉬운 점이 많아 좀더 호흡을 길게 갈 수 있는 12분짜리 보도를 만들 수 있는 <시사매거진 2580>팀에 자진해서 오게 됐다. 보도에서도 다큐의 영역과 뉴스의 결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사회: 전쟁을 오락 중계하듯 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종군기자로 유명한 CNN의 크리스티나 아만포는 2001년 아프간전 당시 방탄복을 입고 등장해 분위기를 잡았지만 그가 서 있던 곳은 호텔 옥상이었다.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에는 한 방송국 기자가 현지인 의상을 입고 낙타를 탄 채 뉴스 멘트를 하자, 상대 방송국에서 국장의 질타가 쏟아졌다. “저렇게 좀 섹시한 화면 잡아와라”는 주문이었다. 기자로서 경쟁적 전쟁 보도에 앞서 전쟁 방지 여론조성에 힘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뺏은 차’자랑, 가이드가 기가막혀 이: 전쟁 보도가 선정적이라고 하는데,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는 사람이다. 저널리스트가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전쟁을 막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인과 시민사회의 몫이다. 그리고 전쟁을 막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이번에도 프랑스의 80%, 영국의 60%에 이르는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했지만 전쟁은 터지지 않았나. 김: 내 경우엔 선정성보다는 전쟁이나 독재로 고통받는 약자들의 삶이 궁금할 뿐이다. 이번 취재에선 취재할 때 감시가 심해 다소 어려웠다. 사회: 취재 기간 중에 위험한 일이나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이: 나는 죽지 않는다 싶으면 다 찍었다. 전쟁중이나 종료 후에는 매복의 위험이 늘 있었다.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르니까. 대통령궁이나 전략 시설 같은 데 들어가고 싶어서 여러 가지로 많이 신경을 썼지만 되지 않아 아쉬웠다. 김: 카메라를 뺏길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뺏긴다, 들고 튄다, 찍으면서 나온다. 이: 당연히 찍으면서 나와야지. 김: 카메라를 들고 갈등을 느낄 때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병원에 산모들 절반이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병상도 모자랐다. 나도 아이를 가진 엄마라 카메라를 들지 못하고 산모들과 함께 울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진실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다. 이: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답변을 잘 안해서 질문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에둘러 묻다 보면 취재원들이 답변을 피해갈 시간을 벌어주게 된다.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남의 말을 늘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해야 하니까. 사회: 국내에선 전쟁 직전 이라크인들이 1991년 걸프전 이후 두번째 전쟁이라선지 상당히 담담하게 전쟁 대비를 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이라크인들의 모습과 주변국들의 동향은 어땠나. 김: 담담하지 않았다. 공포에 떨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다고 울먹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 후엔 정부가 없다는 공황상태에 빠져들더라. 지금도 의약품 수송업체가 많이 털린다. 주위 나라들은 이라크인들의 불행한 상황을 이용해 배를 불리는 것 같다. 이라크가 아니라 요르단 암시장에 의약품이나 무기들이 다 나와 있더라. 전쟁의 비열함을 볼 수 있다. 옆의 나라에서 이득을 보는 셈이다. 이: 전쟁에는 인간성이란 게 없으니까. 요르단 암만 시장에서 기관총, M16 등이 다 팔리더라. 50배에서 100배씩 받는 거다. 김: 가이드가 차를 몰고 나와선 “뺏은 차”라고 자랑하더라. 기가 차서 “그건 뺏으면 안 되고, 차는 돈 주고 사는 거야”라고 얘기했더니 지금 이라크는 룰이 깨졌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깨진 룰대로 자기는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이: 관공서에 자기 문패를 버젓이 달아놓고 자기 집인 양 행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다 독재정권이 우리한테서 빼앗아간 것이니까 먼저 도장을 찍는 쪽이 가지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 차례는 너희나라? 김: 사람들의 심성이 황폐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원래 이라크인들이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복잡한 심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면 미국 기자들이 그랬다. “세상이 원래 그런 거야.”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폭격당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취재 장비를 챙겨주던 어느 호텔 직원은 끝까지 보상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사회: 북핵을 둘러싸고 전쟁불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국내외에 다수 있다. 이: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사람이니까, 전쟁은 무슨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불사론자들도 나나 내 가족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김: 이라크에서 “다음 차례는 한국, 너희 나라 아니냐”는 투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거기에서 나는 제3자였지만, 내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폭격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보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리= 이김유진 기자 | 한겨레 스카이라이프 fro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