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의 소중한 추억, 그 감동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았나
‘월드컵과 붉은악마가 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10년 이상 정체시켰다고 주장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인권하루소식> 2002년 6월22일)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들떠 있던 지난해 6월 인권운동가 서준식씨는 국내 진보진영을 향해 이런 쓴소리를 던졌다. 그의 가시 돋친 ‘독설’은 월드컵에 온갖 사회·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며 축제 무드에 휩싸였던 진보진영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월드컵 4강’이 몰고 온 잔치 분위기로 그 파장은 곧 사그라들었지만, 월드컵이 끝난 뒤 촛불시위와 반전평화집회 등을 거치면서 월드컵의 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이 물음은 진보와 개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가방 속의 숙제’로 남아 있다.
붉은악마를 향했던 신랄한 비판들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전 대표는 국내 인권운동의 새 장을 연 인물이다. 공안당국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각종 인권 관련 집회와 인권영화제 등을 개최해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런 경력 때문에 월드컵과 붉은악마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은 당시 진보진영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서씨는 지난해 6월22일 낸 <인권하루소식>에서 ‘붉은악마 현상을 두고 레드콤플렉스의 극복이라느니, 6월항쟁의 민중 에너지 재현이라느니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의 망발이 그칠 줄 모른다. (중략) 붉은악마 현상에는 국가주의와 맹목적 애국심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서씨는 자신의 주장이 큰 논란을 일으키자 5일 뒤 다시 논평을 내 ‘우리의 주장은 거리 응원을 즐기는 시민들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부활하는 국가주의의 망령을 경고하려는 것’이라며 ‘자본과 언론, 정치 권력은 월드컵을 계기로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무관심을 부추겨 시민들의 현실 구조에 대한 불만이 사회 변혁의 에너지로 승화되지 못하도록 조장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붉은악마에 진보적 색깔을 덧씌우려는 지식인들의 태도는 낯 뜨거울 정도’라며 ‘지식인들은 낯 뜨거운 아부를 당장 중단하라’고 날을 세웠다.
서씨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월드컵과 붉은악마 현상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당당히 주장한다. “당시 내 주장이 경직됐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나도 인정합니다. 그건 의도적인 것이었지요. 그때는 진보진영의 들뜬 분위기를 깨뜨려야겠다는 절박함이 강했습니다.” 그는 “월드컵은 결과적으로 노동자, 노점상의 생존권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박탈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을 심각하게 위협했다”고 말했다. 수백만의 붉은악마들에게 시청앞과 광화문을 선뜻 내줬던 정부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소수 노동자들의 집회에는 ‘원천봉쇄’로 대응했다. 미군 장갑차에 두 여중생이 깔려 죽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월드컵 16강 열기’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대우자동차판매노조와 시그네틱스, 경희의료원,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묻혀버렸다. 서씨는 “노동자의 생존권과 민중의 인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누구를 붙잡고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때처럼 답답함을 느낀 때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 등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지만,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을 잃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투쟁과 놀이를 구분하지 말라”
그러나 서씨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론의 초점은 서씨가 월드컵과 붉은악마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그 문화적 의미를 과소평가했다는 데 모아진다. 김명인 <황해문화> 주간은 “붉은악마 현상은 국가주의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주의의 발현”이라고 말했다. 붉은악마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성향이 있긴 했지만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긍적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관리하고 조정하던 축제에만 익숙했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즐김으로써 ‘자기’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며 “그것은 소중한 해방의 경험”이라고 분석했다.
그 해방의 경험은 지난 겨울 촛불시위와 반전평화 집회의 뜨거운 열기로 이어졌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놀이와 유희는 중요한 것”이라며 “운동가들이 지나치게 투쟁과 놀이를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장도 “월드컵은 문화적인 사건일 뿐 어떤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라며 “정치적 인권 못지않게 놀이와 유희를 추구하는 문화적 인권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붉은악마 현상은 국가가 조정하고 관리한 대중 동원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88서울올림픽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
‘붉은악마’는 진보진영의 집회 문화를 크게 바꿨다. 촛불시위와 반전평화 집회는 예전의 민주화 집회와 달리 투쟁과 놀이가 공존하는 행사였다. 참가자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집회에 참가하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민주화 집회 때의 비장함과 엄숙함과는 거리가 먼 집회다. 붉은악마 경험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방법을 터득한 세대들에게 ‘W(월드컵)세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만든 축구장 시설이 각 자치단체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가 하면, 월드컵 휘장 사업권을 둘러싼 각종 비리 사건은 월드컵 개최국의 이미지를 크게 깎아내렸다.
그러나 월드컵 1주년을 맞는 ‘붉은악마’의 가슴은 다시 뛴다. 북핵과 경기침체 등 최근의 국내외 상황은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2002 월드컵은 아직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월드컵 감동을 다시 한번 맘껏 즐기라”고 말한다. “붉은악마 현상을 우려했던 시각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즐기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사람이 24시간 내내 진지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일과 놀이를 공유하는 균형감각이 중요합니다.”

사진/ 지난해 6월 한달 동안 펼쳐진 붉은악마 현상은 2002 한-일 월드컵을 상징하는 대사건으로 남아 있다.(박승화 기자)

사진/ 붉은악마의 독특한 자기표현 방식은 ‘W(월드컵)세대’라는 신조어를 낳았다.(김종수 기자)

사진/ 한국 대표팀 홍명보가 4강을 확정짓는 승부차기 골을 성공시킨 뒤 기뻐하고 있다(왼쪽,한겨레 김봉규 기자). 여중생 장갑차 사건은 월드컵 4강 열기에 묻혀 세상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오른쪽,김종수 기자).

사진/ 엄숙하고 경건한 존재였던 태극기도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왔다.(강재훈 기자)










