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짐꾼의 추억
등록 : 2003-05-30 00:00 수정 :
“대부분의 셰르파가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산 등정에 나섰지만, 그는 정상 등정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1200명에게만 정상을 허락했고, 등반 도중 설원에 묻힌 산악인만도 170명에 달하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5월29일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50주년을 맞아 네팔 산악인
텐징 노르기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1953년 뉴질랜드 출신 탐험가 에드문드 힐러리와 함께 인류의 발자국을 에베레스트 정상에 최초로 남긴 그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다.
텐징은 1914년 네팔의 산악지역인 테임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산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그는 18살 나던 해에 인도의 마르질링으로 이주해 영국 탐험대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돕기 시작했다. 냄걀 왕디라는 이름을 행운을 상징하는 ‘노르기’로 바꾼 것도 정상을 향한 열정 때문이었다.
1935년 첫 등정 시도 때부터 타고난 체력과 등산기술을 인정받은 텐징은 1936년과 1938년 잇따라 원정에 참가한다. 그 뒤 20여년 동안 그는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거의 모든 원정대에 참여했다. 그러는 사이 그저 짐꾼에 불과했던 소년은 존경받는 산악인으로 변모해갔다.
그리고 운명의 1953년이 다가왔다. 당시 그는 세계에서 에베레스트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길고, 정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인물이었다. 힐러리와 최초로 정상에 오르기 불과 몇달 전에도 텐징은 스위스 원정대의 레이먼드 램버트와 함께 정상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지점까지 근접했다. 하지만 정상 등정의 영광은 고스란히 힐러리에게 돌아갔다.
텐징의 손자 타시 텐징은 최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네팔인이라는 이유로) 적절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악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1986년 텐징이 숨을 거뒀을 때, 그의 장례식에 모여든 군중행렬은 1km가 넘게 줄을 이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