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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집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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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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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게 모르게 젖어 있는 ‘남들은 이렇게’, ‘보통은 이렇게’, '이것이 자연스러운데’에서 아주 조금, 정말 조금만 비켜 있는 것조차 받아들이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이영미/ 교사·<작은 친절> 지은이
텔레비전 프로에 패널로 참가하게 되어 녹화장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방송작가가 아나운서를 해도 되겠다기에 농담인 줄 알면서도 애교까지 섞어서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니 제발 좀 시켜달라고 했다.

“지금은 안 돼요. 살을 좀 빼면 몰라도.”

“뚱뚱해서 안 된다는 거예요? 아나운서가 꼭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이렇게 뚱뚱한 아줌마가 나오면 시청자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데. 편안하다고.”

“그래도 지금으로는 안 돼요. 카메라를 차고 넘치잖아요. 카메라 밖으로 비어져 나올 텐데.”


스킨십을 위해 소파를 사다

이럴 때 갑자기 이상한 오기 같은 것으로 울컥한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지 않느냐, 해보지도 않고 왜 지레 안 된다는 거냐며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오락프로라면 몰라도 교양프로라서 안 된다는 거야? 날씬해야 더 지적으로 보이나? 이렇게 펑퍼짐한 아줌마는 책 한줄 읽지 않고 수다만 떠는 줄 아나?’

그저 농담으로 시작한 대화였는데 나 혼자 길길이 뛰는 꼴이 되어버렸다. 통념을 깨고 싶다는 오기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소파를 사기까지의 일들이 떠올랐다.

소파 없이 훤한 거실을 고집하며 살아왔는데 ‘좋은 친구 만들기’를 통해 알게 된 새 식구를 위해 소파를 사자고 했을 때 남편은 반대했다. 이제까지 소파 없이 잘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그것이 왜 필요하냐고. 그것도 우리 가족이 필요해서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사람 사이에 스킨십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네 식구는 이제까지 서로 살을 맞대며 부비며 살아왔지만 그 아이는 아니잖아요. 우리 집에 자주 올 텐데 이렇게 거실에 뚝뚝 떨어져 앉아 있는 것보다는 소파가 있으면 그곳에 끼여앉게 될 거고 자연스레 서로 맞닿는 기회가 많아질 거잖아요. 멀뚱히 떨어져 있는 것보다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는 게 된다면 서로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울 거라 생각해요. 소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식탁의 위치도 바꿀 거예요.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벽에 붙여 놓았는데 그 아이가 올 때마다 자신이 손님이라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언제든지 다섯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위치로 바꾸면 아이가 덜 어색해 할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불편해지는 건 없잖아요.”

여러 날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남편은 돈도 돈이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당신이 이러는 거 남들이 보면 정말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그렇게 중요해요 맞아요. 이해 못하는 사람들 많아요. 심지어는 내가 그 아이를 실험 대상으로 쓰고 있느냐는 사람도 있어요. 학위논문 준비에 필요한 자료를 위해서가 아니냐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내 아이나 잘 키우지 무슨 그런 일까지 하느냐고, 왜 하는지 정말 알 수 없다고 하는 사람 적지 않아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어쩌면 당연한 거야. 나도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게 사실이니까. 그저 무난히 살자. 남들이 하는 것처럼 모자라지도 않게 너무 돌출되지도 않게 말이야.”

“나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이 뭘까요? 난 부모가 참 열심히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 중에서 특히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결코 큰 것이 아니잖아요. 작지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요.”

‘보통’에 조금만 비켜 있어도…

결국 남편이 내 뜻을 받아주어 식탁의 위치도 바꾸고 소파도 사게 되었다.

“아저씨 여기 놓아주세요.”

내가 소파 놓을 자리를 가리키자 가구점 아저씨,

“아주머니, 소파는 벽에 붙여 놓아야지 여기 두면 어떻게 해요 이쪽 벽에 붙여 놓으세요.”

“그냥 제가 원하는 위치에 놓아주세요.”

“가구 운반 많이 다녀봤지만 소파를 여기 두는 집을 본 적이 없어요. 소파는 벽에 붙여두는 것이라니까요.”

“그냥 제가 원하는 위치에 놓아주세요.”

“거 참, 이상하시네. 소파를 거기 두면 이상할 텐데.”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을 나서는 그 아저씨를 보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젖어 있는 ‘남들은 이렇게’, ‘보통은 이렇게’, ‘이것이 자연스러운데’에서 아주 조금, 정말 조금만 비켜 있는 것조차 받아들이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사람은 소파의 위치에 놀라며 한마디한다.

“소파가 여기 있으니 이상하다.”

우린 그곳에 있는 소파에 익숙해져 편안한데.

이영미 | 교사·<작은 친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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